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도 참여…CEO 123명이 美의회에 편지보낸 사연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9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업인들과의 반도체 공급망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AFP=뉴스1

"세계는 미국의 행동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미국 경제와 국가 안보, 공급망 회복을 위해 시급히 움직여야 합니다."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이 '미국경쟁법'(일명 중국 견제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법안이 의회에서 표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기업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경쟁법은 중국 기술력에 대응해 반도체와 AI(인공지능) 등 미국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상·하원에서 각각 법안을 처리해 현재 병합 심사가 진행 중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 경쟁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국의 경제와 노동력, 국가 안보 및 기술 리더십은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다"며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대한 연방 투자는 미국이 미래의 핵심 분야를 계속 주도하도록 하는 동시에 수십년 동안 공급망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내용이 서한에 담겼다.

이 서한에는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주요 기업의 CEO(최고경영자) 및 경영진 123명이 서명했다. 팻 겔싱어 인텔 CEO와 리사 수 AMD CEO, 산자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 게리 디커슨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CEO 등 반도체 업계를 비롯해 알파벳, 아마존, MS(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빅데크 기업들의 경영진도 다수 동참했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참했다. 삼성에서는 최시영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이, SK하이닉스에서는 박정호 부회장이 각각 서명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사업을 지원하는 입법을 추진해 왔다. 의회도 반도체 산업 지원에 공감해 상원이 지난해 6월, 하원이 지난 2월 각각의 법안을 처리한 뒤 현재 병합 심사를 진행 중이다. 반도체 산업에 520억달러(약 65조원)를 지원하는 큰 줄기는 동일하지만 세부 내용이 달라 이를 조율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이 국회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는 데다 최근 통과가 무산되는 것이 아니냔 관측까지 잇따라 나오면서 기업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기업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직간접적 투자 요구 하에서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고 집행 중"이라며 "경쟁법에 따른 연방자금 지원을 염두에 둬왔던 기업들은 물론 투자에 따른 수혜를 기대했던 전방산업 기업들 역시 법안 통과 무산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내에서는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경쟁법안 통과가 무산될 것이란 관측이 잇따라 나왔다.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정부 예산이 집행되는 데 대한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예정된 중간선거와 관련한 여야의 정치적 득실 계산도 법안 계류의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주 야당인 공화당이 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로 인식될 만한 법안 처리에 주저하는 상황이 법안 계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의 경우 최근 총기난사 사건 발생으로 총기규제법 처리에 집중하면서 반도체 관련법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170억달러를 투자해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제 2파운드리 공장 짓기로 결정했다. 테일러시 시의회에 따르면 제 공사는 최근 시작돼 2024년 본격 가동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인텔의 낸드사업부를 인수한 뒤 새너제이에 자회사 솔리다임을 설립한 데 이어 실리콘밸리에 R&D(연구개발) 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등 미국 내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