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헬프콜·군사경찰도 무용지물…구멍난 軍 병사 보호 시스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 김숙경 군성폭력상담소장/뉴스1

육군 내 부당징계를 받은 병사 가족이 8차례에 걸쳐 문제제기를 했으나 묵살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공군 내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은 군사경찰이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나오면서 군 내 자정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육군 모 사단 병사 A씨에 대한 부당징계에 대해 병사 가족이 국민신문고와 국방헬프콜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8차례에 걸쳐 문제제기를 했으나 군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4월24일 소속 부대 대대장에게 경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졌다. 단체 이동 중에는 가장 계급이 높은 선임만 인사를 하면 되기 때문에 A씨는 따로 경례를 하지 않았다.

대대장은 A씨가 '대상관범죄'를 저질렀다며 중대장을 불러 A씨를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A씨를 징계위에 회부하기 위해 소속부대 간부들에게 A씨의 과거 사소한 잘못까지 일일이 적어오라고 지시했다.

이에 병사 가족들은 5월 국방헬프콜과 국민신문고를 통해 '괴롭힘' 사실을 전하고 해결을 요청했다. 당시 국방헬프콜은 사단 감찰부에 이러한 상황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11일이 돼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병사 가족은 국방헬프콜로 다시 전화해 군단과 사단에 대대장이 계속 병사를 괴롭히는 상황을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날 대대장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교육하던 중 "국방헬프콜에 전화해 봐야 소용 없다. 대대장에게 직접 말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대대장은 A씨의 아버지를 부대로 호출해 "대상관범죄를 저질러 형사처벌하고자 한다"며 윽박지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센터에 따르면 A씨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하자 대대장은 '일련의 상황을 외부에 제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쓸 것을 강요하면서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하겠다고 협박했다. A씨 아버지가 각서를 쓰지 못하자 대대장은 구두로라도 약속할 것을 강요했다.

군인권센터는 "육군 제21사단과 제31여단은 부당한 징계 과정은 물론, 대대장이 휘하 병사의 아버지를 부대로 불러들여 겁박한 엽기적인 일을 8차례나 다양한 루트로 인지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군 내부의 신고 처리 체계가 얼마나 엉망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했다.
"공군본부 경찰단장, '성추행 피해' 내용 삭제 4차례 지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지난 21일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성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사건을 내부에서 덮으려는 시도는 공군에서도 벌어졌다. 센터는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에선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중사 사건에 대한 은폐했단 의혹도 제기했다.

센터는 "복수의 제보자를 통해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벌어진 이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에 공군 수사라인 수뇌부가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며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이 국방부에 허위보고를 직접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센터에 따르면 당초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실무자는 이 중사의 사망 다음 날인 지난 5월 23일 국방부조사본부에 올릴 사건 보고서에 성추행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점을 기재했다.

이후 군사경찰단장은 해당 실무자에게 사망자가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4차례에 걸쳐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틀 뒤 서욱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 조사본부로부터 단순 사망 사건이란 보고를 받았다.

센터는 "국방부에 허위보고까지 감행한 것으로 미뤄 볼 때 공군 수사 지휘라인은 사건을 공군본부 내에서 적당히 처리하고 무마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국방부는 이들에 대한 감사를 수사로 전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3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이 중사는 회식에 참석했다가 숙소로 돌아오던 중 차량 안에서 선임 장모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이 중사는 소속 부대에 보고했으나 상관들은 합의를 종용하고 회유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사는 지난달 22일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