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 스타트업, 코스닥 상장 문턱서 잇단 '기브업', 왜?

국내 최대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 ‘아이유 운동복’으로 유명한 ‘에이피알’, 스타트업 전문투자사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등 국내 유망 스타트업들이 상장문턱에서 잇따라 발길을 돌렸다. IPO(기업공개)를 위해 한국거래소에 상장심사를 신청했다가 자진철회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

업계에선 스타트업과 기관투자자들이 자금회수에 혈안이 돼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한국거래소의 상장기준이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모델을 좇아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종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 '전대차' 사업구조 한계

패스트파이브 26호 광화문점 /사진제공=패스트파이브

17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패스트파이브는 이달 16일 코스닥 예비심사청구를 철회했다. 심사철회는 상장준비 회사가 청구서를 접수한 후 심사과정 중 이를 자진 철회했다는 의미다. 올해 7월 코스닥 상장을 위한 심사를 요청한지 5개월여 만이다. 당초 연내 모든 절차를 마치고 국내 1호 공유오피스로 코스닥에 입성할 계획을 세웠다.


2015년 2월 설립된 패스트파이브는 국내 대표 공유오피스 운영사다. 서울 주요 지역에 27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입주사는 1900여개, 이용자 수는 1만8000여명이다. 외형에 비해 수익성이 약하다. 지난해 매출은 425억4900만원, 영업손실은 49억1400만원이다.

이번 심사 철회는 성장성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패스트파이브는 '위워크'처럼 임대 공간을 다시 빌려주는 부동산 임대사업(전대차)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이에 최근에는 임대 계약이 아닌 위탁운영 방식의 신규 사업구조를 내놓기도 했다.

상장 재추진 일정은 미정이다. 박지웅 패스트파이브 의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패스트파이브 상장 일정이 좀 미뤄지게 됐다"며 "당초 목표로 했던 일정보다는 이미 늦어진 측면도 있어서 '오피스 플랫폼' 회사로 성과를 좀 더 끌어올린 뒤 재추진해보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널디·메디큐브' 에이피알, 2개월 만에 '상장 철회'

패션 브랜드 '널디' 이미지 /사진=널디 홈페이지

에이피알(APR)은 불안정한 지배구조에 발목을 잡혔다. 상장 심사를 청구한지 2개월 만에 절차를 중단했다. 에이피알은 가수 아이유·지코 트레이닝복 브랜드 '널디'와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로 알려진 미디어 커머스 업체다.


거래소 측으로부터 김병훈 대표 등 경영진 측 지분율이 낮다는 지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분기말 기준 김 대표가 보유 중인 지분은 37%다. 에이피알에퀴티홀딩스(18%) 지분을 합치면 50%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실적은 양호한 편이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1612억원, 영업이익 137억원을 기록했다.

한 벤처캐피탈(VC) 관계자는 "상장 심사 단계에서 기본적인 지배구조 문제 때문에 절차를 철회하는 일이 흔한 사례는 아니다"라며 "최대주주 지분율을 포함해 지배구조를 고치려면 결국 다른 투자자들의 지분율을 같이 조정해야 하는데, 전향적인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액셀러레이터·핀테크 新산업 구조 '걸림돌'

기존과 다른 스타트업의 신사업 구조가 상장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국내 대표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이달 8일 상장 심사를 자진 철회했다. 액셀러레이터는 창업부터 초기 단계(시드~시리즈 B)의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하는 기관이다. 2018년 제도 도입 이후 현재 288개가 등록했다.

2014년 설립된 블루포인트는 기술창업 분야 전문 액셀러레이터다. 올해 상반기까지 사물인터넷(IoT), 로봇, 소프트웨어, 바이오 분야 등 151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들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1조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블루포인트는 내년 중 다시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이후 개선된 실적을 반영하고, 기존 VC와 액셀러레이터의 차별화된 사업구조를 보강해 상장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핀테크업체 아데나소프트웨어는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영국, 스위스 등의 글로벌 외환 유동성공급자(LP) 등에 외환마진거래(FX)와 지급결제(페이먼트) 소프트웨어를 판매·공급한다. 지난해 프리IPO(상장 전 자금 조달) 단계에서 기업가치를 150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았다.

핵심 거래처인 해외 금융업체들에 대한 투명성 우려를 털어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데나소프트 관계자는 "FX거래 프로그램, 지급결제 등 금융솔루션이 기존에 없던 사업구조인 탓에 여러 측면의 자료를 요구받았다"며 "거래처가 전부 해외 업체들이라 국내 기준에 맞는 자료를 다 준비하지 못했던 부분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상장 실패…'상장 문턱 높아'vs'기본 요건 못 갖춰'잇단 상장 실패를 두고 업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는 스타트업의 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뜨거운 기업공개(IPO) 시장 분위기에 편승해 무리하게 일정을 밀어붙였다는 분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 투자자들의 자금회수 요구에 쫓겨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다 보니 기본적인 요건이 미흡한 곳들도 있다"며 "스타트업들의 자진 심사철회는 사실상 거래소가 요구하는 정보를 갖추지 못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상장 문턱이 높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존 업체들과 다른 스타트업의 혁신 사업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상장을 계획 중인 한 스타트업 대표는 "혁신적인 사업구조를 추구하는 스타트업에 기존의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기업가치를 엄격하게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길을 막으면 코스닥 시장에 테슬라 같은 기업이 언제 나오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