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대신 받아 드려요" 무턱대고 믿었다간…

# 60대 안성진씨(가명)는 얼마 전 새벽에 운동을 나갔다가 뇌출혈로 길에서 의식을 잃었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쓰러지자 마자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수술비와 입원비가 부담이었다. 안씨는 3년 전 가입한 건강보험이 생각나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려다 문득 4년 전에 가벼운 뇌경색으로 7일간 입원한 사실을 가입 당시에 알리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보험사가 질병 사실을 속였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할까봐 염려하던 차에 손해사정사로부터 보험금을 못 받을 것이 분명하니 의뢰를 하면 대신 받아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입원했던 이력을 알리지 않고 보험에 가입한 안씨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을까. '계약 전 알릴 의무’란 보험에 가입할 때 계약에 따르는 위험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계약자가 보험사에 중요한 사항을 알려야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매주 암벽등반을 즐기는 동호인이 재해보험에 가입하거나, 불과 1년 전 암 완치를 받은 암 환자가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경우 보험사는 고객의 고지를 통해 이 같은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보험료를 할증하거나 특정 담보에 대해 보장하지 않는 ‘부담보’를 운영할 수 있다. 또 계약 전 알릴 의무 고지를 통해 일부 고객들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 역선택을 하는 것도 방지할 수도 있다.

상법 상 고지의무를 위반할 경우에는 보험사가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내에,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에 해지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일부 손해사정 업체들은 보험금 지급 사유와 연관성 있는 질병에 대한 고지를 위반한 경우, 가입한 지 3년이 지났어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것이라며 영업을 하기도 한다. 보험금을 받아 줄테니 수수료를 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험사는 안씨의 경우처럼 고지할 내용이 발병한 시점으로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지 않는다. 고지 위반은 상법상 3년이 지나면 적용할 수 없고, 약관상으로는 통상 보험금 지급사유 발생 없이 2년이 지나면 적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안씨의 경우처럼 일정 기간이 지난 경우에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계약자는 언제까지, 어떤 질병까지 미리 고지를 해야 할까. 보험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통상 3개월 이내 진찰이나 검사 같은 의료행위를 받은 적 있는지, 5년 이내 동일 질병으로 7일 이상 치료 또는 30일 이상 투약을 한 적이 있는지 등이 주요 고지 대상이다. 또 진단이력, 처방이력 등 보험사마다 정해놓은 고지 양식에 따라 최대한 충실하게 작성해야 보장을 받을 때 문제가 없다.


고지의무는 전적으로 고객의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보험 가입시 많은 고객을 머뭇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누락시키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 삼성생명을 비롯한 일부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 이력을 자동으로 불러올 수 있도록 하는 등 고지 의무 위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고지의무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보험설계사라면 당장의 계약에 눈이 멀어 고객을 위험을 빠뜨리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며 "보험가입 시 다소 번거롭더라도 꼼꼼하게 고지 항목을 기재하는 보험설계사가 장기적으로 고객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