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없는 장애인은 시설이 집, 사회복지사가 엄마다

뇌성마비 장애인 양형석씨(26)는 올해 설날도 장애인 거주시설 '주몽재활원'의 사회복지사들에게 전화한다. 양씨에게 사회복지사들은 '피 안 섞인 엄마, 아빠들'이다. 양씨가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면 이들은 "항상 연락해 줘 고맙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한다.

양씨는 갓난아기 때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 앞에서 발견됐다. 주변에 부모님 편지가 없었다. 양씨는 부모의 이름도,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도 모른다.


양씨처럼 가족이 없는 장애인을 공식적으로 '무연고 장애인'이라 부른다. 이들은 연령에 따라 다른 시설로 보내진다. 7~8세 미만은 장애인 영유아거주시설, 8세 이상은 장애인 거주시설로 간다.

영유아 시설은 전국에 9곳 있다. 2021년 12월 기준 장애인 357명이 영유아 시설에 산다. 서울의 무연고 영유아 장애인은 강북구의 디딤자리 또는 경기 광주시 한사랑영아원으로 간다.

양씨는 한사랑영아원에 갔다가 만나이 세살 때 주몽재활원으로 옮겨졌다. 양씨는 이곳에서 사회복지사들을 엄마, 아빠라 부르며 살았다.

한 외국 자동차 회사가 2015년 서울 강동구의 장애인 거주시설 '주몽재활원'에서 차량 시승 행사를 할 때 뇌성마비 장애인 양형석씨(당시 18) 모습. 양씨는 갓난아기 때 버려지고 재활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양씨는 재활원에 살 때 "행복했다"고 한다. 학교 운동회, 축제 때 같은 반 친구들은 부모님이 왔다면 양씨는 재활원 원장, 사회복지사가 왔다. 양씨가 아플 때 옆에서 간호한 건 사회복지사였다. 양씨는 어릴 때 사회복지사들을 엄마, 아빠라 부르다가 나이가 들며 호칭을 '선생님'으로 고쳤다. 하지만 지금도 사회복지사들은 양씨에게 부모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사진제공=양형석씨.

양씨는 "부모의 빈 자리를 느끼지 못 했다"고 한다. 양씨는 재활원 근처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 운동회, 축제 때 같은 반 친구들은 부모님이 왔다. 양씨는 부럽지 않았다.

양씨는 재활원 원장, 사회복지사들이 왔다. 운동회날 사회복지사들은 '부모님과 이어달리기' 행사에 양씨와 함께 참여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양씨는 "즐거웠다"고 했다.

학교에서 부모님 얼굴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으면 박씨는 재활원 원장과 사회복지사 얼굴을 그렸다.

나이가 들면서 양씨는 사회복지사들 호칭을 엄마·아빠에서 선생님으로 고쳤다. 양씨는 "호칭은 바꿨지만 아직도 그분들은 내게 부모님과 다름없는 분들"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양형석씨(26)가 회사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양씨는 재활원에서 자립 교육을 받아 20대 중반에 자립했다. 양씨는 지금도 친부모를 찾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양씨는 "재활원에서 부모의 빈자리 없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사진=김성진 기자.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양씨는 자신의 몸 오른쪽 절반을 자유로이 쓰지 못한다. 재활원에는 생활관 근처 별도의 재활치료실이 있었다. 양씨는 매주 1~2번 씩 작업치료, 물리치료를 받았다. 장애 진행 속도를 낮추는 작업이었다.

같은 방을 비슷한 나이대 장애인 5~6명과 함께 썼다. 축구하고, 장난감을 갖고 놀며 일반 가정집 비장애인과 다를 것 없이 놀았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별도로 마련된 면학실에서 공부했고 어느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양씨는 20대 중반에 자립했고 지금은 항만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재활원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자립 전 양씨는 재활원에서 금전 관리, 주민센터에서 어떤 서류를 발급받는지 자립 교육을 받고 자립 선배들의 멘토링도 받았다.

양씨는 "친부모를 찾고 싶지 않다"고 한다. 양씨는 "주변에 부모님을 찾은 친구가 한명 있지만 부럽지 않다"며 "부족함 없이 자랐고 지금도 재활원 원장,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재활치료, 놀이치료 받고...코딩학원도 다녀요

지난해 11워30일 서울 강북구의 장애인 영유아 거주시설 디딤자리 모습. 이곳에 만 0세부터 7~8세 장애인 30여명이 거주한다./사진=김성진 기자.

장애인 영유아 거주시설, 장애인 거주시설은 가족 없는 장애인들의 '집'이다. 지적장애인 최모양(11)은 갓난아기 때 아동보호소에 맡겨지고, 서울 은평구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 옮겨졌다. 최양은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사회복지사 한명과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포켓몬 카드' 선물도 받았다.

시설은 장애인들의 치료와 교육의 거점 역할도 한다. 최양은 매주 1~2차례 인지 능력 등 향상을 위해 놀이치료를 받는다. 시설에는 작업, 물리 치료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시설은 무연고 장애인의 '가족' 역할을 한다. 시설마다 다르지만 거주 장애인들은 시설 종사자를 이모·삼촌 또는 엄마·아빠라 부른다. 지적장애인 박종경씨(32)는 9세 때 언어 장애를 극복할 구강 교정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병실에서 회복할 때 박씨 옆에는 시설 사회복지사가 있었다. 박씨는 사회복지사를 지금도 '엄마'라 부른다.

현재로서 시설도, 시설 종사자도 부족한 상황이다.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비장애인과 보육원(고아원)에 사는 장애인도 많다. 서울아동복지협회 자료를 보면 2021년 4월 기준 서울에만 지적, 뇌병변 장애인 88명이 일반 보육원에 산다.

장애인 영유아 거주시설 디딤자리 관계자는 "일반 보육원에서 장애인들의 입소 원서가 꾸준히 접수되는데 받아줄 자리가 없는 상황"이라며 "장애인 30명을 종사자 33명이 관리하는 현 상황도 벅차서 종사자들이 아픈 사실도 숨기며 출근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의 시설 생활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학대 학대 관리·감독 강화도 필요

박경인씨(30)는 태어난 직후 부모 품을 떠났다. 이후 부산 일반 보육원에서 서울 보육원으로, 장애인 거주시설로, 그룹홈으로 옮겨다녔다. 그 과정에 폭행, 성희롱을 당했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자신 의지에 반해 시설을 옮겨다닌 것이었다고 했다. 그룹홈에서 그룹홈을 옮길 때 박씨는 미리 안내를 받지 못했다. 사회복지사가 '옮기자'하면 옮겨야 했다./사진=김성진 기자.

거주시설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없기 때문에 이 경우 도움을 구할 곳도 없고 학대 사실이 발견되기도 어렵다.

부산에서 태어난 지적장애인 박경인씨(30)도 다른 성인 남성 장애인으로부터 성추행을 경험했다. 사회복지사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박씨는 태어난 직후 부산의 어느 보육원(고아원)에 맡겨졌다. 박씨는 8세에 서울의 한 보육원으로, 2년 뒤에는 노원구의 장애인 거주시설 '동천의집'으로 옮겨졌다가 1년 뒤 경기도의 한 '그룹홈'으로 옮겨졌다. 그룹홈은 일반 가정집에 차려진 보육원을 말한다.

그룹홈에는 방 세개가 있었다. 사회복지사와 성인 남성 장애인 A씨, 그리고 박씨와 다른 여성 장애인 한명이 방 하나씩 차지했다. A씨는 어느날 박씨를 성추행하려 했다. 박씨는 다른 여성 장애인의 도움으로 상황을 벗어났다.

당시 사회복지사도 그룹홈에 있었다. 사회복지사는 박씨에게 "괜찮다"고 얘기했다. 박씨는 해당 그룹홈에서 한달쯤 더 살고 서울의 다른 그룹홈으로 옮겨졌다.

옮겨진 그룹홈에서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는 박씨를 상습 폭행했다. 동네 피아노 학원 교사가 몸에 난 상처를 보기 전까지 박씨는 맞고 살았다. 사회복지사는 해직됐다.

박씨는 성추행당한 직후, 폭행당할 때 부모 생각을 했다. 박씨는 "부모님이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권익옹호기관)에 따르면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학대가 2018년 245건, 2019년 277건, 2020년 176건, 2021년 221건 발생했다.

최신 통계인 2021년을 보면 가해자는 거주시설 사회복지사, 생활교사 등 종사자가 204명(93.2%)로 가장 많았다.

학대는 거주시설 내 장애인들끼리도 벌어진다. 지적장애인 박종경씨는 그룹홈에 함께 사는 성인 남성에게 맞고 살았다. '왜 때린 것이냐' 묻자 박씨는 "나도 모른다"고 했다.

무연고 장애인은 시설에서 학대당했을 때 도움을 구할 곳도 없고 학대 사실이 발견되기도 어렵다.

2021년 5월 인천 강화도의 어느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40대 무연고 장애인 B씨가 학대당하는 일이 있었다. B씨는 시설 종사자에게 수십차례 폭행당했고 복통을 호소해 병원에 이송됐다.

B씨는 위 천공(구멍)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집도한 병원 의사가 학대 의심 신고를 해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해당 시설에서 B씨 외에도 무연고 장애인들이 학대 당한 정황 20여건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들은 면회 오는 가족이 없고 언어, 지적 장애가 있어서 주변에 학대를 호소하지 못했다.

이 사건에 대응한 인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김호일 관장은 "부모님이 있는 장애인은 면회를 하며 학대 정황이 발견될 수 있지만 무연고 장애인은 그렇지 못한다"며 "의사 신고가 없었다면 A씨 학대 사실이 그 뒤로 수년 더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계자는 "무연고 장애인은 학대당해도 장애인 거주시설 외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혼자 참는 일이 많다"며 "지방자치단체가 1년에 두 차례 있는 점검을 늘리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