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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이, 24시간 남았습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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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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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하루를 보낸다면, 그동안 삶을 정리해보니…"존재만으로 찬란히 빛나는 거라고"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삶의 '마지막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질까. 그런 생각이 필요하다 여겼다. 실제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사진=남형도 기자 시계 화면 캡쳐
삶의 '마지막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질까. 그런 생각이 필요하다 여겼다. 실제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사진=남형도 기자 시계 화면 캡쳐
벌써 10년쯤 되었을까. 여느 때처럼 평범히 동네를 걷던 날이었다.

갑자기 '쿵' 하고, 내 앞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였다. 고개를 뒤로 꺾어 아파트 위를 올려다봤다. 범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화가 나기보단 그냥 멍해졌다. 조금 걸으며 정신을 차렸다.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한 걸음만 빨리 갔어도 죽을 뻔했구나.'

그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단 한 발자국이란 걸 알았다. 내일이 반드시 주어진단 보장이 없다는 걸. 그런 생각에 잠겼다가 바쁜 삶에 다시 잊고 살았다.



'중간 저장'하는 마음으로


홀로 매달려 있는 나뭇잎. 언제 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삶이란./사진=남형도 기자
홀로 매달려 있는 나뭇잎. 언제 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삶이란./사진=남형도 기자

그 일이, 서른여덟 살 가을에 문득 생각났다. 나뭇가지에 홀로 매달려 바람을 견디는 마른 나뭇잎 하나를 보다가. 마흔 즈음이라 그런지, 상념에 빠지게 하는 선선한 바람 때문인지.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뉴스 검색창에 '사망'이라고 쳐봤다.

필리핀에선 태풍이 휩쓸어 19명이 숨졌단다. 터키와 그리스에선 강진으로 75명이 사망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총격 테러로 19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캐나다에선 흉기 난동으로 길 가던 사람 두 명이 운명했다. 우연히 삶을 등질 이유가 이렇게나 많았다. 잊고 살았을 뿐.

그들은 그날 자신이 떠날 거란 걸 알고 있었을까. 그러니 별안간 두려워졌다. 갑작스레 죽는다면 괜찮을까 싶어서. 차마 못 전한 말들과 아직 못한 일들과 돌아보지 못한 내 삶. 컴퓨터가 갑자기 꺼지면 공들인 문서가 다 날아가듯이. '중간 저장'이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내 삶의 '마지막 하루'라 생각하고 보내보기로 했다. 쉽진 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런 절박함은 어렵더라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시간은 사실 줄어드는 것


쉽진 않은 일. 그래서 감정이입을 돕기 위해 '타이머'를 맞췄다. 설정한 건 24시간. 종료 시엔 알람이 울린다. 그러면 내 마지막 하루도 끝난다고 생각하려고.

시작 버튼과 함께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23시간 59분 59초, 58초, 57초, 56초. 뭘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23시간 56분 48초가 됐고, 멍을 때리니 23시간 55분 30초가 됐다. 쉼 없이 흐르는 게 보였다.

시간은 사실 그리 줄어드는 거였다. 마지막 시점은 다 다르겠으나, 계속 줄어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니까. 어쩌면 늘 써왔던 '시간 잘 간다'라는 말은 착각하게 하는 위안의 말일 거라고, 마치 우리 생(生)이 끝이 없는 것처럼.

엄습하는 조바심을 애써 가라앉히고, 해야 할 중요한 것들을 생각했다.



D- 23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더 있는 것. 마지막 날이 오더라도./사진=남형도 기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더 있는 것. 마지막 날이 오더라도./사진=남형도 기자

차로 아내를 회사까지 바래다줬다. 시루떡 같은 지하철에 몸을 싣는 출근길이 험하단 걸 너무 잘 알았다. 단 하루라도 편히 갔으면 했다. "마지막 날인데 더 중요한 거 해야지"라고 아내가 걱정했다. 이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했다.



정리 1: 꿈이라 불렀던 것들


시선에서 벗어난 무언가에 관심이 닿길 바랐다. 그래서 이 꿈을 갖게 됐다./사진=삼성화재안내견학교
시선에서 벗어난 무언가에 관심이 닿길 바랐다. 그래서 이 꿈을 갖게 됐다./사진=삼성화재안내견학교

우선을 꿔왔던 긴 여정에 대해 돌아봤다. 삶을 지탱해준 큰 힘이었으니.

어렸을 때를 회상했다. 마음 쓰이는 게 많았었다. 초등학교 땐 잠자리 날개를 잡고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따지다 싸웠었다. 중학교 땐 "엄마도 없는 게"란 말을 친구가 듣는 걸 보고 같이 싸웠었다. 대학교 땐 술 취한 아저씨가 차도로 뛰어드는 걸 막다가 발길질을 당했다. 오지랖이 넓었다.

봉사활동 가서 처음 알았다. 세상엔 대문도 없는 집이 있고, 여기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내가 본 걸 크게 떠들어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었다. 꿈이 생겼고 기자가 됐다. 1~2년 차에 그리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회의감에 그만뒀다가 어쨌거나 글의 선한 힘이 좋아 돌아왔다.

억울하게 해고당할 뻔한 선생님을 구했고, 임산부를 밤샘 근무시키는 회사를 고발했고, 추운 겨울날 온기를 찾아 차에 숨은 길고양이들이 죽지 않게, 한 번만 두드려달라 했다. 이후엔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기획해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그러나 함께 꼭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알렸다.

세상을 다 바꾸진 못했으나, 작은 무언가 하나라도 나아지게 했으니. 그래도 조금은 역할을 했다고.



D-21시간



아내가 먹고 싶은 밤 케이크를 사놓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사진=벌써 먹고 싶은 남형도 기자
아내가 먹고 싶은 밤 케이크를 사놓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사진=벌써 먹고 싶은 남형도 기자

아내를 데려다주고 밤 케이크를 사러 홍대로 갔다. 어느 늦은 밤, 아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맛있는 곳을 수소문해 한 곳을 찾았다. 가격은 7000원, 몰래 사려 했는데 카드를 긁자마자 "뭐 샀어?"란 메시지가 왔다(지켜보고 있다). 몰래 기쁘게 해주려 했는데.



정리 2: 후회하지 않도록


죽기 전엔 꼭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죽기 전엔 꼭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은인 같은 옛 친구에게.

중학교 때 독서실에서였다. 사물함 문을 닫고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어떤 형이 따라오라고 했다. 동네서 좀 논다는 형이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문 닫는 소리가 컸다며, 내게 으름장을 놨다.

그때 그 친구가 들어왔다. 공부도 싸움도 잘하던 멋진 녀석이었다. 친구는 그 형 앞을 막아서더니 "무슨 일이냐"고 따졌다. 소리가 커지자 다른 형들이 몰려와 친구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녀석은 나 대신 맞았다, 아무 이유 없이. 나중에 알게 됐다. 따로 끌려가서 더 맞았다는 걸.

고등학교 때 친구는 유학을 갔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일이 두고두고 맘에 남았다. 내가 그때 제대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나 싶어서.

초등학교 친구에게 수소문해 연락처를 어렵사리 구했다. 다행히 그 친구였다.

전화할 용기도 안 나서 문자를 보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때 너무 고맙고 또 미안했었어. 정말 꼭 제대로 고마웠다고 얘기하고 싶었어. 차라리 나도 같이 맞았으면 이렇게 맘에 남아 있진 않았을 거야. 그날부터 내내 미안했었어. 넌 정말 좋은 친구였어."

그랬더니 답장이 이렇게 왔다. "미안할 일도, 고마워할 일도 아니었어. 당연히 그랬어야 했어. 그럴 수 있어서 난 마음이 좋았어. 너도 나에게 좋은 친구였어. 미안해 하지마. 그렇게 얘기해줘서 부끄럽고 또 고마워 형도야."

둘도 없는 멋진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는데 시간이 왜 이리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D-19시간



오래 미뤄뒀던 일들도 하나씩 생각났다. 시간이 많을 땐 까먹었던 일들이. 차량 점검 중./사진=남형도 기자
오래 미뤄뒀던 일들도 하나씩 생각났다. 시간이 많을 땐 까먹었던 일들이. 차량 점검 중./사진=남형도 기자

밤 케이크를 사고 돌아오는 길, 차 시동 거는 소리가 작아졌길래 수리 센터에 가서 배터리를 갈아야 하는지 확인했다. 그런 건 미리 해둬야 위험하지 않으니까. 추운 겨울이 다가오니까. 아내는 잘 몰라서 당황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 아직 교체할 때가 안 됐다고 했다. 양심적인 직원 설명에, 괜스레 고마웠다. 그런 게 귀한 세상이니.



정리 3: 넌 좋은 친구였어


너 그러다 내가 치마 한 번 더 입는 수가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너 그러다 내가 치마 한 번 더 입는 수가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맘은 넘쳤으나 표현하긴 어려웠던 친구들에게 남길 말도 있었다. 이렇게 밑밥을 깔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봤는데, 우리 삶이 갑작스레 끝날 수도 있잖아. 그럴 때 대비해서 하고 싶은 말을 미리 해놓는 거지."

다섯 살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친구에겐 이렇게 말했다. "넌 내게 가장 오래된 좋은 친구야. 그런 얘길 하고 싶다." 그랬더니 고맙다며 이렇게 답이 왔다. "그동안 즐거웠다 친구야. 너랑 같이 보냈던 추억들이 아련하다."

또 다른 친구에게도 이렇게 물었다. "난 너한테 어떤 친구였냐"고. 그랬더니 "치마 입는 친구"라는 답이 돌아왔다(치마 체헐리즘 참조). 웃음이 터졌다. 녀석에겐 "넌 내 제일 친하고 편하고 좋은 친구였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힘내라며 '샌드위치 할인 쿠폰'을 보내왔다.

해외에 나가 있는 친구에게도 연락했다. "넌 나한테 고마운 친구야. 수능 볼 때 초콜릿도 챙겨주고." 그러니 "이 XX"라고 하며 이렇게 답이 왔다. "너도 좋은 친구야. 군대에 있을 때 편지도 써주고." 그래, 내가 너 콜렉트콜(수신자 부담 전화)도 많이 받아줬었지.



D-17시간



동네 고양이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일. 살아야 하는 일./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일. 살아야 하는 일./사진=남형도 기자

집에 와선 동네 고양이에게 밥을 듬뿍 줬다. 다시 또 줄 수 없을지라도 오늘의 밥은 줘야 하니까. 우리끼리만 아는 약속이니까. 헛걸음하면 안 되니까.

그리고 겨울철 따뜻하게 났으면 해서 튼튼한 겨울 집을 주문했다. 그날따라 몹시 추워서 걱정이 됐다. 속으로 이리 말했다. '무사히 보내고, 내년 봄에도 우리 동네에서 지내줘. 내가 없더라도.'



정리 4: 싫었던 나도 받아들이고


겨드랑이와 뱃살은 독자들의 안구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가 필요했다./사진=풉하고 웃는 남형도 기자 아내
겨드랑이와 뱃살은 독자들의 안구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가 필요했다./사진=풉하고 웃는 남형도 기자 아내

삶에서 미웠던 내 모습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지막이란, 조금은 너그러워도 괜찮은 거니까.

조금 긴 수험 생활을 했다. 수능을 한 번 망치고, 또 망쳤을 때 날 극도로 미워했었다. 도저히 용납이 안 됐었다. 잔뜩 움츠러들었다. 부모님 뵐 낯이 없었다.

다시 준비할 땐 내게 작은 틈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넌 그렇게 하면 또 망해'라고. 무척 괴로운 시간이었다. 대학에 어렵게 들어간 뒤에도 조바심이 났었다. 또 늦을까 싶어서. 채찍질을 많이 했었다.

뒤늦게나마 토닥였다. 그럴 수 있다고. 노력해도 맘처럼 안 되는 게 삶이라고. 그건 네 잘못만은 아니라고. 덕분에 홀로 생각하는 시간도 많았고, 남들이 못 보는 것도 보게 됐다고. 지각 인생이라도 괜찮았다고. 그러니 더는 미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뱃살을 만지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살을 뺀 내 모습만 늘 바랐었어. 그게 아니면 밉다고 외면했었어. 근데 뱃살 많은 나도 괜찮아. 그냥 맛있는 게 좋았던 것뿐이야.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사느라 버티느라, 먹으며 스트레스 풀었던 날들도 많았으니까. 그 마음 다 알아.'



D-15시간


당연하게 여겼던 파란 하늘, 가을 단풍잎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사진=남형도 기자
당연하게 여겼던 파란 하늘, 가을 단풍잎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사진=남형도 기자

한가한 오후엔 동네 산책을 했다.

하늘은 새파랗고 공기는 상쾌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불그스름한 물감을 부어놓은 듯한 단풍잎은 어찌나 또 예쁜지. 새삼 물끄러미 보게 됐다. 살아 있어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들이 이리 많아서.

이 모든 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얼마나 아쉽던지. 왜 그리 당연히 생각하고 살았었는지.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더 천천히 걸었다.



정리 5: 미웠던 너도 용서하고



내 삶에서 미워했던 그대들에게.

그 날 새벽, 17살 된 아롱이가 아파서 찾아갔는데 "딴 데 가라"며 문을 안 열어준 동물병원 선생님. 매일 같이 악의적으로 괴롭히며 밤잠 설치게 했던 옛 회사 M 편집장님, S 편집장님. 편들어주는 척하며 다 털어놓게 한 뒤 뒤로 욕했던 몇몇 선배들. 힘 좀 쓴다고 많은 애들 괴롭혔던 초중고 그X. 잘못해놓고 기사 막기에만 혈안이었던 많은 이들. 그밖에 기억에서 어렵사리 지워낸 이들.

미워했으나 떠나기 전엔 용서하려 합니다. 괜찮아서도, 다 이해해서도 아닙니다. 저를 위해서입니다. 당신들보다 더 많은,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기억을 간직했으니까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좋은 것만 남기고 싶습니다. 그대들과 연이 닿았던, 많은 이들 또한 같은 마음일 겁니다.



D-13시간


학대 당하기 전 힘찬이 모습(왼쪽)과 학대 당한 뒤 모습(오른쪽)./사진=유엄빠 인스타그램
학대 당하기 전 힘찬이 모습(왼쪽)과 학대 당한 뒤 모습(오른쪽)./사진=유엄빠 인스타그램

동물 학대를 당해 한쪽 눈을 잃고, 턱은 다물지도 못하는 힘찬이 생각이 났다. 이 예쁜 녀석이 발길질을 당한 것으로 추정이 됐다. 어떻게든 학대범을 잡으려 수배 기사를 썼었다. 새로운 내용을 취재할 때마다 기사에 업데이트했다. 어떻게든 많은 기록을 남겨 꼭 잡겠다고. 그날도 새로 업데이트했다.

힘찬이가 처음 발견된 곳은 '서신 119 지역대(서신의용소방대, 경기 화성시 서신면 바다뜰길36) 옆 공장'이다. 녹색 목줄을 하고 있었다. 수컷(중성화 안 됨)이고, 갈색과 검정색이 섞인 4~5개월 강아지다. 10월 23일 저녁부터 24일 새벽 사이, 인근을 지나던 이에게 학대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목격한 이는 human@mt.co.kr로 제보 바란다. 꼭 잡을 것이다.

힘찬이 곁을 지키며 치료해주는 유기동물의 엄마·아빠(유엄빠, @youumbba)에게도 큰 응원과 후원을. 6일 저녁 수술한 힘찬이의 건강 회복을 위해 아무쪼록 기도를. 녀석은 긴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다. 앞으론 분명 아프지 않고 행복한 삶만 남을테니까.



정리 6. 엄마, 아빠, 누나에게


늘 이렇게 말하는 사람./사진=남형도 기자
늘 이렇게 말하는 사람./사진=남형도 기자
엄마. 학창시절 시험공부를 하다 새우잠을 잘 때, 이불 덮어주고 맞춰 놓은 알람 다 꺼버렸던 사람. 왜 껐냐고 일어나 따지면 "푹 자고 하는 거야. 건강한 게 최고야"라며 타일렀던 기억. 무언가 이루려 애쓸 때마다 "순리대로 해라"라며 등을 토닥이던 분. 여전히 "체헐리즘이고 뭐고 대충 하라"며, 언제나 가장 편한 쉴 곳이 돼 주는 그 이름.

아빠. 매일 아침 일어나면 늘 이미 집에 없었던 사람. 철없는 중학생 때 때려가며 엄하게 대해주어서 그땐 원망했고, 지금은 너무 고마운 기억. 첫 월급을 받고 나서 가장 많이 생각났던 분. 30년 넘게 아프단 말도 없이 출근하고, 늦은 밤 술에 취해 돌아올 때면 "사랑한다"고 크게 떠들어 등짝 스매싱을 당했었던.

누나. 학창 시절엔 많이도 싸우다가 커서는 남몰래 챙겨주던 사람. 공부할 때 들으라고 좋은 음악들 다 모아서 MP3에 넣어주던 기억. 길가에 다친 비둘기 다 피할 때, 데려와 치료해주는 정(情) 많은 사람. 바쁜 동생 대신 엄마, 아빠 더 많이 챙겨주는 고마운 그 이름.

저는 그런 가족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만나고 싶어요. 사랑해요, 정말 많이.



D-11시간


수고했어, 오늘도. 아내의 퇴근길./사진=남형도 기자
수고했어, 오늘도. 아내의 퇴근길./사진=남형도 기자

어둑어둑한 저녁, 아내를 데리러 갔다. 집에 오는 길, 옆자리에선 나지막이 숨소리만 들려왔다. 고단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걸 보니 좋았다.




정리 7. 어머님과 아버님


한 번 먹으면 맛있어서 난리나는, 장모님표 집밥./사진=배고픈 남형도 기자
한 번 먹으면 맛있어서 난리나는, 장모님표 집밥./사진=배고픈 남형도 기자
어머님(장모님). 가까이서 늘 최고로 맛있고 따뜻한 집밥을 챙겨주는 분. 녹초가 돼 집에 돌아왔을 때, 된장찌개 한숟갈만 떠먹어도 피로가 어찌나 싹 다 풀리는지. 사위가 겨울엔 추울까, 여름엔 더울까, 세심하게 돌봐주시는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그 존재만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하고 기운이 나는지. 남서방은 정말 운이 좋아요. 어머님 같은 어머님을 만나게 되어서.

아버님(장인어른). 엄한듯 하지만 정(情)이 참 많은 분.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어서, 그 힘듦을 알아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진 않았던 사람. 맨 땅에 헤딩하듯 삶과 싸워 기어코 성공을 이룬 분. 영감이 되는 좋은 이야기 덕분에 무너지려 할 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요. 책임 강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아버님 뵈면서요.

두 분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많이.



정리 8: 똘이, 그리고 아내에게


빤히 바라보는 게 참 좋다./사진=하트 뿅뿅 남형도 기자
빤히 바라보는 게 참 좋다./사진=하트 뿅뿅 남형도 기자

반려견 똘이. 매일 처음 만나는 것처럼, 까만 눈망울로 날 빤히 바라보는 녀석. "형아 온대"란 말 한마디만 들려줘도 현관 앞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면 어찌나 꼬릴 세차게 흔들며 웃는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귀찮을 수도 있는데, 모른 척하고 싶기도 할 텐데, 늘 한결같은 다정함으로 반겨주던 아이.

털을 깎다가 상처가 크게 나서 네 하얀 발에서 피가 흘렀던 밤. 널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 꿰맸었지. 집에 돌아와 한없이 자책하던 내게 다가와, 괜찮다고 말하듯이 가만히 기대주던 너. 그 온기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감히 이야기할 수 있어. 너와 함께 바보처럼 뛰어다니며 놀았던 그 시간이, 내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었다고.

아내는 '마지막이라면 어떨까'란 물음에 벌써 울먹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그 모습에 더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런 얘기 안 할게, 알겠어"하고 달랬을 뿐.

오래도록 바랐지만 아마 없을 거라 여겼던 이상형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아니면 굳이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함께여서 더 외로운 기분을 잘 알기에. 그런데 우연히 아내를 만났다. 그날 6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돌아오던 여름밤, 소개해준 동생에게 말했다. "이제 더는 누군가를 안 만나도 될 것 같다"고.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었는데, 결혼한 뒤엔 사계절이 다 좋아졌다. 기념일에 힘주지 않아도 괜찮단 것도 처음 알았다. 그냥 함께 있는 매일 매일 특별했으므로.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며 아쉬워했었다. 가장 아플 때도 함께 있었다. 내가 아픈 것보다, 그걸 신경 쓰는 이 때문에 더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인연에, 삶의 모든 행운을 다 썼다고 해도 후회 없다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30년 넘게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한 대도, 그 지루함을 다 견디고 이윽고 만날 거라고. 그땐 좋아하는 떡볶이 가게에 가서 소주 한 잔을 하고 싶다고.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말이다.



D-9시간, 그리고 깊은 잠



소주는 거들뿐./사진=마감하다 배고픈 남형도 기자
소주는 거들뿐./사진=마감하다 배고픈 남형도 기자

늦은 밤 식사를 했다. 좋아하는 햄버거와 떡볶이와 소주로 준비했다. 그보다 나은 게 생각나지 않았다. 편안한 옷을 입고 소주잔을 부딪치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최고의 만찬이랄까.

그리고 마지막 날 밤,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마지막 정리: 가장 행복한 단 하나의 장면


햇살이 길어진 거실./사진=남형도 기자
햇살이 길어진 거실./사진=남형도 기자

내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한 장면으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떠올리고 싶으므로.

마음을 채우는 건 대개 소소한 것들이었다. 우선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라면 좋겠다. 아내와 반려견 똘이(하얗고 털찐 말티즈)와 잠에서 깬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충분히 뒹굴어도 좋다.

배경은 밝고 따뜻하고 시원한 계절, 가을 아침. 거실엔 긴 햇볕이 드리워져 있다. 창문을 열면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들과 작은 새들이 소곤소곤 지저귀는. 창밖에 산비둘기가 날아가면 똘이는 화들짝 놀라 쫓아가며 짖고, 아내와 난 그걸 보며 함께 웃는다.

음악과 커피도 있었으면 싶다.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를 틀어 놓는다.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 그런 가사가 흘러나오면 잔 두 개에 따뜻한 커피를 준비한다. 가져와 아내와 똘이 옆에 나란히 앉는다. 하늘을 보며 별 것 아닌 얘길 나눈다. 똘이는 딸랑이를 물고 와 놀아달라고 재촉한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해서, 내 삶은 그걸로 충분히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단풍잎은 떨어지기 전 가장 짙더라


같은 빛깔의 나뭇잎이 하나도 없다./사진=남형도 기자
같은 빛깔의 나뭇잎이 하나도 없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 하루가 그리 끝나고, 선물처럼 또 다른 하루가 주어졌다. 어쩐지 더 귀했다. 앞으로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쉬는 날이라 아내와 함께 한적한 낙엽길을 걸었다. 바닥엔 색색의 나뭇잎들이 떨어져 곱게 덮여 있었다.

쏟아지는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고, 곱게 쏟아지는 햇살을 머금고, 천둥 번개 소릴 들으며 익어갔으리라. 그런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가장 짙은 색을 띠게 됐다.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니, 하늘하늘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도 다시 보였다.

낙엽길은 곱게 바스락거렸다. 찬찬히 보니 같은 색깔이 하나도 없었다. 크든 작든, 짙든 옅든 간에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그 존재만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거였다.
"당신의 삶이, 24시간 남았습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에필로그(epilogue).

사진첩을 보는데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사진이 있더라.

아침 알람을 캡처한 거였어. 새벽 4시 45분, 새벽 4시 50분, 오전 6시 50분, 오전 7시, 오전 7시 10분. 시간도 참 다양하더라. 고단한 와중에 끄다가 모르고 캡처한 사진들. 부지런히 애썼던 흔적들. 그거 되게 대단한 거야, 그 하루가 어땠든 간에.

그러니까, 사느라 참 고생 많았다.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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