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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없었으면 '노사모'도 없었을 것"…20대 논객의 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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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민 기자
  • 황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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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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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15-① 'K를 생각한다'의 임명묵 작가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임명묵 작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임명묵 작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정치 현상은 표면에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피상적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퀸덤2'에서 누가 우승할 지 여부다."

'20대 논객'으로 떠오른 임명묵 작가(28세)는 지난달 25일 서울대 입구 인근 카페에서 '찐터뷰'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임 작가는 지난해 90년대생들을 명쾌하게 분석한 책 'K를 생각한다'를 펴낸 이후 스타덤에 오른 젊은 작가다. '이대남(20대 남자) 현상' 등 각종 정치·사회적 사안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평론도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그런 그가 정작 정치 현상을 분석하는 게 본질적인 게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인 '퀸덤2'가 더 중요하다고? 이해가 안 갈 찰나, 임 작가는 쉬지않고 관련 발언을 이어갔다.

"사실 정치는 굉장히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엔터테인먼트판, 아이돌판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냥 따라가는 것 뿐이다. 아이돌판을 들여다 보면, 3년 뒤 정치판을 우리가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젊은층이 주도하고 있는 케이(K)팝 문화를 예의주시하면 앞으로 나타날 정치·사회 현상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의미. 임 작가는 지난해 집중 부각된 '이대남 현상'의 경우 2019년 본격화된 이른바 '아이즈원 사태' 때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당시 '프로듀스X101'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걸그룹 '아이즈원'이 남초 팬덤의 주도 속에 만들어졌다. 여기에 분개한 여초 팬덤이 화력을 모아 서바이벌의 투표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을 목도한 남초 팬덤이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초 팬덤은 '아이즈원'의 앨범을 폭발적으로 구매한 것은 물론, 재결합을 위해 32억원에 달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젊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집단적 에너지와 구매력을 깨닫게 된 일대 사건이었다는 것. 이런 경험이 '이대남'들의 '집단적 투표'로 이어졌다는 게 임 작가의 분석이다.
퀸덤2. 정치 현상보다 중요한 것.
퀸덤2. 정치 현상보다 중요한 것.


"H.O.T 없었으면 '노사모'도 없었을 것"


임 작가는 이처럼 첨예한 젠더갈등 등 사회 문제의 뿌리에 아이돌 팬덤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90년대생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경험해왔고, 30~40대들에게도 친숙한 팬덤 문화가 사회적으로 확장되며 갈등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임 작가와의 관련 대화는 다음처럼 계속 이어졌다. 그는 말을 할 때 '버퍼링'이 없는, 대단한 달변가였다.

- 아이돌판이 정치·사회 현상의 선행 지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팬덤들은 미디어에 고도로 몰입한 환경에서 집단행동, 여론몰이를 훈련한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사실상 현재 우리 사회의 주류를 선도하고 여론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만들어진 문제의식과 갈등 구도라는 것들이 사회적 영역을 계속 확장해 가면서 재생산되고 있다."

- 그런 팬덤 문화가 정치까지 대입되는 것의 악영향이 분명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이 본인 삶에서의 의미를 주변에서 찾지 못하게 되니까, 미디어와 정치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이제 정치도 그냥 사실상 미디어에 종속됐다. 미디어의 갈래가 됐다. 정치에서 팬덤이 나온 게 아니라, 팬덤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로 간 것이다. 과거의 사례를 봐도 H.O.T 팬덤이 없었으면 '노사모'는 안 나왔을 것이다. '나꼼수'가 없었으면 '문파' 이런 게 나왔을 리가 없다."
임명묵 작가의 2021년 화제작 'K를 생각한다'
임명묵 작가의 2021년 화제작 'K를 생각한다'

- '팬덤' 문화가 이끄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떨까.
▷"물론 당분간 대한민국은 콘텐츠 패권을 더욱 더 강화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 사회적으로는 위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본다."

- 젠더갈등 외에 또 다른 갈등이 나오게 될까.
▷"그럴 것이다. 그런 투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정체성과 문화를 둘러싼 투쟁이다. 우리나라의 젠더갈등, 이건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태로 본다. '폭력'의 강도는 과거가 더 강했겠지만, 이런 정도의 '사회적 갈등'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90년대생, 불완전한 에너지 위의 '탈가치' 세대


임 작가가 자신의 세대인 '90년대생'을 보는 시각은 이같이 냉소적이다. 90년대생들의 에너지가 10년 안에 없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K를 생각한다' 책에 포함됐다.

90년대생들이 '창의적 소비'를 통해 아이돌 등 K-콘텐츠의 레벨업을 주도하긴 했지만, 그 에너지의 근원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 임 작가의 분석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려오고 '압박감'을 받아온 90년대생들은 기존 우리사회의 가치에 애착을 두지 않는 '탈가치' 세대다. 그렇기에 '틀'을 벗어난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자신들끼리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임 작가는 "90년대생들의 에너지는 전통적·긍정적인 산물에서 나온 게 아니다"라며 "지금의 이 대단한 콘텐츠 제국은 90년생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혼란과 위기가 상업적으로 잘 연결됐을 때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생들의 에너지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건 아니다"라면서도 "위험요소가 있다는 것, 그 정도"라고 답했다.
임명묵 작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임명묵 작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그는 "소비도 창의성의 산물이라고 본다. 얼마나 트렌디한 것들을, 새로운 것들을 감각적으로 따라가는지 조차도 주체적 활동이다. 90년대생들이 콘텐츠 수요자의 최전선에서 이런 흐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이것의 원동력 중 하나는 생물학적 나이다. 그것이 이제 소진됐을 때 이게 유지될 것이냐가 아직은 물음표다.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 기승전-아이돌'의 시대…"덕질을 안 하는 게 이상"


냉소적이긴 하지만, 마냥 부정적이진 않다. 현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도 분명 있지만, 미래에 대해 낙관하진 않는다. 임명묵 작가의 이런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여전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관적인 미래에 불안해하는 90년대생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 90년대생의 일원으로 임 작가 역시 오늘을 살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대학원 수업을 몇 시간 앞두고 한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 미국으로의 유학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고, 작가 및 평론가로 더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도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최근 가장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묻자 그의 눈이 반짝였다. 입꼬리 역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요즘 무엇에 관심이 많으신가.
▷"내가 작년부터 아이돌을 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회현상 탐구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까 그냥 이게 인생의 의미구나 생각했다."
걸그룹 '이달의 소녀'. 임명묵 작가의 최애 아이돌. /사진제공=엠넷 2022.03.30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걸그룹 '이달의 소녀'. 임명묵 작가의 최애 아이돌. /사진제공=엠넷 2022.03.30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 덕질을 해보니 어떤가.
▷"이걸 안 하는 게 이상한 것이다. 안 하는 사람이 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웃음). 하하하. 가치있는 덕질을 하려고 고민을 좀 많이 한다. 요즘에 전공 공부보다 케이팝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거 같다."

- 가치있는 덕질이 뭘까.
▷"케이팝 책을 지금 하나 준비하고 있다. 목차는 만들었다. 대학원 동기 한 명이 미술사 전공을 했는데,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전문적으로 해설해주더라. 이 친구와 둘이서 아이돌의 서사와 의미, 그걸 인문학적으로 규명해보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2022년을 살아가는 90년대생 청년. 그러면서도 가장 각광받고 있는 20대 논객이자 작가. 그 역시 현재 '기승전-아이돌'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이번 '찐터뷰'의 시작과 마무리를 '아이돌'로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돌판을 보면 3년 뒤 정치판을 예측할 수 있다"는 그의 장담이 다시 떠올랐다. 임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다음 세대'인 2000년대생들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2000년대 중후반생들은 90년대생들과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90년대생들은 80년대생들이 만들어놓은 온라인 커뮤니티 환경에 들어와 활동했다. 그런데 요즘 온라인에 10대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아예 다른 영역들을 자기들끼리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가시화가 안 됐다. 탐구를 좀 해서 2000년대생들의 지형을 밝힐 필요도 있다. 그것 역시 아이돌판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아이돌 중 가장 어린 축이 2007년생이다."
걸그룹 '이달의 소녀'. 임명묵 작가님, 보고 계시죠? /사진제공=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2021.06.28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걸그룹 '이달의 소녀'. 임명묵 작가님, 보고 계시죠? /사진제공=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2021.06.28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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