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딸인덴 신분증엔 男"…수술없는 성별정정 요구한 사연

지난해 7월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무지개 깃발이 펼쳐지자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1

법원이 성기 제거 수술을 받지 않은 남성의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하도록 허가했다. 일부 인권단체는 성전환 수술을 원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도 존재하는 만큼 이 같은 판결이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항소2-3부(부장판사 우인성)는 지난달 14일 '남성에서 여성으로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며 A씨가 낸 성별 정정 신청 사건 항고심에서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해당 판결은 가족관계등록의 불복신청결정으로 법원 판결 즉시 효력이 발휘된다.


A씨는 남성으로 태어나 17살 때부터 여성 호르몬제를 맞는 등 호르몬 요법을 받아왔다. 사회적으로는 여성으로 생활했으나 남성 성기를 제거하고 여성 성기를 만드는 수술은 받지 않았다. 성전환 수술은 전신마취가 필요한 큰 수술로 부작용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부는 "정신적 요소가 정체성 판단의 근본적 기준이며 생물학적·사회적 요소보다 우위에 두어 판단해야 한다"며 "외부 성기가 어떠한가는 성 정체성 판단을 위한 평가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대리한 장서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A씨는 집에서 딸로, 언니로 불렸고 17살 때부터 8년간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아서 외적으로는 누가 봐도 여자였다"며 "그런데 신분증에는 남성으로 돼 있어 트랜스젠더임이 강제로 드러나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에 따르면 사회의 차별적 시선과 별개로 A씨 가족들은 생물학적 남성인 그를 '여성'으로 인정해주며 '딸'이자 '언니'로 대했다. A씨는 가족의 지지와 공감 속에 청소년 시기부터 여성 호르몬 요법을 받을 수 있었다. 외형이 여성인 탓에 군복무도 면제 받았다.

그런 A씨도 대학 입학 후에 자신을 여성으로 알고 있는 선배와 동기들에게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엠티를 가기 위해 보험을 가입하는 과정에서 제출한 A씨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취직 준비가 길어지면서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트랜스젠더임을 밝혀야 했다. 20대 여성 지원자의 보건증에는 남성 표기가 돼있는 탓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공익인권법재단 측은 법원의 해당 결정을 두고 "이제 더 이상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법적 성별 정정을 위해 원하지 않는 수술을 강요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번 결정이 다른 법원에도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가족관계등록부 성별란에 기록된 출생 당시 성을 정정하려면 대법원의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따라 성장기부터 반대 성에 귀속감을 느꼈는지, 성전환수술을 받아 성기 등 신체 외관이 반대 성으로 바뀌었는지 등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장 변호사는 "해당 지침은 법률도 아니고 내규일 뿐"이라며 "참고사항이라 필수적이지 않기 때문에 서울서부지법처럼 외과적 수술 없이 허가한 사례들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2013년에도 성기 성형 수술을 받지 못한 B씨 등 5명이 신청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B씨는 A씨 사례와 반대로 남성호르몬 요법을 받아 외형상 남성이었고 20년간 함께 산 아내도 있었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탓에 이력서를 요구하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어려웠다.

해외에서도 외과 수술 없는 성별 정정이 확대되는 추세다. 대만의 타이페이 고등 행정법원은 2020년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유럽 인권 재판소와 연방헌법재판소는 "외과 수술을 성별 변경의 조건을 하는 것은 신체의 완결성에 관한 권리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