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전기를 많이 쓰니"…잘나가는 반도체업계 '탄소중립' 고민

"반도체 제조는 워낙 전기 사용량이 많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어려운 공정입니다."

27일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최근 업계에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탄소배출 절감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유럽·북미 등 주요 반도체 소비국들이 반도체 제조 공정을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감축 요구가 거세지는 데에 따른 반응이다. 정교한 반도체 칩을 만들수록 높은 전력과 많은 원자재가 소모돼 환경 비용이 심각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산업의 탄소·유해 폐기물 배출량은 이미 전통적인 환경 오염 산업으로 손꼽히던 자동차 산업을 추월했다. 하버드대에 따르면 첨단 공정인 2나노미터(nm) 반도체 칩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존 공정보다 2배 이상의 물과 3배 이상의 전기가 필요하다. 유럽의 정책 전문 매체 유락티브는 최근 EU가 제정하기로 한 '집적회로법'(Chips Act·반도체법)에 환경 정책을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지난해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1075만 2832톤에서 1253만 2779톤으로 약 17% 증가했다. 2020년부터 D램·낸드플래시 등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시설 평택 2라인이 가동되면서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졌다.

SK하이닉스 PIM 적용 첫 제품 GDDR6-AiM(Accelerator in Memory). 자체 연산을 하는 PIM이 CPU·GPU로의 데이터 이동을 줄여 소모되는 전력을 감소시키고 탄소배출량을 절감한다./사진=SK하이닉스 제공

반도체 사업을 하지 않는 LG전자의 경우 오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 2050년까지 국내외 모든 사업장 RE100(사용 전력 재생에너지 대체 협약) 달성을 중장기 목표로 설정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성과를 내고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LG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134만1180톤에서 지난해 89만8619톤으로 약 33% 줄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 역시 대만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5%를 차지할 정도다. 미국 CNBC에 따르면 TSMC의 탄소배출량은 2017년 600만톤에서 2019년 800만톤, 2020년 1500만톤으로 2배 이상 뛰었다.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에너지 소모와 산업폐기물 배출이 급증한 탓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반도체 공급난 심화로 공정 가동률이 높여져 당분간 탄소배출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코로나19(COVID-19)로 컴퓨터·가전 등 비대면 수요가 증가했고 반도체 제조용 네온·크립톤을 생산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까지 발발해 공급난은 계속될 전망이다. 삼성·인텔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에 대비해 이미 공정 증설에 나선 상태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설비 증설·가동률 증가가 필수적"이라며 "공정 가동률이 오를수록 탄소배출량이 증가하는데 안팎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도 거세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무턱대고 가동률을 낮추기 어려워 업계가 공감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형섭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부사장)은 최근 반도체 산업전시회 '세미콘 코리아 2022'에서 "2020년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배출가스 설비 가동 효율화 등을 통해 11억 그루의 소나무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를 절감했다"고 밝혔다.

제조공정만 들여다 볼 게 아니라 제품 완성 후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저전력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저전력 반도체 도입이 확대되면 반도체가 사용되는 자동차·가전·공장설비 등에서 전력 소모가 줄어 사후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저전력 반도체는 환경뿐 아니라 고객들의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며 "모든 제품군을 저전력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