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넘어져도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유리 밟으면 찢어지는 안전화

머니투데이

강주헌 기자

"컨베이어벨트에 사람이 넘어졌을 때 감지하는 건 없고요. (레버를) 잡아당기면 뒤에 가서 멈추거나 비상 스위치를 누르는 두 가지 중 하나 선택이죠." (서울 구로구 재활용선별장 선별원 A씨)

"비용을 아끼려고 안전관리비를, 그러니까 비품 수량을 줄여버렸어요." (서울 구로구 재활용선별장 운전원 B씨)

"안전화가 밑창이 단단하지가 않아서 유리를 밟았더니 쭉 찢어졌어요." (강원 홍천군 재활용선별장 선별원 C씨)

"13년째 다니고 있는데 설비가 바뀌면 안전매뉴얼도 바꿔야 하는데 그게 없어요."(서울 마포구 생활폐기물 소각장 기계운전원 D씨)

폐기물처리장 노동자 사망사고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산업현장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인 1조로 작업을 하지 않거나 비상정지 스위치를 사용할 수 없는 사례가 상당수라 산재 사고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일 공개한 생활폐기물처리 관련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생활폐기물 처리 컨베이어 작업에서 22.7%는 2인 1조 작업을 수행하지 않았다. 컨베이어 비상정지 스위치 사용도 할 수 없다는 응답도 20%로 조사됐다.

컨베이어에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긴급하게 정지할 수 있도록 비상정지장치가 설치돼있다. 그러나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컨베이어 벨트가 자동으로 멈추지 않고 담당자가 직접 비상 스위치를 누르는 방식인데 이 경우에 긴급하게 발생하는 끼임사고에 대응이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

재활용쓰레기 처리 작업에서는 유리조각이나 금속 파편 등에 베이지 않도록 안전장갑 지급을 지키지 않는 비율이 39.0%, 이물질 제거 시 집게 등 보조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비율이 36.0%로 집계됐다.

지급받고 있는 보호구 또는 물품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활용 선별장 선별원의 18.5%는 덴탈 마스크를 지급받고 있어 산업용 마스크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물처리장 종사자의 33~43%만 미끄럼방지 장화를 지급받고 있었다. 보안경 또는 안면 보호구는 소각장 기계 운전원 67.7%, 기계 정비·시설관리원 72.2%만 지급받고 있었다.

이들은 근골격계 부담작업 비율이 높고 노동강도가 강하지만 업무로 인해 다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도 스스로 치료비를 부담하는 사례도 있었다. 산재보험을 적용받아 치료 61.1%,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고 회사가 전적으로 치료비를 지원해 줌(공상처리) 23.9%, 스스로 치료비를 부담함 13.9%로 집계됐다.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4일 이상 병원(한방 포함) 또는 약국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생활폐기물 처리 종사자는 24.3%, 이들 중 산재신청을 한 비율을 27.7%, 산재신청을 하지 않은 비율은 72.3%이다.

폐기물처리장 노동자 사망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9일 강원 원주시 재활용 폐기물 선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적재함과 덮개 사이에 끼여 숨졌다. 같은해 6월 11일 평택 고덕신도시 내 평택 에코센터 지하 3층 폐기물처리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20대 노동자가 사망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약 5년 간 하수·폐기물 처리 업종에서 발생한 산재사망은 사고사망 94명, 질병사망 52명으로 148명으로 집계됐다.

김태헌 전국환경노조위원장은 "산재 은폐가 상당히 많아 축소된 수치가 이 정도일 뿐"이라며 "3년마다 위탁업체가 바뀌고 안전·보건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반복적 산재 은폐하는 산재 악당 기업에 대한 특별근로감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수·폐기물 처리업의 경우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에서 50인 미만 고위험 5개 업종 중 제일 산재 사고 사망이 많은 업종으로 분류하고 안전가이드북까지 제작 배포했다. 이 가이드북에는 2017년~2021년의 사고사망에 대해서 조사 분석을 했는데 사고사망자는 79명으로 조사됐다. 제일 많은 유형은 떨어짐 22명으로 제일 많았고 산소결핍은 5명으로 집계됐다.

노동자와 근무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폐기물 처리시설의 환경설비 적정 규격을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가 수립한 생활폐기물 자원화를 위한 처리시설 설치 지침에 따르면 해당 설비를 갖출 것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을 뿐 설비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처리시설 점검과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다.

공영화를 통한 고용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고용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생활폐기물 처리 종사자 사업장 운영 형태 대부분은 민간위탁(85.3%)이었다. 고용형태는 계약직이 59.4%이었다. 고용불안을 심각하게 느끼는 비율이 60.7%로 생활폐기물 처리 종사자의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생활폐기물 처리 공정은 민간기업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영역이라 보기 어렵다"며 "종사자 수 기준 38.8%는 지자체 직영 또는 시설관리공단에서 처리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민간위탁이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용 의원은 "가장 확실한 안전대책은 해당 업종에 대한 국가·지자체 직접고용으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