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쥔 푸틴 야욕···다시 시험대 선 친환경 에너지 전환

(AFP=뉴스1) 이동원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작전"을 선포하고, 서방의 분노와 세계적인 호소에 저항하며 그곳의 군인들에게 무기를 내려놓지 말 것을 요구 전쟁을 개시하다. 사진은 2019년 2월 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연례 국정연설을 하는 모습. (C) AFP=뉴스1 (C) AFP=뉴스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대(對)러시아 의존도가 큰 천연가스는 물론 에너지 자원 전반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며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이 시험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팬데믹 이후 이동 수요 증가, 중국의 전력난 등으로 에너지 가격 오름세가 진행되던 터다.

단기적으로 에너지 안보, 공급 안정화에 주력하면서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의 노력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단 의견이 나오는 반면, 장기적으로 유럽연합(EU)가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더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단 의견도 맞선다.


천연가스 수출 1위국 러시아···자원 무기화 우려 꾸준히 제기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외신 등에서는 러시아가 세계 최대 에너지 자원 보유국 중 하나라는 지위를 활용할 것이란 관측들이 나왔다.

25일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천연가스를 생산했다. 7220억입방미터로 생산점유율은 18.0%다.

순수출 규모로만 따지면 러시아는 천연가스 수출 전세계 1위 국가로 전체 수출량의 20%가 넘는 2300억입방미터를 수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EU(유럽연합)는 에너지원 중 하나로 사용하는 전체 천연가스의 38%를 러시아에서 들여올 만큼 러시아 의존도가 크다. 천연가스는 냉난방 뿐 아니라 화학제품, 유리 등 가공에도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EU에너지총국에 따르면 EU의 에너지 소비의 25%는 천연가스에서 나온다. 석유(Oil and petroleum) 비중은 32%, 재생에너지 및 바이오연료 비중은 18%, 고체 화석 연료 비중은 11%다. 천연가스는 특히 또 석탄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적은 비교적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란 인식으로 최근 유럽에서 사용량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유가 등 에너지 가격 전반이 상승한 데에는 팬데믹 이후의 수요 회복 움직임 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긴장 고조에 따른 지정학적 위기도 영향을 줬다. 브렌트유 가격은 전일 8년 여 만에 장 중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지난 24일 기준 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양)당 4.619달러로 지난해 연초(2.581달러) 대비 79.0% 올랐다. 올 연초 대비로는 두 달 남짓 만에 23.8% 올랐다.

러시아~유럽 가스관이 막힌다면? 위기감에 에너지 가격 상승세 지속

(무라토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22일 (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 위협 속 우크라이나 루간스크주 무라토보의 주택이 친러시아 반군의 폭격으로 불 타고 있다. (C) AFP=뉴스1

이런 가운데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노르트 스트림-2 AG'를 제재하자 유럽 내 에너지 수급 위기감은 더 커졌다. 노스트 스트림-2 AG는 러시아 국영 최대 가스기업 가즈프롬의 스위스 자회사로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사업(노르트 스트림-2)을 진행중이었다.

총 사업규모만 110억달러가 투입됐는데 가즈프롬과 유럽 기업들이 절반씩 투자했다. 아직 개시되지 않았으나 전면 운영시 연간 550억입방미터의 가스가 유럽에 공급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재 운영이 불투명해졌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에도 해당 사업에 제재를 검토했었으나 유럽의 입장을 고려해 제재 카드를 들진 않았었다. 이번 러시아 침공으로 독일이 직접 사업 승인 절차를 중단하면서 미국 정부도 결단했다.

천연가스도 사용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이뤄지는 만큼 해당 가스관 사업에 대해 환경주의자들의 일부 비판이 이어졌었던 만큼 일각에서는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이 친환경 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 제재를 단행한 직후 지난 23일 "푸틴 대통령은 그의 행동을 통해 전세계에 러시아산 가스로부터 벗어나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하라는 강력한 동기를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실제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런던정경대 그랜텀 기후변화연구소의 밥 워드 정책담당관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기후 정책에 반대파들은 치솟는 물가가 녹색 에너지 때문이라 호도하려 한다"며 이번 지정학적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기후정책 반대론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지도자들이 글래스고 기후정상회의에서 만나 화석연료 사용을 줄인다는 공약을 내놓은 게 불과 석달 전"이라며 "유럽 최대 에너지 공급국가인 러시아가 서방을 위협함에 따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관한 토론은 에너지 안보 문제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평가했다. 즉, 에너지 가격 안정화가 우선시되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탈탄소 노력 후퇴 우려···"지정학적 이슈 장기화 여부 파악 중요"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23일 서울시의 한 주유소에서 업무 중인 종업원 뒤로 유가정보 안내판이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되면서 북해산 브렌트유가 장중 한때 99.5달러까지 오르는 등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국제유가가 100달러에 육박한 것은 지난 2014년 9월 이후 7년여 만이다. 2022.2.23/뉴스1

에너지 전문가들은 친환경 에너지 시대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에너지 생산자들과의 협력이 어느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천연가스를 개질과정에서 탄소를 포집한 뒤 만들어 내는 블루수소가 그린수소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란 게 그 예다. 블루수소 생산에는 CCUS(탄소포집·저장·활용) 기술 뿐 아니라 LNG도 필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린수소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제로이지만 현재 생산단가가 높다는 단점이 제기된다.

천연가스, LNG 등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한다면 수소경제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블루수소' 생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수소업계 관계자는 "LNG 등 화석연료가 관여하는 블루수소, 그레이수소 생산단가가 단기적으로 급등세를 보이고 있어 이 현상이 일시적일지 장기적일지 계속 관찰하는 중"이라며 "블루수소 생산에는 비용 상승으로 부정적일 수 있지만 반면, 어차피 높은 생산단가라면 아예 그린수소 생산 및 유통에 대한 투자 동인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아직은 블루수소나 그린수소 모두 본격적인 양산단계가 아니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슈와 직접 연관짓기엔 아직은 '먼 미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박진호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산업연구본부 가스정책연구팀 팀장은 "이번 지정학적 이슈가 단기에 그칠지 장기화할지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재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만큼, 단기적으로는 수급 안정 위해 각국이 기존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