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100만원 벌 때 女 69만원"…26년째 OECD 꼴찌 못 벗어난 韓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30%를 웃도는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크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 없음. /ⓒAFP=뉴스1

# 대기업에서 금융업무를 담당하는 수진씨(25)는 부서 내 유일한 여성 직원이다. 그는 회식 자리에서 남성 동료들로부터 "우리 부서에 살아 남은 유일한 여성인 만큼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한 팀에 여성이 두 명 이상 있으면 꼭 싸움이 나고 팀 분위기를 망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있다. 그는 남녀 직원들에게 색이 다른 수첩을 나눠줄 정도로 기업문화 곳곳에 성차별이 존재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며 고충을 전했다.

# 유명 기업에 다니는 주현씨(45)는 20여명으로 구성된 사내 매니저 모임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그는 사실상 남자들의 사회에 힘겹게 발을 걸치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한국에선 최고경영자(CEO)나 임원 자격을 갖춘 여성 후보자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해요. 여성 관리자가 승진 후 조금만 성과가 나지 않아도 잘못된 인사를 냈다는 말이 나오죠."


한국 직장의 남녀간 임금 격차가 30%를 웃도는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엇보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한 1996년부터 26년 연속 최악의 결과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1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가 31.12%로 컸으며 이는 OECD 가입국 가운데 최하위라고 집중 보도했다. 성별 임금격차는 지난해 남녀 노동자들의 연봉 중간값을 비교한 것이다. 성별에 따라 31.12% 격차가 난다는 건 남성의 임금이 100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여성은 68만8800원만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가입국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 자료 출처=OECD, 그래픽=파이낸셜타임스 캡처

한국 기업의 남녀 임금 격차가 극심한 것은 여성들이 결혼·출산 등으로 경력 단절을 겪거나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FT는 봤다.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은 사례도 소개했다.


수진씨는 "동료 중 한 명이 임신했을 때 상사로부터 다시 회사로 돌아올 것인지, 남편의 수입이 얼마인지에 대해 수차례 질문을 받아야 했다"며 "그동안 취미로 회사 다닌 것 아니냐는 평가에 그 동료가 크게 좌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는 부당한 사례를 지켜보면서 미래에 가정을 꾸리는 것이 내 삶에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삼성과 현대차, LG 등 재계에서 여성 임원들을 잇따라 발탁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터무니 없이 낮다고 FT는 지적했다. 기업정보제공업체 CEO스코어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10월 기준 한국 500대 기업 CEO 중 여성은 11명에 불과하며, 이 중 3명은 오너 일가 출신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선 여성들의 교육 성취도가 높지만 정작 직장에선 여성들이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AFP=뉴스1

최근 한국 상장기업의 포용적 고용관행에 대해 연구한 영국 셰필드대의 피터 마탄레 선임강사는 "한국과 일본의 기업에서 여성 직원들은 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여성들의 교육 성취도가 가장 높지만 핵심 업무 담당자나 관리직을 뽑을 때 여성을 배제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 기업의 이 같은 관행이 재능과 지식의 엄청난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성 직원의 역량이 남성보다 부족하다는 뿌리 깊은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OECD 성별 임금격차 최하위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는 진단도 나왔다. FT는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기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다양성을 중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은 이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점도 강조했다.

골드만삭스 아시아 스튜어드십 책임자인 크리스 빌번은 "기업의 임원과 직원들의 성비는 전 세계 많은 자산가들과 기관 투자자들이 반드시 체크하는 핵심 요소"라며 "영국의 경우 주가지수를 구성하는 FTSE 350개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2010년 12.5%에서 지난해 40%로 늘어나는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FT는 일본의 변화도 소개했다. 최근 일본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0년 전 1.6%에서 9.1%로 증가했다. 음료·식품 회사인 산토리의 경우 오노 마키노를 첫 여성 CEO를 선임한 데 이어 이사회 9명 중 4명을 여성, 2명을 외국인으로 구성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