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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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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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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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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말했다, "제 마음에서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단 한 번이라도"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바야흐로 '절멸(아주 없어짐)'의 순간이 가까워 왔다. 이유는 이랬다. 열 중 넷이 인간, 나머지 여섯은 인간을 위한 가축이었는데, 그마저도 성에 안 찬 모양이었다.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들이 피했더니 쫓아왔고, 숲을 불태웠고, 약탈했고, 욕심을 부리더니만 기어이 코로나19란 것에 걸리고 말았다. 새로운 전염병의 75%, 알려진 전염병의 60%는, 그들이 동물에게 간 탓에 창궐한 거였다.

그러니 코로나19는 이제 시작, 그들은 더 많은 희한한 질병을 맞을 터였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게 멸망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쉬이 깨닫지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소독하고, 백신이 어쩌고 하면서도 그 근본 원인은 생각지 않았다. '왜 인간은 이런 상황에 처했을까'. 그 중요한 물음은 영 까먹어버린 모양이었다.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아, 이런 얘긴 했었다. "코로나? 다 박쥐 때문이야!" 뜬금없이 박쥐는 인류 말살을 기획한 가해자가 됐다. 하긴, 이런 식의 문제 해결은 많았었지. 2010년 구제역 때는 "다 소, 돼지 때문이야!"하며 무려 333만5729마리의 동물들을 살처분했었다. 2016년 AI 때는 "다 닭, 오리 때문이야!"하며 3만8076마리를 죽였었다. 그러나 반복, 또 반복, 그리고 이윽고 코로나까지.

동물들은 억울하고 속이 터졌다. 할 말은 많으나 인간의 언어를 못해서다.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그런데 말할 수 있는 단 하루가 주어졌다. 이들은 귀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고픈 말이 많아서였다. 개, 돼지, 소, 거북이, 박쥐, 쥐, 달팽이, 코알라, 원숭이, 순록, 오리, 뱀, 천산갑, 호저, 오소리, 닭, 양 등이 합세했다. 울분에 찬 녀석들은 광화문 광장에 날아왔고, 뛰어왔고, 기어왔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온종일 이어지고도 남았다. 그중 일부만 소개토록 하겠다.



누가 제게 오라고 했나요?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우선 동물들은 이걸 알아달라고 했다. 질병이 생긴 건,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는 걸.

박쥐 : 저보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원인이래요. 혐오한대요. 저는 5000만년 전에 이미 이 모습이었는데요. 그리고 인간에게 다가간 적이 없어요. 그들이 제게 왔지요. 그 뒤로 많은 것이 파괴되었어요. 애정을 가진 고향을 떠나야 했어요. 종족의 곁을 떠나야 했고, 본성을 거슬러 환한 대낮에 있었고요. 인간은 책임 전가의 왕입니다.

멧돼지 : 정말 공감합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아시죠? 저희보고 그 원흉이래요. 호되게 당한 건 오히려 우리인데요. 그러더니 온갖 숲을 들쑤시며 쏴 죽이더이다. 인간이 도토리며 먹을 걸 다 싹쓸이해놓고, 배고파서 내려가면 또 '탕탕' 주저 없이 쏘고. 심지어 돼지열병이 없어도 사냥꾼을 매년 보냅니다. 수를 조절한다고요.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돼지: 제 말이 그거에요. 인간들이 말하는 새로운 병이요. 저를 통해 왔지만 제가 만든 병이 아니며 제게서 시작된 병도 아니에요. 아주 여러 명의 인간들이 힘을 모아 만든 병이지요.

병들지 않고 배길까요? 인간을 위한 세계에 수천만 마리의 저희가 살지요. 태어나고,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히고, 갇히고, 먹고, 자라고, 빨리빨리. 딱 저만한 크기의 오물더미 감옥에 갇히고, 더러워지고, 수없이 주사 맞고, 항생제로 이루어지고, 쇠창살을 물어뜯고. 이윽고 옮겨지고, 실려 가고, 놀라고, 울고, 죽임당하고, 분리되고, 썰리고, 비닐에 담기고, 냉동되고, 먹히고요.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오리: 저는 참 이상합니다. 인간의 겨울이 사라져가는데도 여전히 저희 털을 뽑는 것이요. 그리고 또 가둬두지요. 그러니 철새가 옮겨오는 감기에 잘 걸리고요. 그럼 몰살이 이어집니다. 다 끝나면 시체가 산처럼 쌓인 구덩이를 향해 인간들이 옵니다. 몇몇은 울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다음 해에 같은 일을 반복하지요.

때때로 저희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사료가 됩니다. 서로 친해 보이는 그들 사이 우정은 더 나은 걸까요? 그 또한 굴절과 왜곡이진 않을까요? 죽어가면서도 참 궁금합니다.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뱀: 제가 사는 곳에 마음대로 침범한 것도 인간이지요. 저는 원래 조용하고 미끄럽게 살아왔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원한 건 그것뿐이었어요. 그래서 불필요해진 팔도, 다리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무섭다고 경계하고 인간을 위협한다고 탓하고요. 돌을 던지고, 등산용 지팡이로 찌르고요. 피부를 벗겨 가방과 구두를 걸치어 다니고, 애완 대상으로 좁은 수조에 가둬 장난감 다루듯 희롱하고요.

그런 걸 볼 때, 저는 목소리도 없으면서 비명을 지르고 싶습니다.



인간은, 저희가 생명이란 걸 잊은 듯 합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그리고 본격적인 성토가 이어졌다.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잔혹하게 했는지를.

양: 거꾸로 매달린 채 커다란 가위에 발목이 잘리는 꿈을 꿨어요. 똑, 똑, 똑, 똑 인간은 제 발목을 하나씩 잘라내고요. 저의 어머니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고통에 눈멀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요. 털만 깎고 오겠다던 제 친구는 온갖 곳이 찢기고 멍들어 쓰레기처럼 버려지고요.

제 주둥이를 틀어 막은 채 질질 끌고 갔지요. 발버둥 치는 제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발길질을 하고요.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서는 털을 깎아내고, 가죽을 벗겨내고, 거꾸로 매달아 목을 갈라 피를 쏟게 하고. 똑, 똑, 똑, 똑, 수북이 쌓인 발목들. 섬세하고 귀한 제 피부는 당신의 가방이 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제 살은 당신의 식탁에 오르고.

인간은 제가 생명이란 걸 잊은 듯합니다. 인간은 제가 생명이란 걸 잊은 듯합니다.
개농장./사진=뉴스1
개농장./사진=뉴스1
개: 어릴 땐 저희가 귀엽다고 돈을 주고 삽니다. 조금 자라 귀찮아지면 버려버립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거나 때리고 학대합니다. 평생을 뜬장에서 살다 인간의 먹이가 되어 생을 마치기도 합니다.

신이 보낸 관찰자인 저희는 오늘도 인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가깝게 지내는 것도, 관찰하는 것도 지쳤습니다. 그래서 이젠 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 임무를 해제 시켜주세요. 잔혹한 인간들을 말없이 보는 것은 너무나 힘듭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을까요?'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닭: 인간들이 K-푸드라 애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치맥에 치킨, 닭입니다. 우리도 엄연한 생명인디, 물건 찍어내고 공장에 가둬두고 기르고 죽이고 기르고 죽이고 찍어내고 찍어내고 찍어내듯 마구 만들어 잡아 먹는 닭입니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 한곳에 다다다닥 가둬두고 병이라도 번질라치면 학살을 일삼더이다. 산채로 파묻고, 찔러 죽이고, 태워 죽이는 일은 그만하라고 이 자리서 말합니다. 코로나 씨팔! 십구 번진다고 인간을 다 잡아 죽이겠습니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않겠습니까.



내 피눈물이 10cc에 350만원, 특별 할인이란다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를 따져보면 결국 욕심, 이기심, 끝 모를 소비다. 대한민국이 소모하는 양이 얼마나 큰지 아는가. 전 세계가 우리 수준으로 살아가려면, 지구가 무려 3.3개가 필요하단다.

반달가슴곰: 오래 살고 싶답니다, 병든 저희 쓸개를 먹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엔 웅담만한 게 없다면서요. 코로나를 이기려면 저희를 먹어야 한다고 신나게 떠들어대고요. 쓸개즙이 10cc에 350만원, 5cc에 175만원이라고요. 제 피눈물이 특별 할인이 되었답니다. 현장을 찾는 손님에겐 제 혀와 발을 맛볼 영광도 주어진답니다.

그걸 위해서요. 저희 엄마가, 제 새끼가, 제 동료가 눈앞에서 올가미에 질질 끌려갔습니다. 눈앞에서 쓸개를 적출당하고 혀를 잘리고 발목이 잘렸습니다. 그걸 다 지켜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이었어요. 대체 어찌하여 그리 잔인할까요. 그렇게 해 얼마나 행복해지려는 걸까요.
/사진=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사진=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사향 고양이 :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좁은 철장에 갇혀 커피 열매만 먹어야하는 똥 만드는 기계가 되어버린 제 친구들을 구원해달라고요. 그 똥을 주워먹으려고 제 동지를 강제로 가둔 변태같은 인간들을 벌해달라고요. 우리 육신이 별미라며 제멋대로 잡아먹더니, 사스를 옮겼다고 중국 광둥성에 살고 있던 제 가족과 모든 동족을 살해한 이 끔찍한 이들을.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저의 죄는 무엇입니까. 왜 저는 인간에 의해 바이러스 숙주로, 고기로, 커피똥 기계로, 고통과 두려움 속에 죽어가야 합니까. 신이시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크릴새우 : 헛소문이 돌았습니다. 제 몸에서 뽑아낸 기름이 인간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요. 한국에선 매년 저를 수만 톤씩 잡아들이더니, 기어코 세계 3위가 되더군요. 평범한 물고기 기름인데, 인간들은 다른 기름이 얼마든지 있는데, 저를 먹지 않고도 얼마든 살 수 있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추운 남극의 펭귄, 바다사자, 물개, 물고기, 고래, 오징어, 바다새는 제가 꼭 필요합니다. 날씨는 더워지고, 얼음은 계속 녹고, 1970년 이래 저는 80%나 줄었습니다. 이대로면 멸종하겠지요. 그러면 남극의 모든 생물들도 굶어 죽을 겁니다. 그들에게 양보할 순 없는 걸까요.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묵묵히 지켜보던 소가 이렇게 말했다.

소: 올해는 비가 정말 많이 왔어요. 제 짧은 우생에서 축사 밖을 나온 건 처음이었어요. 빗물이 축사로 가득 들어와 죽을힘을 다해 탈출했어요. 살고 싶었어요. 필사적으로 헤엄을 쳤어요. 전 흙탕물 속을 헤엄치다 물을 피해 높은 곳을 향해 걷고 또 걸었어요. 해발 531미터까지 올라갔어요. 그냥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 멀리 인간들이 몰려와요. 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대요. 제게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요.



※위 이야기는, 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이동시)', 생명다양성재단이 기획한 '절멸- 질병 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을 다시 구성한 것입니다. 주옥 같은 전문은 이동시 SNS(@edongshi)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엔 작가 30명이 참여했습니다.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당한다, 썰린다"
박쥐 X 정혜윤(작가) / 천산갑 X 김한민(작가) / 멧돼지 X 김산하(과학저술) / 오리 X 정세랑(SF) / 돼지 X 이슬아(작가) / 낙타 X 김탁환(소설) / 뱀 X 요조(뮤지션) / 새우 X 김보영(SF) / 곰 X 홍은전(작가) / 호저 X 유계영(시인) / 순록 X 정다연(시인) / 고래 X 이수현(SF) / 코알라 X 김하나(작가) / 소 X 이라영(작가) / 고슴도치 X 김남시(미학자) / 달팽이 X 성다영(시인) / 닭 X 최용석(판소리) / 양 X 양다솔(작가) / 말 X 전범선(뮤지션) / 비둘기 X 이내(뮤지션) / 개 X 강하라/심채윤(작가) / 사향고양이 X 초식마녀(유투버) / 밍크 X 김도희(동물권 변호사) / 오소리 X 단지앙(유투버) / 너구리 X 이지연(활동가) / 쥐 X 서민(기생충 연구자) / 어류 X 남형도(기자) / 고릴라 X 김영환(동물법연구자)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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