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 적자땐 '알아서' 돈버니 '횡재세'…여기 남한 맞나요?[현장+]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2.6.21/뉴스1

정치권의 '횡재세' 포퓰리즘이 점입가경이다. 법을 만드는 이들이 정상적 기업활동에 대해 '횡재' 운운하는걸 보며 기업들은 절망한다. 연 5조원(2020년 정유4사 합산) 적자 터널을 겨우 헤쳐나왔다. 적자를 보면서도 배터리같은 신사업엔 계속해서 투자했다. 이제 겨우 회복국면으로 들어가는데 '횡재를 보고 있으니 돈을 내놓으'란다. 이게 지금 남한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을까.

더불어민주당은 유가폭등 대책 차원에서 기름값을 리터당 200원 내리고, 정유사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이른바 '초과이익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1일 "서민들은 리터당 2000원을 감당못해 고통받는 사이 대기업 정유사들은 최대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직접 조준사격 했다.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선 것은 서민경제에 타격이다. 그럼 기름값을 정유4사가 올렸을까. 우리나라 기름값은 싱가포르 국제제품가격에 연동돼 움직이는데 당연히 국제유가에 따라 오르고 내린다. 여기에 가장 큰 비중(약 40%)을 차지하는 유류세가 더해진다. 그리고 주유소 마진을 더해 기름값이 최종 결정된다. 국제유가+유류세가 기름값의 핵심이라는건 이제 상식이다.

정유업계 평균 이익률은 제조업과 비슷한 5% 안팎이지만 올해 상황이 뜻밖에 우호적인 건 맞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고 가뜩이나 그린플레이션(오래된 정유설비 가동중단과 그린사업으로 투자 전환)이 대세가 되면서 기름 공급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엔데믹 국면이 찾아왔다. 눌렸던 수요가 늘어난다. 정유사 수익도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COVID-19)로 정유 4사 합산 무려 연간 5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적자를 내며 벼랑끝에 몰렸던게 불과 2년 전이다. 아직 그때 남은 부채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돈이 벌려도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을 수 없다. SK는 배터리 등 미래에너지 투자에 사활을 걸었다. GS도 수소와 SMR(소형모듈형원전)에 투자를 시작했다. 에쓰오일도 최대주주인 사우디 아람코 차원에서 수소신사업에 돈을 쏟아붓는다. 여기서 우리의 미래 성장동력이 나오고 일자리가 나온다. 그런데 벌었으니 돈 내놓으라니. 정유사 한 고위관계자는 "이런식이면 정유사들은 최고세율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가동을 줄이고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횡재세 논란이 먼저 불붙은건 유럽이다. 영국이 BP를, 미국이 엑슨모빌을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렇다해도 국내 정유사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BP와 엑슨모빌은 영업이익이 연간 30조원에 이르는데다 원유를 직접 개발해 파는 회사"라며 "원유를 사오는 정유사와는 수익구조 자체가 다르고 비교가 불가한데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간헐적으로 시행되는 횡재세도 이전엔 공기업의 민영화에서 발생한 시세차익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에 석유·가스사에 대해 시행하기로 한 횡재세도 국내 이익에만 한정했다. 그럼에도 유럽 현지 여론이 대단히 부정적이다. 기름을 팔수록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가 되면 정유사들로서는 열심히 시장에 기름을 공급할 이유가 없다. 공급이 줄어들면 당연히 기름값은 다시 오른다. 그럼 다시 초과이익세를 걷고 강제로 기름을 공출할건가.

인정하긴 무섭지만 글로벌 시장서 석유제품은 품귀 상황으로 가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수출 제한 내지는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기름이 모자라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거다. 한국 정유4사도 당연히 국내에 파는것 보다 수출 마진이 더 좋다. 초과이익세든 뭐든 부담이 커지면 기업입장에서는 해외 판매를 늘려서 이익을 맞춰야 한다. 기름값이 오르다 못해 기름이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정치권의 움직임에 자본시장도 우려한다. 이날 증시에서 상승 출발했던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은 민주당의 '초과이익세' 발표 후 하락반전했고 내내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전일 대비 일괄 하락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