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138엔' 엔화 폭락에도 마이너스 금리 유지하는 日, 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일본 엔화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로이터=뉴스1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기록적인 엔화 약세에 대한 우려에도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 등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 금리를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은행은 21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단기 기준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을 0% 수준을 유지하는 수익률곡선통제(YCC)를 지속한다고 밝혔다.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이 수 십 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일제히 금리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일본만 초저금리 정책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일본 엔화 가치를 끌어 내린 배경에 장기간 금융완화 조치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데도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AFP=뉴스1

실제 엔·달러 환율은 지난 3월초 115엔대에서 최근 138엔대까지 치솟아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도 일본이 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면서 엔화 가치가 폭락했다.

엔화 약세를 비롯해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을 올 상반기 일본은 역대 최대 규모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일본 재무성이 이날 발표한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2% 증가한 45조9378억엔(435조원), 수입은 37.9% 증가한 53조8619억엔(510조원)이다. 상반기에만 7조9241억엔(75조원)의 무역적자를 낸 셈이다.


일본은행은 이날 또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0.4%포인트 높은 2.3%로 상향 조정했다. 금리는 동결했지만 에너지·식품·내구재 등 가격이 뛰는 상황과 엔화 약세를 반영한 결과다. 일본의 4월과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를 넘어섰다.

일본은행이 2003년 이후 처음(소비세율을 인상한 2014년 제외)으로 2%를 초과하는 물가 전망을 내놨다. 일본 도쿄의 한 편의점에서 한 여성 소비자가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 AFP=뉴스1

일본은행이 2%를 초과하는 물가 전망을 내놓은 것은 소비세율이 인상됐던 2014년을 제외하면 2003년 이후 처음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짚었다.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경기 좌절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융 긴축으로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할 가능성이 높아 완화적 정책을 유지했다는 배경을 설명했다. 제조업 실적이 악화하면 일본 경기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일본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한 것도 금리를 올리지 않은 요인으로 꼽았다.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굳이 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