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日처럼"…손해 나도 美부동산 팔고 떠나는 中큰손들

미국 뉴욕 맨해튼 전경/AFPBBNews=뉴스1

한때 미국 호텔과 오피스빌딩 등 상업용 부동산을 쓸어 담던 중국 자본이 최근 수년간 현지 시장에서 빠르게 철수하고 있다. 중국 당국의 자본 이동 규제, 미·중 갈등, 중국 기업들의 자금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상업용 부동산 시장 둔화 등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데이터 제공업체 MSCI리얼애셋 자료를 인용해 중국 기업들이 2019년 이후 약 3년 반 동안 미국 상업용 부동산을 236억달러(약 32조9300억원)어치 팔아치웠다고 보도했다. 2013~2018년 중국 기업들이 미국 상업용 부동산을 520억달러어치 사들인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당시 중국 큰손들은 뉴욕 맨해튼을 중심으로 유명 오피스빌딩과 건설 부지, 호텔 등을 비싼 값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중국 안방보험이 2015년 뉴욕 랜드마크 중 하나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19억5000만달러에 사들인 게 대표적이다. 미국 호텔 매매액으로는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증권사 쿠쉬맨앤드웨이크필드의 더그 하먼 자본시장 대표는 "그들은 주머니에 돈이 넘쳐 전리품을 갖는 데 혈안이 된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중국 자본이 차지한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다. 워낙 비싼 값에 사들인 탓에 다른 부동산 가격까지 치솟으면서 시장 전체가 들썩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19년부터다. 중국 규제당국이 기업들의 자본유출 규제를 강화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중 무역전쟁이 고조되면서 양국 관계가 급격히 틀어졌다. 또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하던 일부 중국 기업들은 부채 위기를 맞았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줄었다. 올해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도 시장에 부담을 가중시켰다.


그 결과 중국 큰손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부동산을 매각하고 있다.

하이난항공그룹(HNA)의 경우 2015~2017년 해외 자산을 공격적으로 인수했지만 2018년 자금난에 부딪힌 뒤 2021년 결국 파산에 이르면서, 22억달러에 샀던 뉴욕의 오피스빌딩 245 파크 애비뉴를 최근 18억달러에 미국 부동산투자신탁회사 SL그린리얼티에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최근 중국 자본의 이탈이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일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뉴욕 록펠러센터 등 미국 유명 부동산을 비싸게 사들였지만 버블 붕괴로 해외 자산을 처분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바 있다.

현재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중국 기업의 인수 제안은 매우 드물며 빈 자리는 한국, 독일, 싱가포르 자본이 채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먼 대표는 "늘 떠오르는 자본은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