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다" 거침없는 SELL...韓 증시 흔드는 외국계 리포트 파워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지난 4일 NAVER 주가가 8.78% 폭락했다. 외국계 증권사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 네이버에 대한 투자의견을 'SELL(매도)'로 대폭 하향조정한 여파였다.

씨티증권은 NAVER의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을 건너뛰고 '매도'로 두 단계 내렸다. 목표 주가도 기존 32만8000원에서 17만원으로 무려 48.2% 하향 조정했다. 충격적 매도 리포트에 외국인은 4,5일 이틀간 7335억원 대규모 매물을 쏟아냈다. 소수계좌에서 매물 폭탄이 터지면서 한국거래소가 NAVER (181,500원 ▼1,200 -0.66%)를 투자주의 종목에 지정할 정도였다.

같은날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업황 개선을 전망하며 SK하이닉스 (177,800원 ▲7,200 +4.22%)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확대'로 상향 조정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악화된 반도체 업황이 내년 1분기 중 바닥을 찍고 반등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SK하이닉스와 더불어 LG디스플레이 (10,320원 ▲40 +0.39%)에 대한 투자의견도 중립에서 '비중확대'로 상향했다.

모건스탠리의 투자의견 선회에 5일 SK하이닉스는 4.18% 뛰었고 LG디스플레이는 무려 9.27% 치솟았다. 4~6일 모건스탠리 창구에서 SK하이닉스 136만주 주문이 쇄도했고 LG디스플레이 순매수 주문도 52만주 유입됐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씨티증권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거침없는 한국 주식 '매수, 매도' 의견이 증시를 뒤흔든다. 막강한 글로벌 네크워크와 결합된 외국계 증권사의 세일즈 파워는 외국계 자금 흐름을 좌우하며 국내 증권사에 견줄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글로벌 IB하우스의 세일즈 파워...외국인 '폭탄 매도·매수' 방아쇠

전문가들은 외국계증권사의 글로벌 세일즈 역량과 매도 의견을 꺼리는 한국 자본시장 문화가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의 국내 시장 영향력을 강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가 한국 증시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배경에는 글로벌 투자은행이 보유한 세일즈 역량이 있다.

모간스탠리, JP모간, CLSA, UBS, 크레디트스위스 등 외국계 증권사는 '오늘의 리포트(Today's Report)'로 불리는 세일즈 시스템을 운영한다. '오늘의 리포트'란 전 세계 각국에 포진한 리서치센터에서 당일 발간된 수십, 수백 여 개의 보고서 중 가장 의미 있는 리포트를 택해 집중 세일즈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씨티증권이 지난 4일 발간한 NAVER 보고서가 '오늘의리포트'로 선정됐다면 전 세계 씨티증권 지점에 근무하는 브로커는 각국 기관투자자에게 이 보고서를 집중 배포하며 세일즈를 펼친다. 글로벌 세일즈망을 가진 씨티증권이 전 세계 연기금, 공제회,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식 세일즈에 나서면서 글로벌 자금이 움직이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5일 양일간 씨티증권 창구에서는 NAVER 매물이 무려 176만주 출회됐고 이틀간 주가는 16.54% 내렸다. 씨티증권 리포트를 신뢰해 씨티증권 창구로 주문을 낸 외국인 투자자가 많았던 것이다.

즉 글로벌 투자은행은 리서치센터가 영향력이 막강한 리포트로 '콜(call)' 하고, 이 리포트가 글로벌 세일즈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각국 펀드매니저에게 영향을 미쳐 국내 증권사와 차별화된 힘을 떨치게 된다.

'거침없는 SELL vs 화끈한 강력 매수'....매수 일색 국내證과 차별화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발간하는 리포트가 매수 일색인 것도 외국계 증권사의 파급력을 강화시킨다. 매수 추천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어쩌다 나타나는 매도 보고서에 시장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씨티증권 보고서 한 장에 주가가 폭락한 NAVER의 투자의견만 봐도 국내 20개 증권사는 모두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외국계의 경우 씨티증권이 '매도', 노무라금융투자와 JP모건이 '중립', CLSA는 '시장수익률 하회(underperform)', 크레디트스위스 '시장수익률 상회(outperform)', 골드만삭스 '매수' 의견을 내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경우 기업과 투자자의 눈치를 보면서 과감한 의견을 냈다 철회하는 사례도 있다. 리서치센터에서 독립적인 의견을 냈다 해도 해당 기업과 거래하는 IB(투자은행) 부문에서 협조를 요청하는 등 난감한 경우가 많아서다. 매도 의견을 냈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투자자 항의가 빗발쳐 분석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뱅크 '매도' 의견에 목표가 2만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카카오뱅크가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하자 분석을 중단했다. 1년 뒤 카카오뱅크는 결국 2만원까지 급락하며 당시 그의 통찰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정창원 노무라증권 한국법인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에는 다양한 고객이 존재하고 매수 뿐 아니라 매도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애널리스트의 의무"라며 "매도 리포트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계 투자은행들도 기본적으로 실적과 펀더멘탈이 우량한 기업을 분석하기 때문에 매수 의견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공받은 '국내 및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7~2021년 사이 국내 증권사의 전체 투자의견 2만2907건 중 매도 의견은 32건(0.139%)에 그쳤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는 전체 투자의견 11만8019건 중 매도 의견 1만8680건(15.83%)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