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콘텐츠는 돈내고 볼 만한가요?

12일, 일본발(發) 의미있는 보도가 하나 나왔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가 위성방송과 지상파의 수신료를 약 10% 인하한다는 소식이었다. 전세계 경제 위기와 더불어 물가가 치솟는 상황 속에서 "가격을 내린다"는 소식이 마냥 반갑다.


이 소식이 더욱 반갑게 들리는 이유는,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가 현재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중은 KBS에 되묻고 싶다. "당신은 돈 더 내고 TV를 보고 싶은가?"



#"과연 대중은 TV를 보는가?"


NHK는 내년 10월부터 위성방송와 지상파 수신료(월 기준)를 각각 2170∼2220엔에서 1950엔으로, 1225∼1275엔에서 1100엔으로 각각 인하한다. 마에다 데루노부(前田晃伸) NHK 회장은 1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속적인 내부 개혁 결과, 이 같은 수신료 인하를 단행할 수 있을 만큼의 재원을 확보했다"며 "물가 인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시청자의 부담 경감에 보탬이 되도록, 큰 폭의 인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프랑스 하원은 지난 7월 TV 수신료 폐지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재선 공약이기도 했다. 영국도 이 기조에 동참했다. 수신료 동결 소식을 밝힌 데 이어 수신료 의무 납부의 적절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27년까지는 현행을 유지하지만 2028년쯤 폐지하는 것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흐름이라 보기 어렵다. 각국의 TV 수신료를 인하하거나 폐지하는 배경에는 "과연 대중은 TV를 보는가?"라는 질문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보자. 20년 전까지만 해도 지상파 3사의 위상은 공고했다.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광고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TV 나온 사람’이 유명함의 기준이 되던 때다.


그러다 20년 전 tvN을 비롯한 케이블채널이 영향력을 키우며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상파 3사’ 외에도 볼 것이 있다는 인식이 차츰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다 10년 전에는 종합편성채널 4사가 가세했다. 개국 초기 각 방송사는 보도 프로그램에 몰두했다. 하지만 ‘종합’ 편성채널로서 드라마, 예능을 하나 둘 만들었고 성공 사례도 빈번하게 쏟아졌다. 그리고 지금 현재, 지상파와 종편 그리고 케이블 간 우위를 따지기는 어렵다.


그 중에서도 KBS는 유일하게 수신료를 받는다. KBS 1TV의 경우 상업 광고 없이 프로그램이 편성된다. 국민의 세금인 수신료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대중은 볼만한 콘텐츠를 선택할 때 ‘광고 유무’를 중요시할까? 중요한 장면을 앞두고 광고를 시작하는 것은 분명 불편하다. 그러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대중은 기꺼이 광고가 끝나기까지 기다린다. 케이블채널의 위상을 바꿔놓은 초창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Mnet ‘슈퍼스타K’의 경우 경연의 승자 발표를 앞두고 중간 광고를 끼워넣으며 아예 ‘60초 후에 돌아옵니다’라는 MC 멘트를 유행어로 만들었다.


여기에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이 가세했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거대 자본을 앞세운 플랫폼에 웨이브와 티빙 같은 토종 OTT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주무대는 TV가 아닌 스마트폰이다. 더 이상 온가족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시청하던 시대가 아니다. 결국 TV 시청은 수많은 선택 사항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이런 TV를 보기 위해서 수신료를 낸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특히 어릴 적부터 TV와 거리를 두던 MZ세대에게 TV는 스마트폰보다 멀고 먼 존재가 됐다.


#"과연 대중은 KBS를 보는가?"


이제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보자. 모든 TV채널이 수신료를 요구하진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KBS만이 수신료를 받는다. 그렇다면 대중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과연 KBS 콘텐츠는 돈주고 볼 만한가?"


물론 명확한 답을 내리긴 어렵다. ‘9시 뉴스’는 여전히 전체 뉴스 콘텐츠를 통틀어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이고, 몇몇 눈에 띄는 성공작도 보인다. 하지만 채널 전체의 영향력과 지명도를 놓고 봤을 때, KBS가 타 채널의 콘텐츠에 비해 월등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달린다. KBS는 재난주관방송사이지만 이미 몇 차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그들의 정치적 중립성의 유지 여부는 더 큰 논란거리다.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편향적인 보도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 방송이라면 마땅히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위정자들의 눈치를 보는 행태를 보이면서 대중이 그들의 수신료 인상 주장에 동의해주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한국의 수신료 징수 체계는 독특하다.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세 징수와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대중이 KBS 수신료 납부를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난 10월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의 질의·답변 과정에서, 한국전력이 KBS 수신료와 전기세를 분리 징수하는 방안을 지난달 한 법무법인을 통해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KBS 수신료를 별도 징수하게 된다면, 납부를 거부하는 비율은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수신료 납부 기준이 각 가정에 TV수상기 비치 여부인데, 요즘 TV를 없앤 가정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KBS는 수신료 인상안을 계속 추진 중이다. 국민적 정서를 고려할 때, 앞서 몇 차례 실패했던 사례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 KBS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인상안을 관찰시키기 위해 투표권을 쥐고 있는 정치인들을 설득시키는 일일까?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이 순서다. 대중에게 "KBS 콘텐츠는 돈 내고 볼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