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진료기록은 의사 소유?"… 과제 산적한 의료 마이데이터

9일 서울 종로 센트로폴리스 법무법인 태평양 회의실에서 태평양과 개인정보전문가협회 공동으로 '의료 마이데이터 세미나'가 열렸다. / 사진제공=법무법인 태평양

개인의 병원 진료나 건강검진, 투약이력이나 생활습관 등 개인 의료정보를 한 데 모아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을 도모하겠다는 내용의 의료 마이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현재 준비 수준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9일 법무법인 태평양과 개인정보전문가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의료 마이데이터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현안과 과제' 세미나에서 장영진 보건복지부 마이데이터TF(태스크포스팀) 팀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의원입법 발의 △마이헬스웨어 플랫폼 구축·실증 등 정부 차원의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 추진 현황을 소개했다.


장 팀장은 의료 마이데이터로 인한 정책효과로 △의료행정 간소화를 통한 일상 국민 편의 확대 △본인주도 건강관리 △지역사회 중심 의료·요양·돌봄 연계 등 맞춤형 서비스 △R&D(연구개발) 등 2차활용을 통한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 등을 꼽았다.

마이데이터, 즉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이란 본인의 개인정보를 본인과 제3자에게 전송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개인 데이터의 활용·관리를 정보주체인 개인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금융·공공 분야에서는 마이데이터가 시행되고 있다.

현재는 각각의 병원 등 의료기관들이 개인의 진료내역 등 의료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의료기관간 진료목적 사용 외에 의료기관 바깥으로의 PHR(Personal Health Record, 개인의료정보) 제공은 엄격히 금지된다.


이같은 장벽을 풀어 △정보주체인 개인 동의 하에 △각급 병원 등 의료기관들이 보유한 정보를 국가 주도 '마이 헬스웨이 시스템'에 표준화된 형태로 모으고 △이를 다른 공공기관이나 헬스케어 서비스 업체, 다른 병원 등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의료 마이데이터다.

그러나 의료 마이데이터의 대상이 되는 개인 의료정보가 과연 정보주체인 개인의 의사대로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지적이 먼저 제기될 수 있다. 이날 세미나 토론자로 나온 유소영 서울아산병원 빅데이터연구센터 교수는 의료데이터의 특성상 여타 정보들과 달리 그 전부를 전송요구권의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금융·공공 등 이미 마이데이터가 시행돼 있는 영역에서의 정보와 달리 개인정보 처리주체인 의료기관 등이 해당 정보의 가치에 관여하는 정도가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여타 분야에서의 개인정보와 달리 의료 정보의 소유권은 환자 개인이 아닌 의료기관이 보유하고 있다고 볼 여지도 있는데 이를 환자의 요청으로 다른 곳으로 무조건 보내도록 하는 게 맞냐는, 의료부문으로의 마이데이터 적용에 대한 근본적 사항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진료 등에 대한 의료 관련 정보는 환자(정보주체)의 건강상태에 대한 단순한 사실정보 외에도 전문 의료진의 판단이 가미된 파생적 정보인데 이를 정보주체의 요구에 따라 무조건 다른 의료기관 등으로 보내도록 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또 연구개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심의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친 의료정보만 반출되도록 하고 있는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할지, 의료데이터의 가치는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등이 선행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유 교수는 지적했다.

왼쪽부터 장영진 보건복지부 의료마이데이터TF팀장, 유소영 서울아산병원 교수, 최경진 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 이은솔 메디블록 대표, 이강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사진제공=법무법인 태평양

블록체인 기반 의료데이터 플랫폼 개발사인 메디블록의 이은솔 대표도 "이미 마이데이터를 시행하고 있는 금융사는 국내 수십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의료기관은 작은 의원급 병원에서부터 상급 종합병원에 이르기까지 국내에만 수만개가 있다"며 "이중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춘 곳은 상급 종합병원에 불과하고 수많은 의원급에서는 그러한 인프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대표는 "온라인·모바일 서비스를 많이 하는 금융업과 달리 의료 부문은 대부분 서비스가 오프라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정보통신 인프라에 투자할 유인이 적다"며 "의료 마이데이터 구현에 필요한 정보통신 인프라 비용을 얼마나,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충분한 논의가 없다면 의료계 반발이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등과 같이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의료기관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는 등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강혜 변호사 역시 "금융 마이데이터를 할 때도 신용정보 전송요구권과 관련해 데이터의 표준화 과정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했다"며 "의료데이터는 건강검진 이력, 투약 이력 등 정보가 신용정보에 비해 정형화돼 있지 않고 참여하는 기관별로 기술(記述) 방식도 달라 데이터 표준화 작업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토론 좌장을 맡았던 최경진 개인정보전문가협회 회장 겸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는 "일반적인 개인정보의 이동권에서는 (개인정보처리자가 별도로 생성한) 2차 생성정보는 개인정보처리자의 영업비밀이라는 등 이유로 마이데이터 대상에 포함되기 어렵다"며 "반면 의료분야에서는 의사의 진료기록 등이 매우 중요한 보건복지 관련 사항이다. 개인정보 관점과 의료기록 관점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의료 마이데이터에 얼마나 개입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다"며 "의료데이터 유통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