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지털 인재 115만명 키운다"..교육개혁 시동 건 尹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새 정부 들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행보를 상징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반도체다. 취임 100일을 맞아 "미래 산업 핵심이자 국가안보자산인 반도체 산업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했다"며 "관련 대학 정원을 확대하고 민관협력을 강화해 반도체 핵심인재 15만명을 육성하겠다"고 재확인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윤 대통령은 반도체를 강조할 때마다 교육과 인재의 중요성을 함께 역설했다. 전 부처 장관들이 주축을 이룬 국무회의를 통해 "목숨 걸고 인재를 육성하라"고 주문했을 정도다.


반도체 자체가 아닌 반도체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곧 자산이란 판단에서다. 산업현장과 연구일선에서 일할 사람이 고갈되고 있단 위기감도 영향을 줬다. 이에 국가 전략산업에 투입할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체제 대전환이 불가피하단 진단을 내리고, 연금·노동개혁과 함께 교육개혁을 3대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박순애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대전 충남대학교 반도체실험실을 찾아 연구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교육부

윤 대통령의 교육 아젠다는 고등교육의 과감한 규제개혁으로 핵심인력을 확보하고,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디지털 역량을 갖춘 잠재적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잡혔다. 초·중등교육에선 '만5세 초등학교 입학' 갈등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고등교육 현장의 인재 양성 측면에선 향후 5년을 관통할 교육개혁의 청사진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우선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인재양성에 시동이 걸렸다. 교육부는 향후 10년간 15만명의 반도체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산업인력 수요가 오는 2031년에 30만3943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현재 국내 산업인력은 17만6509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대학정원 확대로 4만5000명, 양성교육을 통해 10만5000명을 길러낸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눈에 띄는 지점은 대학 정원 확대다. 교육당국은 2027년까지 대학원 1102명, 일반대 2000명 등 5702명의 정원을 늘린다. 이를 위해선 대학교육 규제 손질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키워드인 규제완화 기조가 교육개혁에도 적용된 것이다. 윤 대통령도 "(반도체학과) 정원을 확대하고 현장 전문가들이 기여할 수 있게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현행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따르면 대학이 정원을 늘리려면 그에 맞춘 교사·교지·교원·수익용기본재산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이번에 정부가 첨단분야에 한해 기존 규제를 모두 풀면서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증원을 허용해주고, 정원 확대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교원 역시 삼성전자 (77,400원 ▼800 -1.02%)나 SK하이닉스 (189,900원 ▼3,100 -1.61%) 등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로 채울 수 있게 자격요건을 완화해준 이유다.


반도체와 함께 미래 국가 경제와 안보까지 책임질 핵심자산인 최첨단 산업을 이끌 디지털 인재양성 목표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2일 교육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2026년까지 디지털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종합방안을 내놨다. 향후 5년간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SW) , 메타버스, 정보보안 등 디지털 분야 인재 수요가 73만8000명으로 예측되는 흐름에 대비해 현재 연간 9만9000명 수준인 해당 분야 인재 양성규모를 2배 이상 확대한다는게 골자다.

디지털 인재양성의 핵심 주체 역시 대학이다. 첨단분야학과 신·증설 및 정원기준 유연화 같은 규제개혁 과제를 디지털 분야에도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를 위해 '디지털 혁신공유대학'과 'SW 중심대학', '신산업특화 전문대학' 등을 확충해 디지털 첨단분야 전공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한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등 연구 인프라 전문화를 지원하고, 디지털분야 대학원도 늘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육단체 관계자들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추진 반대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이를 두고 교육계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학과 정원 확대를 놓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간 갈등 조짐이 보인다. 연구·정주·취업여건이 우수한 수도권 대학의 정원이 늘어나면 교원과 학생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게 비수도권 대학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이 올해 제출한 예상 반도체 학과 증원 규모는 1266명으로 지방대학(611명)의 2배 수준이다.

교육부는 '지방대학 발전 특별협의회'를 구성하고 지방대학에 재정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반발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비수도권 7개 권역 대학 총장협의회 연합은 이달 31일이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디지털 학과 증원 방안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인재양성과 지방대 지원에 활용할 재원 마련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정부는 초·중등 교육에만 쓰이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떼낸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한다는 구상을 내놨지만,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일제히 반대 입장을 보여 차질이 예상된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도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교육교부금과 관련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협의체 구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