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같이 깨어난 식물인간, 보험금 못받나요

# 김지석씨(가명)는 몇 년 전 마주오던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하며 정면충돌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김씨의 자녀들은 가해차량 보험회사와 소송을 통해 김씨가 중증 뇌손상으로 노동능력을 100% 상실했고, 기대여명은 약 4년 정도로 추정된다는 신체 감정결과를 받아 입원비 등 모든 비용을 전액 보험금으로 지급받아 왔다. 그렇게 몇 년 후 병원에서 김씨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자녀들은 6개월 남은 김씨의 기대여명 기간 동안의 보험금을 일시에 받아 김씨를 시설 좋은 요양원으로 옮겼다. 남은 날이라도 힘든 치료보다는 편안한 상태로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얼마 후 기적적으로 김씨의 의식이 돌아왔고 예측했던 기대 여명일을 지나서도 건강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김씨의 자녀들은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론 앞으로 발생할 치료비, 간병비 등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컸다. 이미 보험사로부터 예측 기대여명 기간만큼의 보험금을 모두 받고 사고에 대해 합의 종결을 했기 때문이다.

기적처럼 식물인간 상태에서 의식이 돌아온 김씨와 자녀들은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까.


통상 교통사고로 가해차 보험사와 합의한 후 보험금을 받아 해당 사고건이 종결되면 더 이상 추가로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 특히 소송건의 경우 확정판결을 받으면 이전 재판과 모순되는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기판력’에 의해 재소송이나 재청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김씨처럼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 예측 여명보다 더 생존한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소송을 통해 예측 여명만큼 이미 보험금을 지급 받았더라도 다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이전 소송의 변론종결 당시에는 예견할 수 없었던 새롭고 중요한 후발적인 손해가 생겼을 경우 이전 소송의 기판력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씨와 유사한 판례에 의하면 ‘전소송의 변론종결 후에 새로운 적극적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그 소송의 변론종결 당시 그 손해의 발생을 예견할 수 없었고 (또 그 부분 청구를 포기했다고 볼 수 없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전 소송에서 그 부분에 관한 청구가 유보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소송의 소송물과는 별개의 소송물이므로 전소송의 기판력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김씨의 경우도 식물인간 상태에서 기대 여명이 종전의 예측에 비해 수년 연장된 돼 그에 상응한 향후 치료, 간병 등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은 소송 당시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시 소송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김씨와 유사한 사례에서 예측 여명으로 산정된 보험금을 일시에 수령했지만 예상보다 일찍 사망한 경우는 어떨까. 사망 시점과 예측 여명일과의 차이에 상응하는 보험금을 반환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다시 돌려줄 필요가 없다. 유사한 판례에 따르면 ‘판결이 확정된 후 피해자가 그 판결에서 손해배상액 산정의 기초로 인정된 기대여명보다 일찍 사망한 경우라도 그 판결이 재심의 소 등으로 취소되지 않는 한 그 판결에 기하여 지급받은 손해배상금 중 일부를 법률상 원인 없는 이득이라 하여 반환을 구하는 것은 그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면 보험사는 예측 기대여명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데 일시급으로 받았더라도 이보다 덜 생존하는 경우, 기판력에 저촉되기 때문에 보험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