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과로사는 기업의 타살…작업량 조절 어려워"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택배를 규탄하고 있다. 2020.10.19/뉴스1

30대 택배 기사가 숨지자 택배노동자들 사이에서 '심야 배송 금지' '분류 작업 추가' 등의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과로사위)는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과로사위에 따르면 한진택배 동대문기사 신정릉대리점에서 일했던 기사 김모씨(36)가 1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동료들에게 발견됐다.


과로사위는 "김씨는 수면 도중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한진택배 측은 김씨가 지병으로 숨졌다고 주장하지만 부검으로 밝혀진 김씨 사인인 '허혈성심혈관계 질환'은 보통 심근경색으로 불리고 이는 고용노동부가 인정한 과로사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과로사위는 "김씨 죽음은 '심야 배송'이 부른 타살이자 의문의 여지가 없는 과로사가 분명하다"며 "숨지기 4일 전인 지난 8일 김씨는 새벽 4시28분에 동료에게 '집에 가고 있다'고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내는 등 늦게까지 일을 했다"고 설명했다.

과로사위가 공개한 김씨의 8일자 카톡 대화창에서는 김씨가 남긴 '어제도 새벽 2시까지 배송했다' '저 집에 가면 5시인데 밥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못 잔다' '터미널에서 또 분류작업 해야 한다' '대리점 소장이 돈 벌어오라고 한 건 알겠는데 매일 같은 일이 발생할 것'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로사위는 "김씨는 카톡 메시지에서 7일 420개를 배송했다고 했다"며 "과로사위 확인 결과 6일 301개, 추석 연휴인 지난 달 22일 323개, 23일 301개 등을 배송했다"고 했다.

과로사위는 "일부에서는 '개인사업자들인 택배노동자는 힘들면 작업량 줄일 수 있지 않냐'는 의견이 나온다"며 "그러나 8일 카톡에서 '16번지 안 받으면 안되나요'라고 한 김씨 호소에서 볼 수 있듯 작업량 조절은 사실상 힘들다"고 덧붙였다.
"하루 400개 물량 이해하는 국민 없을 것…안전 위한 논의 필요"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택배를 규탄하고 있다. 2020.10.19/뉴스1

이날 회견에는 김씨 유족도 참여해 의견을 밝혔다. 숨진 김씨의 친동생은 "형이 생전에 지병으로 약을 먹거나 병원 간 기록이라도 있으면 지병이 사인이라는 점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겠지만 아니"라며 형의 죽음이 철저히 규명됐으면 하고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사측의 공식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어"한진택배는 형이 200개 정도 물량을 배달했기에 다른 기사들보다 적게 배달했다고 한다"며 "만에 하나 물량이 200개라고 치더라도 200개는 적은 양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400개 이상의 물량을 처리하고 새벽 4시 넘어 퇴근하고 그제서야 밥을 먹고 다시 일터를 나가는 환경은 유족인 저도 이해가 안 가지만 다른 국민분들께서도 이해를 못할 일"이라고 했다.

박석운 과로사대책위 공동대표는 "사인을 숨긴 한진택배도 기가 막히지만 정부 당국의 안일하고 나태한 법집행이 정말 큰 문제"라며 "추석 전 정부와 택배사 대표들이 모여 심야 배송 안 하겠다고 합의하고 사진 찍었지만 심야 배송은 지금도 일어난다"고 꼬집었다.

박 대표는 "추석 연휴 이후 사회적 감시가 느슨해지자 바로 택배 기사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했다"며 "악순환을 끊기 위해 분류 인력을 택배사별로 추가 배치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는 "정부가 택배사들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심야 배송 여부를 감시해야 한다"며 "택배 산업의 구조적 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 국회, 택배사, 시민사회가 모두 모여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하는 형태에 상관없이 받을 수 있는 생명·안전 보장책 마련해야"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택배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산업안전기준'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며 "우선 일하는 형태에 상관없이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명 사망사고가 날 때에는 29명이 중대재해위험에, 500명이 관련 위험에 노출된 것이라는 '1:29:500'의 법칙이 있다"며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현실을 대입해보면 위험이 팽배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기업은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어서 '안전 조치를 도입하면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을 것"이라며 "한 두 기업이나 정부가 '잘해보자'고 고쳐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들이 함께 안전 조치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협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