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 김종인, 시간차 지원?…계산 바쁜 여야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하기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번 '영화관 회동'은 김 대표의 요청으로 성사됐다. 2016.8.15/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결별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행보가 심상찮다. 대선 30일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비공개 회동을 하면서 민주당 내에서 측면 지원설이 흘러나오면서다. 그동안 당을 넘나들면서 '킹메이커' 명성을 얻어왔지만 대선에서 경쟁하는 유력 후보들을 '시간차 지원'하는 일은 유례없는 사건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초 국민의힘이 선거대책위원회를 해산하고 김 전 위원장이 선대위를 떠나자 김 전 위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김 전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민주당 선대위에 합류하거나 이 후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는 것은 어렵더라도 이 후보의 경쟁력을 인정하는 모양새를 만들고 싶어하는 분위기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 후보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다"며 "윤석열 후보보다 이 후보가 잘 준비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다"고 적극 홍보에 나선 것도 이를 보여준다.

송 대표는 "내가 두세 번 김 전 위원장을 만났는데 '윤 후보는 김 위원장의 철학을 수용할 만한 그릇이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그것이 사실로 확인된 것 같다"고 의견을 곁들였다.

김 전 위원장은 이 후보와의 회동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이날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람 한번 만난 것 가지고 뭘 그렇게 관심이 많으냐"며 "특별한 얘기 한 것도 아닌데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지원을 요청한 게 있느냐는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잡담을 나눴다는 얘기다.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준석 대표와 회동을 마친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2022.1.10/뉴스1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의 화법 상 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회동엔 김 전 위원장과도 가깝고 이 후보의 최측근 인사와도 매우 가까운 옛 여권 인사가 배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인사가 회동에 함께한 것이 단순히 정치적 조언을 구하는 자리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 후보와의 회동 직전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 녹취록에서 언급된 발언에 불쾌감을 나타낸 바 있다. 김건희씨는 '서울의 소리' 이모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 전 위원장이 윤 후보 선거캠프에 합류한 것에 대해 '잔칫집에 먹을 게 있어서 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건희씨에 대해)말을 조심성 없이 함부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전후 사정도 모르고서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한다"며 "제일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게 그런 것이다. 그런 불쾌감을 주면 나는 더 이상 거기에 같이 협력을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윤 후보 측에서 더 이상 역할이 없다고 판단한 이상 이 후보가 내민 손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후보 선대위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이 후보에 대해 예전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해왔다"며 "이 후보도 김 전 위원장에게 꾸준히 연락을 해왔다"고 전했다.

윤 후보 선대위를 총괄했던 김 전 위원장이 이 후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윤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해준다면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중도층이나 무당층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민주당 측 판단이다. 윤 후보가 경제 정책 등 국정운영에 무능하다거나 배은망덕하다는 비호감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송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을 조건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합류했는데, 당선되고 나서 없어져 버렸고, 윤석열 후보한테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야권 인사들은 이 같은 여권 내 희망을 일축한다.

국민의힘 선대본 정책본부 게임특별위원장인 하태경 의원은 7일 KBS라디오 '최영일의 시사본부'와 인터뷰에서 "전날 이재명 후보와 김종인 전 위원장 회동으로 김 전 위원장이 이 후보를 우회 지원하는 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고 하자 "안 그래도 조금 전 제가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 드렸다"며 김 전 위원장과 통화 내용을 전했다.

하 의원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냐'고 여쭤보니 (김 전 위원장 말이) '그냥 찾아와서 만났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며 딱 잘라 말씀하시더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게 없다는 말이었다. (김 전 위원장 말을 볼 때) 민주당에서 지금 희망사항으로 꿈꾸고 있는 일(김 전 위원장의 지원)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국민의당 의원들 모임인 '국민의당 지키기 운동본부'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18.1.8/뉴스1

이 후보는 김 전 위원장에 이어 이상돈 전 국회의원과도 만나 중도 색채가 강한 인사들을 만나 외연 확장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이 전 의원은 중앙대 법대 교수로 이 후보와 사제 관계이기도 하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때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 역시 당시 비대위원이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에는 정부나 정치권과는 거리를 뒀던 이 전 의원은 2016년 총선 당시 국민의당에 참여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치을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으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완전히 결별했다.

이후 방송 활동 등에서 안철수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혀왔으며 윤석열 후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왔다. 이 후보가 김 전 위원장 등과 잇따라 만나 외연 확장에 나서면서 박스권에 갖혀왔다고 평가되던 지지율이 반등에 성공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