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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간판 내려요"…'검은 옷' 의사들, 울먹이며 폐과 선언

머니투데이
  • 정심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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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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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 도중 울먹이고 있다. 2023.03.29.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 도중 울먹이고 있다. 2023.03.29.
"오늘 자로 대한민국에 더 이상 소아청소년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더 이상 아이들 건강을 돌봐주지 못하게 돼 한없이 미안하다는 작별 인사를 드리러 나왔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대한의사협회 회관 대회의실에서 이같이 언급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임 회장은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 인사'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전국에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운영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약 90%는 1년 이내 문을 닫거나, 현재의 소아청소년과의원 간판을 내리고 진료과목을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에 따르면 이 의사회가 운영하는 전용 사이트엔 전체 회원이 약 5000명이고, 그중 활동 회원 3500명 가운데 약 90%가 폐업 또는 전과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진료과목을 바꾸고 싶어 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전용 트레이닝센터를 곧 개소해 이곳에서 타 진료과목으로 전공을 바꿀 의사들을 직접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마디로 '전과(전과) 지망생'을 지원하겠다는 전략이다.

임 회장은 "아이들을 진료하지 않고 어른들만 진료해도 병·의원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가 될 때 진료과목을 바꾸도록 지원할 예정"이라며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길어야 1년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사회는 트레이닝센터 오픈을 위해 4월까지 준비 기간을 거쳐 5월부터 장소 섭외, 대관 후 오프라인으로 회원 대상 교육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강사진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출신이지만 폐업 후 진료과목을 바꿔 성공한 의사 가운데 선발한다고도 임 회장은 밝혔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 도중 울먹이고 있다. 2023.03.29.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 도중 울먹이고 있다. 2023.03.29.
현재 소아청소년과의원 대다수에선 수익 보전을 위해 '소아·청소년'이 아닌, '어른'을 대상으로 한 진료 비율을 높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안산에서 27년째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운영해온 정승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현재 우리 의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약 30%가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어른"이라며 "소아 환자와 함께 오는 할머니·할아버지 등 '보호자'를 대상으로 만성질환을 진료하면서 줄어든 수익을 겨우 보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열악해진 주머니 사정은 이날 주요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임 회장은 "지난 10년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수입은 28%나 줄었고, 인턴 의사가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면 의대만 졸업한 의사보다도 수입이 적은 게 현실"이라며 "그런데도 소아청소년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인 데다, 이마저도 동남아 국가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소아청소년과는 의료수가 체계에 따르면 의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다. 게다가 환자가 어린이여서 진찰 외에 추가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어 사실상 진찰료로만 수익을 내고 있다. 이들이 환자 1인당 받는 진료비는 2021년 의원급 의료기관 기준 평균 1만7611원으로, 30년간 1만7000원가량에 머물러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한 2020~2021년에는 78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전국의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은 3247곳이다. 올해 전반기 전공의를 모집한 수련병원 64곳 가운데 소아청소년과를 희망한 전공의는 33명에 불과했다. 소아청소년과의 입지가 좁아진 데에는 ▶저출산 현상 ▶저수가 ▶의료사고·배상에 대한 부담 ▶보호자(부모·조부모 등)에 대한 감정 노동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임 회장은 "우리는 아픈 아이를 낫게 해주는 걸 보람으로 여겨 이를 평생의 업(業)으로 삼고 살아가려고 한 것뿐인데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기재부, 법원, 일부 보호자들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에게 이제는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며 "정부는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정책을 고수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꼬집은 정책 중 하나는 소아 진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이다. 평일 심야(오후 11시까지), 휴일(오후 6시까지)에도 늦은 시간까지 경증 환아를 진료하라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임 회장은 "다른 과 의사, 예를 들면 내과 의사는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 1시, 일요일 휴진인데 소아청소년과는 평일 오후 7시까지, 토요일 오후 4시까지, 일요일도 오전 9시~오후 1시까지 일하는데 이것도 모자라 평일 심야까지, 주말에도 늦게까지 일해야 겨우 먹고 산다면 어떤 인턴이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겠다고 하겠느냐"라고 주장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발언자) 회장과 소속 의사 50여 명이 29일 서울 이촌동의 대한의사협회 회관 대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 인사'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소아청소년과의원 90%가 곧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정심교 기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발언자) 회장과 소속 의사 50여 명이 29일 서울 이촌동의 대한의사협회 회관 대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 인사'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소아청소년과의원 90%가 곧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정심교 기자

민형사상 소송에 휘말리기 쉬운 현 상황에 대해서도 임 회장은 하소연했다. 실제로 최근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아이에게 중이염이 있는지 보기 위해 아이를 힘줘 잡았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민사소송을 당했다. 또 다른 사례에선 아이에게 주사를 놓기 위해 몸을 세게 잡았다가 점상 출혈이 생겼는데, 부모로부터 '합리적인 수준으로 해결하자'며 배상을 요구받은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지난 7년간 회장직을 역임하며 죄수복을 입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을 많이 만나왔다"며 "일부 의료전문 변호사는 환아의 부모가 소송전에 뛰어들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아이 살리려고 이리저리 뛰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에게 법원은 실형을 선고하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을 배상하라고 선고하는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임 회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운영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50여 명이 검은 옷을 입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정승희 전문의는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라고 여기는 순간 소아청소년과를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예컨대 어른은 주사를 맞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주사를 놓으려면 간호인력이 최소 2명은 필요하다는 것. 이마저도 아이가 발버둥 치거나 이를 제지하려 할 때 보호자(부모)의 항의까지 감내해야 한다고도 그는 호소했다. 정 전문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어른을 진료할 때보다 간호인력이 더 많이 필요한 데다 부모의 감정까지 관리해야 해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며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접고, 진료과목을 내과로 돌릴지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폐과 선언에 대해 "국민의 소아 의료 이용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긴급대책반을 구성해 상황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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