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사태 여진 '일단 멈춤', 한숨 돌린 시장…美 은행 규제 강화?

/AFPBBNews=뉴스1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후폭풍이 조금씩 진정되는 분위기다. 미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번 위기가 금융 시스템 전체로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얻으면서다. 투자심리가 회복하면서 폭락했던 은행주가 반등하는 등 증시도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이에 시장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주 금리 동결보다는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당국은 후속 조치를 준비한다.
예금 전액 보증해줄테니 걱정마라는 정부…시장은 '안도 랠리'미국 뉴욕증시는 14일(현지시간) SVB 사태의 여파를 딛고 반등에 성공했다. 상승세를 주도한 건 지역 은행주들이다. '제2의 SVB' 가능성이 거론되며 전날 주가가 61% 넘게 폭락했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26.98% 상승하며 급락분을 일부 만회했다. 팩웨스트뱅코프와 웨스트얼라이언스는 각각 33.85%, 14.36% 폭등했다. 억만장자 켄 그리핀은 자신의 헤지펀드 시타델을 통해 웨스턴얼라이언스 지분 5.3%를 저가매수하기도 했다. 씨티그룹 등 대형 은행주들도 강세였다.

훈풍은 아시아 증시에도 전해졌다. 전날 올해 들어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던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1.31%, 3.05% 오른 채 거래를 마쳤다. 일본 도쿄증시 닛케이225지수도 강보합 마감했고, 중화권 증시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시장이 빠르게 진정된 건 미 금융당국이 발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은 덕분이라는 평가다. 미 연방정부는 파산한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고객에 대해 예금자 보호 한도(25만달러)를 넘어선 예금을 모두 보증해주기로 했다. 더불어 은행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연준은 미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담보로 제공하는 금융회사에 최대 1년 만기 대출을 해줄 방침이다.

예금 인출과 송금이 가능해지면서 고객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녹취 애플리케이션 오터(Otter)의 창업자 샘 리앙은 미CBS와의 인터뷰에서 "주말 내내 걱정했다. 1시간에 20번씩 인터넷에 접속해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며 "SVB에 수백만달러가 묶여있지만 확실히 안심된다. 이번에는 정부가 정말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VB 관리를 위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설립한 임시은행인 실리콘밸리브리지은행(SVBB)은 고객들에게 예치금을 믿고 맡겨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팀 마요풀로스 SVBB 신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고객 서한을 통해 "SVBB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지원은 예치금 기반 재건을 도와주는 것"이라며 "예치금을 그대로 두고 최근 인출한 예치금은 되돌려놓는 것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은행 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 전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무디스는 "SVB와 실버게이트은행, 시그니처은행에서 벌어진 예금 인출 사태와 이들 은행의 파산에 따른 급격한 경영 환경 악화를 반영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美 당국, 책임 소재 가리고 재발 방지 나선다 미 당국은 사태 수습을 위한 진도를 계속 밟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SVB 사태와 관련해 각각 조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 대상에 임원들의 파산 전 주식 매각도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준은 SVB에 대한 규제·감독에 문제가 없었는지 자체 평가에 착수했다. 마이클 바 연준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이 이 작업을 이끈다. 자체 평가 결과는 오는 5월1일 공개될 예정이다.

연준은 또 대형은행에만 적용하고 있는 엄격한 규칙을 중형은행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연준이 매년 은행의 건전성을 심사하는 연례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와 자본 및 유동성에 대한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자산 규모가 1000억~2500억달러 사이에 있는 중형은행은 이같은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준 등 규제당국은 위기 대응을 위해 은행에 새로운 규제들을 부과했지만, 2018년 의회가 자산이 2500억달러가 넘는 은행에만 이들 규제가 적용되도록 기준을 바꿨다. SVB는 이에 미치지 않는다. WSJ은 연준이 규정 재고에 나서면서 규제가 지난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AFPBBNews=뉴스1

동력 잃은 금리 동결론이번 위기로 인해 연준의 강력한 긴축 기조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예측이 나왔지만, 급한 불이 꺼지며 금리 동결론에 대한 일각의 기대는 힘을 잃고 있다. 연준은 오는 21~22일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진행한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기준금리 예측 프로그램인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연준의 0.25% 확률은 81.2%로, 하루 전(65%)보다 높아졌다. 반면 동결 전망은 35%에서 18.8%로 낮아졌다.

여전히 높은 물가 상승세도 금리동결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미 노동부는 이날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6%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2021년 9월 이후 1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상승 폭을 기록했지만, 연준의 물가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제이슨 브프라이드 글렌메드프라이빗웰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투자자 메모에서 "지난주까지만 해도 물가 안정에만 집중했던 연준은 이제 인플레이션과 금융안정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며 "금리 인상 폭을 둘러싼 의견은 매우 다양하지만 0.25%포인트 인상안이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다"고 짚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개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SJ에 "인플레이션을 목표치에 가깝게 되돌리기 위해 아직 연준이 해야 할 일이 더 남았다"며 "연준이 최근 (SVB 사태로 촉발한) 금융시장 변동성을 억제하는 데 성공한다면 점진적인 금리 인상 속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