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쓸 수밖에"…9부능선 넘은 납품단가 연동제, 우려하는 까닭

/사진 = 윤선정 디자인기자

"납품단가 연동제가 시행되면 중국산 제품을 쓰거나,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뾰족한 대안이 없습니다."

15일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하도급 대금을 원자재 가격과 연동시키는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복합 경제위기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시기에 원재료비 부담까지 더해지면 기업의 수익성 압박이 심화될 것이라는 목소리다. 기업의 가격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결국 소비자 편익을 감소시키고 경영 여건을 악화시켜 장기적 관점에서 하도급 사업자의 일감을 줄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내년 1월부터 원재료 가격 변동분의 50% 이상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도록 약정하면 벌점을 경감해 주는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바로 전날 한기정 위원장이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도 연동제 법안을 각각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한 상황이어서 법제화가 사실상 9부능선을 넘은 셈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기업들의 실제 부담이 반영되지 않은 제도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납품단가 연동제로 원도급 사업자의 부담이 증가하면 국내 중소기업(하도급 사업자) 대신 가격이 저렴한 수입재화로 대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시장 위축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가격이 인상되면 하도급 업체의 수익성을 보전하는 대신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수입물가가 지속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부담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일 우려가 있다. 지난 10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56.89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며, 액화천연가스(8배)나 석탄(5.8배)는 2020년 대비 큰 폭으로 가격이 뛰었다. 또 지난해 8월 이후 8차례 기준금리가 인상됐는데,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기업의 이자부담은 24조원 가까이 올랐다.


때문에 단가연동이 실체화되면 위험을 헤지(가격변동위험 제거)하기 위해 수직통합을 실시하거나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과 환율, 금리가 지속 상승해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서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라며 "만일 하도급 사업자가 부담하는 원자재 가격 인상분까지 떠안게 되면 가격 추가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단체도 부작용이 크다는 입장이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최근 정책토론회에서 "납품단가 연동제는 소비자 피해는 물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더 악화할 우려가 있다"라며 "법제화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자율적으로 연동제를 확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단가 연동이 강제되면 (원도급 업체가) 거래조건을 왜곡해 이익을 보전하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영향을 세밀히 분석해 법제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인숙 연세대 교수는 "사적 계약관계인 납품단가 결정을 강제화하는 해외 입법 사례는 찾기 어렵다"라며 "일부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시행 중인 단가 연동제 시범사업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후에 관련 정책을 설계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