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78세 노배우에 열광하는 이유…오영수의 영화같은 삶

미 골든글로브 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사진=골든글로브 캡처

"우린 깐부잖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1번 참가자 오일남(오영수 분)의 한 마디는 그 자체가 눈물샘 자극 버튼이었다. '깐부'는 동네에서 구슬과 딱지를 같이 쓰는 친구를 뜻한다. 1등이 아니면 그저 탈락자일 뿐인 냉혹한 세계관 속에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명장면이자 명대사였다.


78세의 노배우 오영수는 그렇게 빛이 났다. '오징어 게임'의 전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깐부 할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10일 아카데미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시상식으로 꼽히는 골든글로브에서 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배우가 달성한 최초의 쾌거였다.

그는 연기인생 내내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노 스님으로 나온 것 정도가 눈에 띄는 필모그래피다. 그외 '연개소문', '선덕여왕' 등 사극 드라마에서도 스님 역으로 나왔다. '스님 전문 배우'로 불렸던 이유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2015년 SK텔레콤 광고에서 설현과 함께 배를 탔던 스님으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우직하게 했다. 매년 연극 작품을 꾸준하게 해온 그다. 무려 60년 동안 평행봉 운동을 하며 체력관리도 해왔다. 열정 역시 유지했다. 40대에 맡았던 '파우스트' 역을 제대로 소화 못했던 것을 줄곧 마음에 담아왔을 정도다. '파우스트' 역을 70대에는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구상하며 '오일남' 역에 오영수를 떠올렸다. 황 감독이 영화 '남한산성' 때 오영수를 캐스팅하려다 못했던 과거가 있기도 했다.

황 감독은 지난해 10월 SBS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오영수 배우는 과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의 이미지가 크게 남아있다"며 "어느 날 오영수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갔다. 무대 연기를 직접 보고 캐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사진=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오영수 스틸

오영수는 지난해 10월 MBC '놀면 뭐하니?'에 나와 "'오징어 게임'이라는 놀이의 상징성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찾아가는 감독의 혜안을 좋게 생각해서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 보자마자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오징어 게임'에 오영수는 캐스팅됐다. 이후 영화같은 삶이 그에게 찾아왔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전세계적인 '오징어 게임' 열풍이 불었다. '오일남'은 사실상 드라마의 '키맨'이나 다름없다. 그 역할을 맡은 오영수는 일약 월드스타가 됐다. "우린 깐부잖아"는 아예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다.

노배우는 자신에게 온 스포트라이트를 헛되게 쓰지 않았다. 그는 "아름다운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전국민에게 전하며 울림을 줬다. 냉혹한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와 달리 58년차 배우의 품격,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발산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놀면 뭐하니?'에서 "우리 사회가 1등 아니면 존재가 안 된다는 뜻으로 많이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 이겼잖나. 다 승자"라며 "진정한 승자라고 한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애쓰면서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승자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젊었을 때는 어디 산속을 타다가 꽃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 꽃을 꺾어 갔잖나. 나이가 내 나이쯤 되면 그냥 그대로 놓고 온다"며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게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냥 있는 그 자체를 놔두는 것"이라고 했다.

오영수는 "우리 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이 '아름다움'이라는 말이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회"라며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러분,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영수의 차기작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었다. '오징어 게임'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연극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 다시 대학로를 찾았다. 연극 '라스트 세션'의 주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박사' 역을 맡았다.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노배우의 모습 그대로 현재를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전해들은 골든글로브 수상 소식. 오영수는 미국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고, '오영수다운' 수상 소감을 전했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다.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서울=뉴시스]연극 '라스트 세션' 프로필. (왼쪽부터)배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202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