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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아웃'에 말문 막힌 할머니…굳이 영어 써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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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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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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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배려-③]어르신들에게 '무인 주문기', 이래서 어려워…영어 남발, 과정 복잡, 버거 하나 사는데 12번 눌러야

[편집자주] 사람이 있던 자리를 '기계'가 빠르게 채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바뀌었네"하고 적응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냥 그걸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힘듦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것 좀 도와줘요"하기도 민망하고, 또 아예 사람이 없기도 하니까요. 비용 절감과 편리란 미명하에 많은 어르신들이 소외되고 있습니다. 조금의 배려만으로도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신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린 누구나 나이가 듭니다.
'테이크 아웃' 대신 '포장 주문'이라고 쓰면 될 일이다. 17일 오후 찾은 ㅁ프랜차이즈 매장 내 무인 주문기 화면./사진=남형도 기자
'테이크 아웃' 대신 '포장 주문'이라고 쓰면 될 일이다. 17일 오후 찾은 ㅁ프랜차이즈 매장 내 무인 주문기 화면./사진=남형도 기자
박막례 할머니(75, 유튜버)가 ㅁ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에 간 영상(2019년 1월 14일자,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이 있었다. 할머니는 손녀와 무인 주문기 앞에 섰다. 화면을 누른 뒤 두 개의 선택지가 나왔다. 하나는 '매장에서 식사', 또 다른 하나는 '테이크 아웃'. 한글로 된 건 무난히 읽었으나, 영어를 한글로 옮긴 '테이크 아웃'에선 말문이 막혔다. 손녀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봉다리에 있었어"라고만 이해했다.

다른 어르신들도 비슷할까. 서울 강서구 내 ㅁ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서 '테이크 아웃'이라 쓰인 화면을 찍어, 60~70대 행인 50명에게 보여줬다. 무려 41명(82%)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중 12명(29%)만 "봉지를 보고 포장하는 걸로 짐작했다"고만 했다. 김길섭 할아버지(78)는 "한글인데 못 알아보겠네"라며 고개를 저었다. '포장 주문'이라 설명하자, 그제야 끄덕였다. 굳이 영어로 안 써도 되는 거였다.

어렵게 설계된 '무인 주문기(키오스크)'도 어르신들이 이를 두려워하는 원인이란 거였다. 무인 단말기가 설치된 서울 소재 가게 10곳을 돌며, 이들 입장에서 어떤 부분이 불편할지, 새삼 다시 들여다봤다.



'셀프', '후렌치 후라이' 등 영어 표현 남발…"어려워요"


아예 영어만 쓰여 있던 무인 단말기. 주문을 처음 누르는 것부터 난관일 게다./사진=남형도 기자
아예 영어만 쓰여 있던 무인 단말기. 주문을 처음 누르는 것부터 난관일 게다./사진=남형도 기자
한글로 써도 될 표현을 영어로 쓴 사례는 '테이크 아웃' 말고도 많았다. 아예 영어만 쓰여 있는 곳도 있었다.

ㅁ프렌차이즈 버거 무인 주문기는 첫 화면부터 '주문하시려면 터치(touch)하세요'라고 돼 있었다. 그냥 '주문하시려면 화면을 누르세요'라고 써도 될 터였다. ㅇ샌드위치 매장 무인 주문기엔 아예 영어로 'order(주문하다란 뜻)'라고만 적혀 있었다. 영어 뜻을 모르면 못 누르는 것이다.

음식 메뉴를 선택하는 화면도 마찬가지였다. 영어 발음을 한글로 그대로 옮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케이준 비프 스낵랩' 같은 건 메뉴 전체가 영어였고, 어떤 건지 설명도 없었다. '후렌치 후라이'는 '감자튀김'으로 바꾸면 안 됐을까. '에그 불고기 버거'는 '계란'이란 설명 정도는 써줘도 되지 않았을까. 모두가 영어를 잘 아는 건 아니니.
쉐이킹프라이, 크리미모짜볼, 치즈프라이, 어니언링./사진=남형도 기자
쉐이킹프라이, 크리미모짜볼, 치즈프라이, 어니언링./사진=남형도 기자
ㅇ샌드위치 매장 무인 주문기도 음식 메뉴가 영어+한글로 혼용돼 있었다. 계란 샌드위치를 굳이 'EGG샌드위치'라 표현하고, 갈릭베이컨치즈도 영어 발음 그대로 아무 설명 없이 써뒀다. 사진만 봐선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음료를 선택하는 화면에서도 '스몰사이즈'나 '빅사이즈'로만 써뒀다. '작은 것'과 '큰 것'으로 대체 가능한 거다.

음식 메뉴를 무사히 선택한다 해도 난관이 많아 보였다. ㅁ프랜차이즈 버거 무인 주문기에선, 주문대에서 제품을 받아가는 걸 두고 '셀프 서비스'라고 굳이 영어로 표기했다. 세트 주문을 유도하기 위한 화면에선 '업그레이드 하시겠습니까?'란 표현도 많이 썼다.
퍼스널 옵션, 스몰 사이즈, 빅사이즈, 수프리모, 마일드./사진=남형도 기자
퍼스널 옵션, 스몰 사이즈, 빅사이즈, 수프리모, 마일드./사진=남형도 기자
어르신들은 어렵다고 했다. 홍성순 할머니(76)는 "친구와 커피 한 잔 하러 갔다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주문을 못했다"고 했다. 홍 할머니는 그 이후로 다신 ㅁ프랜차이즈에 가지 않았다. 가격 부담이 적어 가고 싶은데,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 가기 싫다고.



글씨는 작고, 눈높이는 높다


ㅁ햄버거 매장 내 있는 키오스크 화면./사진=남형도 기자
ㅁ햄버거 매장 내 있는 키오스크 화면./사진=남형도 기자
작은 글씨도 어려움 중 하나다. 노년층의 저하된 시력을 감안하지 않아서다.

ㅁ프랜차이즈 버거 매장과 ㅇ샌드위치 매장 무인 주문기는 글씨가 작은데다 얇았다. ㅂ프랜차이즈 버거 매장과 ㄴ프랜차이즈 버거 매장 무인 주문기는 글씨가 작았지만 그나마 굵었다. ㄷ생활용품 매장에 있는 셀프 계산 무인 주문기는, 선택한 상품을 확인하는 화면 글씨가 작았다.

양현옥 할머니(73)에게 양해를 구하고, ㄷ생활용품 매장 무인 주문기에 찍힌 상품명(기자가 구매하는 상품)을 읽어달라고 요청하자 "작아서 뭐라고 쓰여 있는지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박모 할아버지(80)는 ㅇ샌드위치 매장 무인 주문기 화면을 보더니 "돋보기나 쓰고 와야 겨우 볼 수 있겠다"며 "왜 이렇게 글씨가 작지"하며 혼잣말을 했다.
빨간색 원 안에 있는 QR코드를 찍어야 결제할 수 있는데,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사진=남형도 기자
빨간색 원 안에 있는 QR코드를 찍어야 결제할 수 있는데,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사진=남형도 기자
ㄷ생활용품 매장 셀프 계산대에선 '상품 QR코드를 찍으라'고 돼 있었는데,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기도 했다.

또 다른 힘듦은 다수 무인 주문기가 어르신들이 쓰기에 눈높이가 높다는 것. 박막례 할머니는 ㅁ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서 스스로 무인 주문을 하면서 "손이 안 닿는다"며 '까치발'을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70대 친구들아, 햄버거 먹으려면 의자 하나 챙겨라"라고 당부했다.



복잡한 키오스크 방식, 햄버거 하나 먹으려면 12번 눌러야


화면이 바뀔 때마다 어려운 관문인데, 주문 방식 자체가 너무 복잡하게 돼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화면이 바뀔 때마다 어려운 관문인데, 주문 방식 자체가 너무 복잡하게 돼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 모든 게 해결된다 해도, 난관이 있었다. 무인 주문기에서 주문하는 방식 자체가 너무 복잡하게 돼 있었다.

ㅁ햄버거 프랜차이즈 무인주문기에서 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해봤다. 추천메뉴가 먼저 떠서 '버거&메뉴'를 누르고, 구성을 또 선택하고, 다 선택했나 싶었는데 다시 첫 화면으로 돌아왔다. 결제를 하려면 하단 장바구니 버튼을 또 눌러야 했다.

게다가 '함께 즐기면 좋습니다'라며 다른 메뉴를 권하는데, '선택안함'을 재차 누르는 것도 불편했다. 무인 주문기 화면을 열어 결제 화면까지 가는데 누르는 횟수만 무려 12회에 달했다.
어려운데다가 주무 제한 시간까지 주어지니 더 힘들 수밖에./사진=남형도 기자
어려운데다가 주무 제한 시간까지 주어지니 더 힘들 수밖에./사진=남형도 기자
그렇다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것도 아녔다. ㅇ샌드위치 무인 주문기는 120초 남짓한 제한 시간이 오른쪽 상단에 뜨고, 주문을 시작할 때부터 떨어졌다. 조바심이 났다.

잘못 주문한 걸 고치는 과정도 복잡했다. ㄷ생활용품 매장 무인 계산기에선 QR코드가 잘못해서 두 번 찍혔는데, 다시 수정하려 하니 '관리자 인증이 필요하다'며 기계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다시 초기 화면으로 돌아와야 했다.



글씨도 크게, 눈높이도 낮게할 수 있는 거였다


동주민센터에 놓인 키오스크. 큰글씨와 화면 낮추는 기능을 더해 어르신들을 배려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동주민센터에 놓인 키오스크. 큰글씨와 화면 낮추는 기능을 더해 어르신들을 배려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우연히 들른 동주민센터 내 무인 단말기에서 찾았다. 할 수 없는 게 아녔다. 그렇게 만들면 되는 거였다.

동주민센터 무인 단말기는 초기 화면에서 '큰 글씨 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를 누르니 글씨가 시원스레 커지고 바탕엔 짙푸른 색깔이 더해져 보기가 편했다. 지나가던 김순옥 할머니(74)에게 "글씨 보이시느냐"고 물었더니 "잘 보인다"며 하나씩 읽어보였다. 모든 기계가 두려웠던 게 아니라, 두려운 기계를 만들었던 건 아니었을지.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이들을 위한 선택지도 있었다. '화면이 높으면 여기를 터치해 주세요'라 쓰여 있는 걸 누르니, 화면 전체가 밑으로 쓱 내려왔다. 그러기 전에 애초 무인 단말기가 설치된 높이 자체가 낮았다. 그렇게 배려할 수 있는 거였다.

취재한 어르신들 말 중 속상함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거였다. 김용례 할머니(78)의 말이었다.

"영감 떠나고 이젠 혼자 씩씩하게 잘 살아야지 했는데, 이런 것 하나도 못하나 싶어 속상했지. 영감이 기계는 알아서 참 잘 만져 줬었는데 생각도 나고. 세상이 이렇게 빨라. 내가 쫓아가질 못하나 봐요."
'테이크 아웃'을 한글로 바꿔봤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요./사진=남형도 기자
'테이크 아웃'을 한글로 바꿔봤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요./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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