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투자 감산없다" 삼성의 나홀로 행보…시장에 변수 던졌다

삼성전자 (78,300원 ▼100 -0.13%)도 세계 경제 침체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전체 실적의 70% 가량을 책임져온 반도체 사업이 직격타를 맞으면서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5조원 가까이 급감했다. 스마트폰과 TV, 가전 등 다른 주요 사업도 글로벌 수요 위축 여파로 일제히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메모리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인위적 감산이나 투자 조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영업익 31% 급감" 삼성전자도 실적부진...메모리 직격탄에 1위 내줬다삼성전자는 27일 실적 발표를 통해 올해 3분기 매출 76조7817억원, 영업이익은 10조852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역대 3분기 최대 실적을 거두며 선방했으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1.39% 급락했다. 2019년 4분기 이후 약 3년 만에 전년 분기 대비 역성장이다. 이달 7일 발표했던 잠정치와 비교하면 매출은 좀더 늘고, 영업이익은 소폭 줄었다.


그동안 실적을 견인해왔던 DS(반도체) 부문의 부진이 뼈아팠다. DS 부문은 올 3분기 매출 23조200억원, 영업익 5조12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익이 각각 12.8%, 49.1% 줄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인텔로부터 탈환해 지켜오던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에 내주게 됐다. TSMC는 최근 3분기 매출액이 6131억 대만 달러(약 27조5000억 원)라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주력인 메모리 수요가 둔화하고 거래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익 확보에 고전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전 분기 대비 각각 10~15%, 13~18% 가격이 내려간 것으로 추측된다. 그간 실적 버팀목 역할을 해온 서버 수요도 데이터센터 업계가 전기요금과 건설 비용 부담으로 계획했던 투자를 미루거나 축소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DX(디바이스 경험·세트) 부문은 3분기 매출 47조2600억원, 영업이익 3조5300억원을 기록했다. IT(정보통신) 시장 위축으로 MX(모바일)부문과 네트워크 사업 부문이 전년 동기 대비 3.6% 감소한 3조2400억원의 영업익을 거뒀고, VD(영상디스플레이)와 가전 사업 영업익은 전년 대비 3분의 1 수준인 2500억원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에도 글로벌 IT 수요 부진과 메모리 시황 약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실적개선세를 보인 파운드리와 삼성디스플레이의 상승세를 유지하는 한편, DX 부문은 수익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라 밝혔다.

"감산은 없다" 삼성이 띄운 변수…시장에 변화 바람이날 실적발표에서 단연 시선을 끈 장면은 삼성전자가 "인위적인 메모리 감산·투자 축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경기 불황에 경쟁사들이 줄줄이 감산을 선언한 상황에서 나홀로 공격적 행보를 예고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메모리 업계에 변수를 띄웠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이날 실적발표 후 열린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인위적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고 케펙스(CAPEX·설비투자) 변동 폭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렸던 '삼성 테크 데이 2022'에서 밝혔던 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한 부사장은 "현재 메모리 시장이 위축된 것은 맞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황이 내년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했다. D램의 경우 데이터센터가 확대와 신규 CPU(중앙처리장치) 출시에 따른 DDR5 채용 증가로 이르면 내년 하반기, 낸드는 재고 소진과 응용처 수요 견조로 내년 하반기에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다.

경쟁사 대비 뛰어난 원가경쟁력이 삼성전자의 선택을 뒷받침한다. 가격 탄력성을 활용해 수요를 선제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한 부사장은 "D램과 낸드 모두 업계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가진 원가 구조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 이 부분은 저희의 강력한 장점이라 자부한다"고 자신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공격적 행보로 향후 시장 점유율 구조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봤다. 한 업계 인사는 "시장이 잠재적 수요와 함께 회복세로 돌아섰을 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삼성전자는 경쟁사 대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반도체 불황이 오랜기간 지속되면 삼성이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높은 재고 수준이 예상과 다르게 장기간 지속되면 신제품 생산 및 판매에서 뒤처질 수 있는 등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 8월19일 복권 후 첫 대외 행보로 경기도 용인시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반도체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세트는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디스플레이는 기술격차 키운다세트 부문은 시장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프리미엄 제품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김성구 MX부문 상무는 "스마트폰 시장은 내년에 점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며 플래그십 중심의 성장에 집중할 예정"이라며 "진정한 폴더블 대중화에 이어서 갤럭시 정체성을 강화한 새로운 S시리즈를 선보일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VD는 성수기 프리미엄 수요 선점과 비용 효율화를 통한 수익성 개선에 주력, 생활가전은 연말 성수기를 맞아 비스포크 중심의 프리미엄과 온라인 채널 판매 증대를 통한 매출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TV는 기존의 Neo(네오) QLED 중심의 프리미엄 전략 기조를 유지하되, 선택옵션 확대 차원에서 QD-OLED(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 판매 경쟁력도 적극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올 3분기 견조한 실적을 거둔 디스플레이 부문은 실적 성장세 유지를 위해 갖추고 있는 우위 요소를 강화한다. 최권영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은 "올해 좋은 실적들이 4분기와 내년에도 지속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저희도 우려하고 있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면서 "하이엔드 부문의 경쟁력, 기존의 노하우, 규모의 경제 통한 원가 경쟁력은 여전히 지속가능하기 때문에 경쟁우위를 만들어나가기엔 좋은 환경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QD-OLED 투자도 검토한다. 최 부사장은 "올해 초 런칭한 QD-OLED가 고객사 및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고, 빠르게 수율을 높이며 제품 라인업을 늘려 나가고 있다"면서 "다만 여전히 대형 시장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해 시장 수요를 면밀히 살펴가며 추가 투자 계획을 검토해나갈 생각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