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손목 낚아챈 검사…'증거'를 이길 패는 없었다

영화 '타짜 - 신의 손'(2014)의 한 장면 /사진=뉴시스

"자자, 이 정도로 시작해서 재미있게 돌아 갑시다."

A씨가 판돈을 걸자 '패'가 돌아갔다.


"선생님께 한 장, 우리 친구 분 한장, 김 선생 한장 그리고 나 한장…."

A씨가 손패를 확인하는 동안 '타짜'들은 사인을 주고받았다. 미리 순서를 맞춘 패 묶음인 '탄'이 사용되는지는 A씨만 몰랐다. 고령의 전직 교사인 A씨는 약 2억1100만원을 잃고서야 정신을 되찾았다.

제주가 주활동지인 사기 도박단은 지난해 A씨를 '사냥감'으로 찍고 함정을 팠다. A씨와 친분이 있던 전직 교육공무원 B씨가 먼저 접근했다. 그는 '서울 김사장'이라는 이를 A씨에게 소개했다. 비슷한 나이대인 서울 김사장은 술친구를 자처하며 친밀감을 쌓았다. 재력 파악을 위한 연기였다. 때가 무르익자 A씨를 도박판으로 유인했다.


도박을 모르고 산 A씨는 처음에는 뺐다. 타짜들은 일부러 돈을 잃어주며 홀렸고, 점점 큰 돈을 걸게 만들었다. "화투판에서 가장 어려운 일, 어떻게 호구를 판떼기에 앉히느냐. 일단 앉히기만 하면 판돈 올리기는 아주 쉽다"는 영화 타짜(2006) 속 정 마담의 대사가 비디오처럼 재생됐다.

A씨는 뒤늦게 일당을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당시 파악된 일당 8명 중 신원 확인된 7명을 불러 조사했으나 지난해 10월 검찰에 '혐의 없음'으로 송치했다. 혐의를 부인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 김사장은 인적 사항이 확인 안돼 '기소 중지' 송치했다. 돈도 법도 타짜들 '장난질'에 무기력한 듯했다.
'사건 원점 재검토'로 8명 기소…'증거' 앞 무너진 타짜들

김효진 검사(40·사법연수원 38기) /사진=김효진 검사 제공

그러나 2월 제주지검 형사부로 이동한 김효진 검사(40·사법연수원 38기)가 사건 기록 접한 뒤 수사는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실마리는 있었다. 일당 한 사람은 자백 취지의 진술을 했다. "서로 모른다"고 주장하던 일당끼리 서울김사장을 포함해 수차례 통화한 내역도 있었다. 1명이 사기 도박 혐의 집행유예 기간인 점은 '원점 재검토'의 결정적 이유였다.

김 검사는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직, 계좌 추적 등 증거 수집에 힘썼다. 그 결과 일당이 연락하며 사기 도박을 공모한 내역, 공범 사이에서 도박 자금이 나온 점 등이 사실로 확인됐다. "과학수사로 얻은 증거가 최선의 유죄 입증 수단"이라는 지침에 따른 성과였다. 도박을 모르는 김 검사에게 비슷한 사건 기록, 판례, 베테랑 수사관들이 큰 도움이 됐다.

결국 설계자, 자금책, 기술자 등 일당 9명 중 8명이 기소됐다. 1명은 검찰 수사로 추가 인지해 기소한 공범이다. 외국인 명의 '대포폰'을 쓰며 도주한 자금책도 추적, 잠복해 검거했다. 이들은 피해금을 돌려주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아직 신원 파악 안된 서울김사장은 계속 추적할 방침이다. 이 사건은 7월 검찰 형사부 우수업무 사례로 선정됐다.

김 검사는 "경찰이 장기간 수사해 불기소 판단을 내려 보완수사 요구를 하면 처리만 지연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며 "통화 내역을 꼼꼼히 확인해 공모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사기 도박 피해 방지법을 묻자 그는 "도박판 근처에 얼씬도 않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바지사장 성매매' 일당으로 표창…제주 강력범죄 주시한다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제주 중학생 살인 사건' 피의자 백광석(48.왼쪽)과 김시남(46)이 27일 오후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2021.7.27/뉴스1

김 검사는 검찰 내에서 "꼼꼼하다" "대인 관계가 원만하다" "수사관들 협조도 잘 끌어내는 등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2015년에는 '바지사장-업자-건물주'로 구성된 성매매 알선 사범 일당을 검거하고 수익, 건물을 몰수해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수사의 가장 중요한 점으로 '열정'과 '소통'을 꼽았다. 김 검사는 "모르는 분야도 연구하고 수사 경험을 공유하면 새롭고 어려운 범죄 사건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김 검사는 현재 살인·성폭력 등 강력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그는 최근 발생한 '제주 중학생 살인 사건' 주무검사이기도 하다. 신원이 공개된 사건 주범 백광석(48)은 헤어진 동거인 집을 지난달 18일 침입해 아들 A군(16)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백광석은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겠다"라고 A군 친모를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 실행 전 망을 봐준 혐의로 김시남(46)도 같이 기소됐다. 대검찰청은 최근 사회 불안 확대를 우려해 살인 범죄에 대한 최고형 구형 등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