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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피에 소름 돋게 한…홍대 '쓰레기'의 정체[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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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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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컵 쓰레기 100개 줍기, 썩은 음료서 나는 악취 괴롭고, 음료·내용물 비우느라 골치, 한숨 쉬던 홍대 환경미화원 "일회용컵 말도 못 해요, 하루 종일 치워도 안 돼"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주문하신 홍대 길거리 음료 믹스 두 잔 나왔습니다." 27일 오전, 12잔의 일회용컵에 남은 걸 합친 상큼한 음료를 들고 있는 기자. 참고로 숨은 참고 있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주문하신 홍대 길거리 음료 믹스 두 잔 나왔습니다." 27일 오전, 12잔의 일회용컵에 남은 걸 합친 상큼한 음료를 들고 있는 기자. 참고로 숨은 참고 있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먹다 남은 음료 12잔을 섞으면 어떤 향기가 날까'. 일회용컵에 남겨진 음료를 한데 모으며 몹쓸 상상을 했다. 붓고 섞고 또 붓고 섞이고. 꽤 오래 묵어 썩은 음료들은 탁해지다 못해 새까만 색으로 변해갔다. 숨을 참았다가 생존을 위해 들이마신 순간, 콧구멍이 지옥으로 연결돼 오장육부서 험한 말이 올라왔다.

"악, 이게 무슨 냄새야… 누가 여기 오줌 쌌어?(순화해서 적은 것)"

9월 27일, 홍대 번화가에서의 향긋한 오후. 가을이면서 여름 기온인 날씨에 악취는 격하게 소용돌이쳤고, 일회용컵 쓰레기를 정복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모두 미간을 찌푸렸다. 남기고 간 음료들은 이렇게 다시 모여 새것 같은 두 잔이 되었다. 난 그걸 빗물받이에 부어서 버렸다. 텅 빈 일회용컵은 여전히 평화롭지 않았다. 여전히 내용물이 덕지덕지 붙어 고약한 내음을 풍겼다. 커다란 비닐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길바닥에 나란히 놓여 있던 일회용컵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길바닥에 나란히 놓여 있던 일회용컵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허리를 폈다. 땀이 이마에서 뺨까지 주르륵 흘렀다. 장갑 낀 양손엔 온갖 음료 방울이 튀어 있었기에, 함부로 땀을 훔칠 수도 없었다. 잊고 싶은 좁다란 골목에서 빠져나왔을 때였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홍대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님이었다. 내가 잠깐 하며 욕했던 그 일을 매일매일 했을 사람. 욕하고픈 대상도 이미 없고 쓰레기만 덩그라니 남아 혼잣말로 겨우 끓는 속을 달랬을,

사람이 하던 일. 그러니 일회용컵을 줍는 일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했다.



그땐 썩지 않았고, 이제는 썩어버린


강진주씨(왼쪽)와 장하현씨(가운데), 그리고 남형도씨(본인). 홍대 일회용컵 쓰레기 정복을 위해 모인 사람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강진주씨(왼쪽)와 장하현씨(가운데), 그리고 남형도씨(본인). 홍대 일회용컵 쓰레기 정복을 위해 모인 사람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이번 체헐리즘엔 셋이 뭉쳤다. 나와 장하현 씨(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4학년), 그리고 강진주 씨(이화여대 인문대학 3학년). 하현 씨와 진주 씨는 제로서울 프렌즈(서울시가 뭉치게 한, 일회용품 쓰레기를 0으로 만들겠단 각오를 가진 멋진 서울 청년들)다.

일회용품 쓰레기를 치우기 전 함께 구호를 외쳐보기로 했다. "홍대에 있는 일회용품을(나), 모두(진주 씨), 정복하겠다(하현 씨). 정복 좋은데요? 하하하(다 같이)."

그 말대로 정복하러 큰길부터 다녔다. 생각보다 깨끗하기에 잠시 착각에 빠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다들 이렇듯 성숙해진 건가. 반숙 달걀 같은 시민 의식이 비로소 완숙 달걀이 된 걸까. 그럴 리 없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 순간 우린 다 함께 괴성을 질렀다. 일회용컵 쓰레기가 가득 놓여 있었다.
여기엔 대체 뭐가 담겨 있었던 걸까. 뚜껑을 열 때마다 두려웠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여기엔 대체 뭐가 담겨 있었던 걸까. 뚜껑을 열 때마다 두려웠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일회용컵 쓰레기는 거의 예외 없이 네 가지로 이뤄져 있었다. 두툼한 종이 컵홀더, 플라스틱 빨대(가끔 종이), 플라스틱 뚜껑, 플라스틱 컵. 여기까지면 그나마 치우기 나은데, 정작 힘든 건 부산물이었다. 그 손에서 떠났을 땐 썩지 않았겠으나, 지금은 썩을 대로 썩어버린 음료들. 이런 대화가 숱하게 이어졌다.

"(뚜껑을 열며) 이, 이게 대체 뭘까요?"(나)
"어, 제가 카페 아르바이트해서 아는데…에이드 종류인 것 같아요. 아니면 홍차? 으, 두피에 소름 돋아요."(하현 씨)
"한, 10년 된 거 아니에요?"(나)

정체 모를 눅진한 티백, 발효될 대로 발효돼 뭔지 알 길 없는 액체. 일회용컵 쓰레기를 하나씩 집을 때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했다. 어쩐지 계속 되뇌었다. 그땐 썩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일회용컵 쓰레기가 버려진, '자리'가 말해주는 것


이거 버리신 분 누구지요? 표정으로 말하는 남형도 기자./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이거 버리신 분 누구지요? 표정으로 말하는 남형도 기자./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음료는 빗물받이에 버리고, 일회용컵은 비닐에 모았다. 그러다 골치 아픈 녀석이 발견됐다. 버블티류의 '펄(동글동글해서 씹히는 그것)'이 남은 거였다. 불어버린 이 알갱이들은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결국, 음식물 쓰레기 봉지 하나를 더 사서 거기 버릴 수밖에 없었다.

오래돼 컵에 잔뜩 늘어 붙은 음료도 곤란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씻을 수도 없었다. 딸기 음료는 분홍빛으로, 휘핑크림이 담긴 건 허옇고 끈적하게 컵 벽에 들러붙어 보기 흉했다. "이걸 재활용할 수 있을까요?" "아마 어렵지 않을까요?" 일회용컵 쓰레기를 정리하면서도, 우리 대화는 보람보단 이렇듯 불안이 더 컸다.

고난을 견디고 약 2시간여 만에 커다란 비닐이 꽉 찼다. 평일 오후의 홍대라 그나마 덜 했을 텐데도, 구석구석 일회용컵이 안 놓인 곳은 없었다. 홍대에 온 '일회용컵 정복자' 셋은 지쳐 있었다. 함께 소감을 나눴다.
비닐봉지에 모인 일회용컵 쓰레기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비닐봉지에 모인 일회용컵 쓰레기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우자는, 직접 해보니 그런 맘이 더 들었어요. 친구들에게도 많이 알리려고요. (친구가 버리려고 하면요?) 주워서 다시 줄 거예요. 제대로 버리라고 해야죠."(하현 씨)

"좁은 골목에 들어갈 때마다 부패한 음료를 보고 경악했어요. 누군가 하나 버리니, 그 옆에 나란히 모아뒀겠죠. 냄새가 너무 심해서 그게 제일 힘들었습니다."(진주 씨)

지하철 환풍구 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의 길바닥, 풀숲 사이 깊숙한 곳. 일회용컵 쓰레기 대부분은, 그래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란 걸 그나마 알아서일 거라며 홀로 추측했다. 일회용컵 쓰레기로 가득한 길거리에서 품을 수 있는 희망은, 오직 그뿐이었다.



재활용률 5% 미만이라니, 무너진 보람


1123개의 일회용컵 쓰레기./사진=와이퍼스
1123개의 일회용컵 쓰레기./사진=와이퍼스
추가 취재를 하느라 황승용 와이퍼스 대표(닦장)에게 연락했다. 그는 지난 6월 홍대서 50여 명과 함께 일회용컵 1123개를 주웠다. 세척까지 다 했단다. 그 말에 이렇게 물었다.

"그쵸, 더러운 일회용컵 쓰레기는 재활용이 안 되잖아요."(나)
"더럽지 않은 것도 재활용 안 돼요."(황 대표)

아, 차마 몰랐던 이야기였다. 찾아보니, 일회용컵에 인쇄가 1cm만 들어가도 재활용이 안 된다고 했다. 투명한 PET 재질이 아니면 어렵단다. 일회용컵에 새겨진 '브랜드 이름' 말이다. 게다가 일회용컵이 잘 모이지도 않으니, 재활용률이 5%도 채 안 된단다.

플라스틱 컵 하나가 썩는데 500년 이상 걸린단 것만 알았다. 재활용을 바라며 일회용컵을 100개 넘게 모았다. 그런데 95%는 재활용을 할 수 없단 거였다. 그날 긴가민가하며 쌓아뒀던 보람이 한순간 무너져내렸다. 재활용이 어려우면 소각되는 걸까, 그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은 또 얼마일까 싶어서. 황 대표의 말이 새삼 떠올라 속이 쓰렸다.

"일회용컵에 재활용 마크 있는데 버리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해요. 재활용되는 줄 알고 있어요. 버려진 컵들을 치우고 있으면 마음 아픕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이렇게 생각 없나 싶고요. 편리함이 되게 비합리적인 이기심으로 가고 있어요. 내가 사는 지구가 미세 플라스틱에, 폭우·가뭄에 시달려도 지금은 괜찮으니까, 그런 생각이 안쓰럽지요."



"음료 000원 할인되면, 텀블러 꼭 챙기겠다"…1657명에게 물어보니


음료가 얼마나 할인돼야 텀블러를 가지고 다닐지 궁금해서, 직접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봤다./사진=남형도 기자 인스타그램 스토리
음료가 얼마나 할인돼야 텀블러를 가지고 다닐지 궁금해서, 직접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봤다./사진=남형도 기자 인스타그램 스토리
버리는 걸 아무리 많이 주워도 또 버리면 무슨 소용이랴.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일회용컵이 애초에 많이 나오지 않는 거였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막연히 생각이 든 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텀블러'를 챙기는 거였다. 개인 텀블러를 가져가면 400원을 할인해주는,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갔다. 그런데도 가만히 지켜보니, 텀블러를 챙겨온 이가 별로 없었다.

'얼마나 할인해주면 텀블러를 꼭 챙겨 다닐까.' 궁금해서 기자의 SNS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질문은 "음료가 000원 할인되면 텀블러를 꼭 챙기겠다"였고, 네 개의 응답 항목에 300원, 500원, 700원, 1000원 이상을 넣었다.

총 1657명이 응답했고, 이중 가장 많은 38%(637명)'1000원 이상'이라고 했다. 1000원 넘게 할인해주면 텀블러를 꼭 챙긴단 얘기였다. 이어 500원(38%, 626표)이 2등, 700원(18%, 301표)이 3등이었고, 끝으로 300원(6%, 93표)이 뒤를 이었다.
텀블러를 가져오면 1000원을 할인해주는 카페./사진=순천 노플라스틱 카페
텀블러를 가져오면 1000원을 할인해주는 카페./사진=순천 노플라스틱 카페
실제로 전남 순천의 노플라스틱 카페서 일하는 한 직원은 "개인 텀블러를 가져오는 손님에게 모든 메뉴를 1000원 할인해드리고 있다"고 했다. 효과는 분명 있었다. 개인 텀블러 사용이 7월엔 676개, 8월엔 590개였단다. 할인 효과다. 이 카페는 일회용컵을 아예 안 쓴다. 개인 텀블러가 없는 이에겐 공유 텀블러(기부로 받은)를 빌려준다. 다만 직원은 "아무래도 부담이 없진 않다"고 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좋은 뜻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터였다.

결과는 나왔으나, 이게 실현될 수 있을까 싶었다. 가장 큰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도 400원 할인해주는데, 개인 카페가 이런 할인 폭이 가능할까. 아마도 이 정도 규모로 시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거라 여겼다.



손해에 더 민감한 심리… 일회용컵 보증금 300원


일반쓰레기통 위에 놓인 일회용컵 쓰레기./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일반쓰레기통 위에 놓인 일회용컵 쓰레기./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비닐봉투 000원인데 필요하세요?"(점원)
"아뇨, 괜찮아요. 그냥 들고 갈게요."(손님)

동네 마트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텀블러 할인 같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한 사람 심리를 이용한 게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다. 일회용컵 하나를 내어줄 때마다 보증금 300원을 받고, 다시 가지고 가면 300원을 돌려준다. 일회용컵을 쓸 때마다 당장 더 내는, 300원은 작아 보여도 피부에 크게 와닿는다. 그래서 덜 쓰게 되고, 쓰더라도 회수율이 높아진다. 컵 재질을 통일해 재활용률도 높인다. 환경부는 2020년 관련법을 통과하며 "(보증금제 시행으로) 재활용이 촉진되면, 소각하는 것과 비교해 온실가스를 66% 넘게 줄이고, 매년 445억 원 이상 편익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올해 6월에 시행 예정이었던, 보증금제 역시 표류하고 있다. 시작 시기는 12월로 미뤄졌고, 그마저도 전국이 아니라 제주와 세종만 적용하는 걸로 축소됐다. 관련 업계 반발에, 제도 보완이 필요하단 지적 때문이다. 대전의 H 카페 사장은 "일회용컵 회수와 환불을, 누가 어떻게 할 건지가 중요하다. 카페에 전가하고 다른 카페 컵까지 회수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무인반납기 설치 비용도 만만찮고, 300원 환불은 카드로 어떻게 하냐"며 비판했다.

그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의지 없이 강행할 때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컵 보증금 제도가 있을 당시(2002~2008년) M 프랜차이즈 매장서 일했다던 서모씨는 "그때도 컵을 모아 가지고 오는 손님들이 있었는데, 정작 매장에선 재활용이 이뤄지지 않았다""매니저한테 '받은 컵 어디 놓느냐'고 물으니, 그냥 일반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매장서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여긴다면, 보증금 부과가 소비자 부담만 되고 재활용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단 우려였다.
서울 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비치된 일회용컵./사진=뉴시스
서울 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비치된 일회용컵./사진=뉴시스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이란 조언이 나왔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활동가 "제주·세종 우선 시행을 발표했으면, 전국 시행은 언제할지, 제도가 잘 자리잡히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정부가 명확한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 자리 잡기 위해선 반납이 편리하고 원활할 수 있도록 무인회수기 설치 등이 우선돼야 한다"고도 했다. 또한 제도 시행으로 인한 가맹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본사 지원 책임을 법에 명시하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했다.

황승용 와이퍼스 대표(닦장)"이익은 기업이 다 가져가면서, 미래 자원과 누려야 할 자연에 대한 피해는 나눠서 갖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며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무조건 전국에서 다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카페 사장님도 "설거지 덜어 좋아요"…서울시 '제로카페' 직접 가보니


일회용컵 쓰레기 제로 카페인, 언톨드 스위츠의 박주찬 사장님(가운데)과 기자(왼쪽). 장하현씨(오른쪽)와 강진주씨(오른쪽 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일회용컵 쓰레기 제로 카페인, 언톨드 스위츠의 박주찬 사장님(가운데)과 기자(왼쪽). 장하현씨(오른쪽)와 강진주씨(오른쪽 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그러니 쉽지 않은 길, 그러나 오래 걸려도 방법을 잘 찾아서 가야 할 길이다.

그 안에서 일회용컵 줄이기를 위한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행복커넥트SK텔레콤과 협력해 카페에, 다회용컵 무인반납기를 무상으로 설치해주고 있다. 이른바 '일회용컵 제로 카페'다. 지난해 11월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9월 기준 서울 시내 제로 카페가 35곳까지 늘었다.

을지로에 있는 제로 카페 <언톨드 스위츠>에 직접 가봤다. 키오스크(무인 주문기)에서 '다회용컵'을 선택할 수 있었다. 보증금은 1000원이었다. 일회용컵이 아니니, 매장 내에서도 쓸 수 있다. 다회용컵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빈 컵을 매장 내 무인반납기에 넣으니, 계산할 때 냈던 1000원을 바로 돌려줬다.
이렇게 메뉴에서 다회용컵을 선택할 수 있다. 다회용컵 보증금은 1000원. 반납기에 반납하면 바로 돌려준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이렇게 메뉴에서 다회용컵을 선택할 수 있다. 다회용컵 보증금은 1000원. 반납기에 반납하면 바로 돌려준다./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카페 입장에서도 '장점'이 있다고 했다. 무인반납기에 담긴 컵을, 일정 주기마다 다 수거해서 세척한 뒤 다시 가져와 줘서다. 세척 공정도, 기준도 까다롭게 해 위생을 관리한다. 박주찬 언톨드 스위츠 사장"직원들이 컵 닦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손님들이 많이 몰릴 때 설거지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사장 입장에서도 좋다"고 만족해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장하현 씨는 "카페 일은 설거지가 반"이라며 좋을 것 같다고 공감했다.

무인반납기를 도입한 뒤, 코로나19로 한창 많이 쓸 땐 60~100잔씩 나가던 일회용컵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아직은 홍보가 덜 돼 다회용컵을 쓰는 비중이 10% 미만이긴 하지만. 박 사장은 "환경에 관심 있는 분들은 좋아한다. 홍보가 더 많이 되면 늘어날 것이라 본다"고 기대했다.
무인반납기에서 다회용컵을 반납하는 기자. 1000원아 빨리 나오렴./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무인반납기에서 다회용컵을 반납하는 기자. 1000원아 빨리 나오렴./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서울시도 무인반납기를 지하철 역사 등에 확대 설치해 편리성을 높일 계획이다. 카페서 다회용컵에 음료를 담아 사무실에 가져온 뒤, 퇴근할 때 지하철역에서 반납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김정림 서울시 자원순환과 생활폐기물감량팀 주무관"일회용컵의 편리함을 소비자가 쉽게 버리기 힘든 면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참여가 확대될 거라고 본다"고 했다. 이를 위해 다회용컵 이용에 따른 인센티브도 늘릴 계획이다.



일회용컵을 줄이기 위해 모은 '아이디어'


다회용컵에 담긴 커피./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다회용컵에 담긴 커피./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1. 카페는 이래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봤어요. 텀블러든 다회용이든 두 배는 손이 많이 갑니다. 일이 빨리 진행되기 어려워요. 음료 레시피대로 그램(g) 용량이 정해져 있거든요. 결국, 일회용컵에 담은 걸 다시 텀블러에 담아주기도 합니다. 컵을 정리할 주방 공간도 커야 하는데, 이건 다 임대료와 연관돼 있고요. 매상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문제의식과 사명감이 있지 않으면 힘든 일입니다. 파는 이에게 혜택을 주는 게 중요해요.(김수산 독자님)

텀블러는 쓰면 좋은데, 크기가 제각각이라 그거대로 문제가 있어요. 작아도 문제인데, 크면 가득 담기지 않았다며 양이 적다고 욕하는 손님도 있어요. 텀블러 안 씻어오고 씻어달란 분도 있고요. 레시피대로 계량을 따로 해야해서 번거롭기도 하고요. 일회용품 문제를 다루고, 제한하거나 금지하려면 대안을 줘야 해요. 그 부담을 사업장에 전가하지 말고요.(H카페 사장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기자의 텀블러가 노트북 오른편에 놓여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기자의 텀블러가 노트북 오른편에 놓여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2. 손님은 이렇고요

텀블러를 쓰려는 시도는 꽤 했는데요. 문제는 '지속성'인 것 같아요. 키오스크 주문이 많아진 상황에서, 텀블러를 쓰면 굳이 계산대에 가서 또 말해야 하거든요. 씻어야 하고, 씻지 않은 텀블러를 손에 들고 다니는 수고로움이 있고요. 또 학생이라 용량이 큰 커피를 가끔 먹는데, 그에 맞는 걸 가지고 다니려면 너무 크고요.(슈퍼문 독자님)

더 많은 가방 브랜드들이 텀블러를 담을 수 있는 칸을 마련해 주면 좋겠습니다. 가방에 넣으면 텀블러가 누워 있어서 영 불편하거든요. 사무실에선 텀블러 쓰기가 편한데, 외출시 손이 잘 안 가는 건 휴대성이 불편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hyo 독자님)

텀블러 들고 다니면 세척이 너무 힘들고, 화장실 같은 데서 닦으면 깨끗한 느낌도 들지 않더라고요. 또 휘핑크림 들어간 음료는 물로 아무리 세척해도 다시 쓰기 힘들고요. 그러다 보니 또 잘 안가지고 다니게 됩니다. 직원분에게 세척 부탁드리는 것도 죄송하고요. 그래서 카페나 공공시설 등에서 텀블러 셀프 세척기가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클로에킴 독자님)

3. 이런 게 있었으면 싶어요

일회용컵에 QR코드, 바코드를 부착하고, 재활용쓰레기통을 길거리나 지하철역 입구 쪽에 설치해주세요. 카페가 그렇게 많은데, 재활용쓰레기통이 별로 없단 사실이 놀랍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살았을 때, 페트병이나 유리병을 모든 마트에 설치된 재활용쓰레기통에 넣으면 돈을 환급받을 수 있었는데요. 돈, 마일리지, 쿠폰 등 보상이 주어지면 재밌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0814 독자님)

환경부에서 앱을 차라리 만들어서, 텀블러 사용 도장을 모으면 문화상품권을 준다던지…뮤지컬 쿠폰이나 전시회, 영화 티켓 등을 주면 어떨까 싶어요. 텀블러 할인은 카페 부담이 크니까요.(진곧 독자님)

아직 액체가 남아 있어 방법을 잘 모르거나, 액체가 흐를까 걱정되어 그대로 세워놓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지하철역에 설치된 쓰레기통에는 액체를 버리고 바로 분리수거가 가능한데요. 지상에선 저렇게 설치된 쓰레기통을 못 봤습니다.(하고은 독자님)
일회용컵을 재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사진=가후네집 독자님 제공
일회용컵을 재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사진=가후네집 독자님 제공
4. 일회용컵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

텀블러는 자리 차지를 많이 해서,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분이 불편할 수 있어요. 요즘엔 접으면 접히는 실리콘 텀블러도 있거든요. 이런 면에서 효율적이에요. 또 빨대는 그냥 쓰레기가 된다는데, 별다방처럼 빨대 없이 먹을 수 있는 일회용컵이 다른 카페에도 도입됐으면 좋겠어요.(권현빈 독자님)

유럽에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종이컵에 주는 경우가 많아요. 플라스틱 줄이기를 실천하는 거지요.(채경민 독자님)

카페 메뉴에 일회용컵 요금과, 텀블러 요금을 다르게 적어놓는 거예요. 시각적으로 차이를 느끼도록요. 일회용컵을 쓰는 만큼 요금을 더 낸다는 느낌을 받게 하면 어떨까요.(숨을꾹참는다 독자님)

텀블러 쿠폰 같은 건 어떨까 싶어요. 10번 지참하면 한 번은 메뉴를 무료로 주는 거지요.(박다영 독자님)

취미로 가드너를 하는데, 맨 처음 씨앗을 발아시키거나 어린잎을 키울 때 일회용컵을 씁니다.(가후네집 독자님)
지하철 환기구 위에 놓인 일회용컵 쓰레기를 줍는 기자./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지하철 환기구 위에 놓인 일회용컵 쓰레기를 줍는 기자./사진=서울시, 이상열 미디어트립 PD
에필로그(epilogue).

홍대 환경미화원님께 다가가 일회용 컵 쓰레기가 많냐고 물었다.

"아우, 말도 못 해요. 엄청 나와요. 온종일 치워도 안 돼요. 버스킹 하는 자리 있잖아요. 음료 마시고 그냥 놓고 가요."

시민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냐고도 물었다.

"말해서 알아듣지도 않잖아요. 바라지도 않아요."

빈 소주병 개당 100원. 빈 맥주병은 개당 130원. 소주병과 맥주병 등 빈 병의 출고량은 42억 1500만 병. 회수량은 41억 2500만 병(2020년 기준). 전체 회수율이 무려 98%. 빈 병 보증금제가 적용된 용기는 평균 8회 정도 재사용. 가정에서도 63%가 돌아옴.

환경미화원님께 전하고 싶다. 그래도 우린 이렇듯 이미 성공한 경험이 있다고.

그러니 일회용컵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마 가능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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