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고객' 모시는 은행들…금융자산만 30억원 이상

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시중은행이 고액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 고객'을 유치하느라 바쁘다. 일반 영업점은 대대적으로 통폐합하지만 PB(프라이빗뱅커)가 상주하는 자산가 전용 점포는 공들여 확대하는 식이다. 은행의 중장기적인 수익기반이 자산관리(WM) 경쟁력에 달렸다고 봐서다.

4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고액자산가 특화 영업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점포 전략을 세웠다. WM에 특화한 자산가 전용 점포는 통상 금융자산이 3억원, 5억원 이상인 경우 이용할 수 있는데 은행은 금융자산 30억원, 50억원 이상 고객만 이용 가능한 고액자산가 맞춤형 점포도 키우고 있다.


우리은행은 전날 서울 역삼동 아세아타워에 초고액자산가 특화 점포인 TCE 시그니처센터를 열었다.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인 고객이 이용하는 점포다. 우리은행은 TCE 시그니처센터를 통해 WM을 대폭 강화할 의지를 내비쳤다. 우리은행은 최근 한국씨티은행 WM 인력을 대거 영입했는데 이 센터에만 13명의 PB를 배치했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은행은 WM 강자로 통했던 씨티은행의 자산가 고객을 자연스럽게 확보하게 됐다. 자산이 많은 고객은 거래은행이 바뀌더라도 전담 PB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씨티은행 PB는 은행권에서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데 우리은행이 WM부문에 아낌 없는 투자를 한 셈이다.

국민은행은 KB금융그룹 차원에서 새로운 PB센터 준비에 한창이다. 오는 7월 서울 강남에 '압구정 플래그십 PB센터'를 지금까지 중 최대 규모로 연다. 연면적 3359㎡(약 1016평)에 달하는 7층짜리 건물을 강남 한복판에 세운다. 고객에게 각 분야 전문가들이 팀으로 붙는 게 특징이다. '○○○(고객명)팀' 소속 PB, 세무사, 변호사가 특정 고객을 전담하는 전문가가 됨으로써 맞춤형 자산관리의 질을 높이려 한다. 보통 자산가들은 세금과 관련한 고민이 많아 전담팀을 기획하게 됐다. 상속, 증여, 가업승계 등 자녀세대로 부의 이전을 돕는 가문 컨설팅도 선보인다.

PB센터는 자산가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문을 여는데 SC제일은행은 지난달 부산 해운대 랜드마크 엘시티에 센터를 신설했다. 해운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일대는 부촌으로 통한다. SC제일은행은 은행, 증권 상품을 한번에 거래할 수 있도록 복합점포를 갖췄다. 또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글로벌 WM 경쟁력을 차별점으로 삼았다. SC제일은행은 한국씨티은행이 국내에서 소매금융을 철수하면서 유일하게 남은 외국계 소매은행이 됐다.

은행들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미래 자산가' 고객도 미리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신한은행은 올해 WM 목표 중 하나로 '고자산 MZ세대 고객 접점 확대'를 삼았다. 뱅킹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비대면 WM 서비스를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직개편을 통해서도 WM 분야를 키우고 있다. 하나은행은 자산관리그룹을 확대해 WM본부, 연금사업본부, 신탁사업본부, 투자상품본부 등 4개의 본부로 진용을 갖췄다. 하나은행은 이러한 조직 개편에 대해 "강점 사업을 육성하려는 조치"라며 "자산관리 전문 인력도 강화해 미래형 자산관리 모델을 구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이 '고액 자산가 모시기'에 공들이는 건 수익 확대를 위해서다. WM에 은행의 미래가 달렸다고 본다. 최근 취임한 이재근 국민은행장은 "은행의 핵심성장 부문에 경영역량을 집중하고 환경 변화에 선제 대응하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핵심성장 부문의 첫 번째로 WM을 꼽았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전날 신년사를 통해 전문인력 역량 강화를 강조하면서 "자산관리, 기업금융 등 커리어 목표를 설정하고 핵심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