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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현, 사진제공=나무엑터스 |
박지현의 '본캐'는 모현민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하는 말간 정서가 묻어있었다. 스스로도 "모현민과는 닮은 지점이 하나도 없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말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됐다. 모든 말에 겸손한 태도로 신중하게 대답했고, 상대와 부드럽게 눈맞춤하며 경청할 줄 알았다. 모현민이 간교가 넘치는 가시 돋힌 말로 상대를 제압한다면, 박지현은 좋은 향기가 나는 꽃 같은 말로 상대방과 교감하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역대 JTBC 드라마 시청률 2위를 기록하며 화제 속에 막을 내린 '재벌집 막내아들'은 시청자들의 뜨겁다 못해 불타는 사랑을 받으며 신드롬급 인기를 양산했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사는 이야기를 그렸다. 박지현은 극중 현성일보 사주 장녀이자 순양가의 장남 진성준의 아내인 모현민으로 열연했다.
"지난해 중순부터 거의 1년 동안 촬영한 작품이었어요. 긴 시간 호흡했죠. 촬영이 딱 끝나는 날 사실 굉장히 후련했어요. 촬영 기간도 길었지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제가 출연배우들 중 가장 막내였어요. 그만큼 준비를 부단하게 했는데 촬영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끝나고 나서 사실 많이 후련했어요. 캐스팅 되신 선배 배우들을 보면서 배우 라인업이 화려해서 '이건 나만 잘하면 된다'는 부담이 있었거든요. 어느 정도 잘 되거라고는 믿음은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사실 시청률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영역이라 이러한 관심과 사랑이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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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현, 사진제공=나무엑터스 |
모현민은 차갑고 이지적임과 동시에 도발적이면서도 당돌한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누구도 자신을 거부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 강하고, 언론사 사주의 장녀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욕망의 발판으로 삼아 원하는 것은 손에 넣는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마냥 보호받기보다 욕망하는 것을 직접 행동해서 얻어냈다. 시청자들은 이런 현민의 주체적인 모습에 열광했고, 이를 연기한 박지현을 주목했다.
"현민이는 야망이 확실하고 저돌적이잖아요. 본인의 욕망을 숨길 줄도 아는 똑똑한 친구예요. 캐릭터 설정 자체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눈빛은 많이 덜어내려고 했어요. 화술적으로 임팩트 있게 강약 조절을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단조롭지 않은 톤을 유지하려고 했고요. 현민이의 진취적인 모습을 보며 되게 용기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리 속으로 어떠한 생각을 품더라도 보통은 실천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당당하게 욕망을 표출하고 얻어내는 현민이의 모습이 부러웠어요. 그런 점을 보며 저 역시 닮고 싶은 점이 많았고, 시청자 분들도 같은 지점에서 이 캐릭터에 통쾌함을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남자 캐릭터 중심으로 흘러갔던 '재벌집 막내아들'은 대사도 중요 장면도 남성 인물들의 지분이 상당했던 작품이다. 허나 드라마가 전개될수록 시청자들이 환호하고 주목한 인물은 박지현이 연기한 모현민이었다. 욕망의 무게를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에 따른 방편을 똑부러지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박지현은 이러한 모현민을 입체적으로 자신과 일체화하며 짦은 순간에도 임팩트 있게 장면을 끌고 갔다.
"현민이의 인생에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의 인생에는 성공과 명예만 있을 뿐이죠. 모든 행동과 선택에 있어 득실을 따지면서 행동하는 친구예요. 진도준에게도 잠깐의 설렘은 느꼈을 수 있지만 거절당한 뒤로 진성준(김남희)과 결혼한 것처럼 결국 결혼은 사랑이 아닌 수단일 뿐이었던 거죠. 악역을 하면 시청자 분들에게 미운털이 박힐 위험도 있지만 극에서 꼭 필요한 장치이자 배우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스토리가 이어지는 거니까요. 제가 만든 갈등들이 시청자 분들에게 자극을 줄수록 제 역할을 잘 해낸 것 같아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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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현, 사진제공=나무엑터스 |
박지현에게 '재벌집 막내아들' 현장은 배움의 터전이기도 했다. 실제 연기 스승이었던 조한철을 비롯해 송중기, 이성민, 김정난, 서재희, 김신록, 김도현, 박혁권, 정희태, 김남희, 허정도 등 오랜 경력을 지닌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를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 박지현은 현장에 머물 때면 카메라 앞에 선 선배들을 연기를 지켜보며 배워갔다.
"대선배님들이랑 촬영하다 보니까 매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촬영 전에 저도 대본에 나온 상황들을 다양한 경우의 수로 생각해서 갔는데 선배님들은 제가 상상하던 것 이상의 것들을 해내시더라고요. '와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 속에 마치 연극을 관람하 듯이 지켜봤어요. 댓글을 보니까 '모현민이 CCTV다'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정말로 선배님들의 연기를 직관했어요. 감탄스러운 연기들을 보면서 촬영장 가는 날만 기다렸어요. 그걸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참 행복했고요."
박지현은 2017년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로 데뷔해 '사자' '앵커',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내 뒤에 테리우스' '친애하는 판사님께' '은주의 방' '신입사관 구해령'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유미의 세포들'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까지 4년 만에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의 폼을 성실하게 넓혀왔다. 결코 쉬운 길을 아니었지만 모현민을 만나 피어낸 존재감처럼 여러 경험은 그에게 단단한 무언가를 품게 만들었다.
"배우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분명하게 행복한 순간도 있었어요. 배우를 시작하고 나서 한 가지 변하지 않았던 건 '포기는 없다'는 마음가짐이었어요. 애초에 연기를 시작했던 것도 돈이나 명예가 아닌 재미를 느껴서였어요. 지금은 재미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부담감이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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