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라" 한마디에 주가 뚝뚝…힘 세진 외국계 리포트

#지난 4일 네이버 주가가 8.78% 폭락했다. 외국계 증권사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 투자의견을 'SELL(매도)'로 낮춘 여파였다. '매수'에서 '중립'을 건너뛰고 '매도'로 두 단계 내렸다. 목표주가도 기존 32만8000원에서 17만원으로 무려 48.2% 낮췄다. 충격적 리포트에 외국인은 4~5일 이틀간 7335억원 대규모 매물을 쏟아냈다. 같은 날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업황 개선을 전망하며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확대'로 상향했다. 반도체 업황이 내년 1분기 중 바닥을 찍고 반등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LG디스플레이 투자의견도 중립에서 '비중확대'로 상향했다. 5일 SK하이닉스는 4.18% 뛰었고 LG디스플레이는 무려 9.27% 치솟았다. 4~6일 모건스탠리 창구에서 SK하이닉스 136만주 주문이 쇄도했고 LG디스플레이 순매수 주문도 52만주 유입됐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씨티증권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거침없는 한국 주식 매수·매도 의견이 증시를 뒤흔든다.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결합된 외국계 증권사의 세일즈 파워는 외국계 자금 흐름을 좌우하며 국내 증권사에 견줄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글로벌 IB 세일즈 파워…외인 '폭탄 매매' 방아쇠전문가들은 외국계 증권사의 글로벌 세일즈 역량과 매도 의견을 꺼리는 한국 자본시장 문화가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의 국내 시장 영향력을 강화시켰다고 분석한다. 모건스탠리, JP모건, CLSA, UBS, 크레디트스위스 등 외국계 증권사는 '오늘의 리포트(Today's Report)'로 불리는 세일즈 시스템을 운영한다. '오늘의 리포트'란 각 국에 포진한 리서치센터에서 당일 발간된 수십, 수백여개 보고서 중 가장 의미 있는 리포트를 택해 집중 세일즈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씨티증권이 지난 4일 발간한 네이버 보고서가 '오늘의 리포트'로 선정됐다면 전 세계 씨티증권 지점 브로커는 각국 기관투자자에게 이 보고서를 집중 배포하며 세일즈를 펼친다. 글로벌 세일즈망을 가진 씨티증권이 전 세계 연기금, 공제회,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식 세일즈에 나서면서 글로벌 자금이 움직이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5일 양일간 씨티증권 창구에서는 네이버 매물이 무려 176만주 출회됐고 이틀간 주가는 16.54% 내렸다. 씨티증권 리포트를 신뢰해 씨티증권 창구로 주문을 낸 외국인 투자자가 많았던 것이다.


거침없는 SELL, 강력 매수…국내 증권사와 차별화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발간하는 리포트가 매수 일색인 것도 외국계 증권사의 파급력을 강화시킨다. 매수 추천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어쩌다 나타나는 매도 보고서에 시장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씨티증권 보고서 한 장에 주가가 폭락한 네이버의 경우 국내 20개 증권사는 모두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외국계의 경우 씨티증권 '매도', 노무라금융투자·JP모건 '중립', CLSA '시장수익률 하회', 크레디트스위스 '시장수익률 상회', 골드만삭스 '매수' 의견이다.


국내 증권사의 경우 기업과 투자자의 눈치를 보면서 과감한 의견을 냈다 철회하는 사례도 있다. 리서치센터가 독립적 의견을 냈다 해도 해당 기업과 거래하는 IB(투자은행) 부문에서 협조를 요청하는 등 난감한 경우가 많아서다. 매도 의견을 냈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투자자 항의가 빗발쳐 분석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정창원 노무라증권 한국법인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에는 다양한 고객이 있고 매수 뿐 아니라 매도에 대해서도 독립적 의견을 내는 것은 애널리스트의 의무"라며 "매도 리포트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계 IB들도 실적과 펀더멘털이 우량한 기업을 분석하기 때문에 매수 의견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내 및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 통계'에 따르면 2017~2021년 국내 증권사의 전체 투자의견 2만2907건 중 매도는 32건(0.139%)에 그쳤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는 투자의견 11만8019건 중 매도 1만8680건(15.83%)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