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없는 기관사들 "화장실도 못 가"…'275명 참사' 인도 철도 민낯

지난 3일(현지시간) 인도 오디샤 주 동부 발라소레 구에서 발생한 열차 3중 충돌 사고 이후 차량들이 널브러져 있다./ 사진=로이터

최소 27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 열차 충돌은 예견된 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력과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보여주기식' 철도 현대화를 밀어붙인 결과라는 지적이다.

인도 뉴스포털 더퀸트는 5일(현지시간) '안전과 타협한 누더기 철도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철도 시스템 상의 오류들이 모여 이번 세기 최악의 철도 참사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철도직 공무원들의 인력 부족과 열악한 노동 환경 △무분별한 열차 증량 △안전을 등한시한 보여주기식 철도사업 등 총체적 인재라는 비판이다.
극심한 인력난, 기관사들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퀸트에 따르면 인도 철도 현장은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 철도부 현장직 147만5000개 중 31만2000개가 미채용 상태로 남겨져 있다. 특히 기관사들은 연차, 휴게 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한다. 더퀸트는 "기관사들에게 화장실 갈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인도기관사조합이 하루 8시간 근무 준수와 업무환경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무직 사정도 다르지 않다. 더퀸트는 인도 철도관리 기관인 철도부(Indian Railways) 사무직 1만8881개 중 3018개가 공석이라고 전했다.

철도부의 자금 사정이 나쁜 것도 아니다. 2021 회계연도에 인도 철도부는 임금 인상과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502억4000만 루피(한화 약 7958억원)의 순손실을 봤으나 지난 회계연도에는 매출이 약 27.7% 뛴 2조4400억 루피(38조6496억원)를 기록하며 설적 만회에 성공했다. 인력을 보충할 여력이 생겼음에도 충분히 채용하지 않은 것.
열차 쪼개기가 철도 현대화? 열차 간 간격만 좁혀'열차 쪼개기'도 철도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주도로 철도 현대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내년 하원 총선 전까지 고속열차 '반데바라트'로 인도 200개 도시를 연결하는 게 목표다. 이에 따라 오는 8월 중순까지 75개 반데바라트 열차를 현장 투입하는 작업을 실행 중이다. 문제는 16량 열차 1개를 쪼개 8량 열차 2개를 투입하는 식으로 실적 부풀리기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철도부가 지난해 10월 500개 열차의 운행속도를 올리면서 열차 간 간격은 더욱 좁아졌다. 더퀸트는 "철도부는 우편·화물열차 3240개, 여객열차 3000개, 노면전차 5600개를 운영하면서 이에 맞는 제반시설을 갖추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운행 상 사소한 실수가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도 경제매체 머니컨트롤에 따르면 올해 인도 정부는 철도 관련 예산으로 2조4000억 루피를 할당했다. 전년 대비 65.6% 증가된 수치다. 선로와 열차 정비, 전자장비 도입, 신호체계 개선 등 안전 보강을 위한 예산이었으나, 실제로는 역사 리모델링 등 겉치레하는 데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더퀸트는 "이용객 대부분이 저소득층인데 왜 1275개나 되는 역사를 공항, 쇼핑몰처럼 지어야 하느냐" 지적했다.
사상자 1100명, 사고 노선에 열차충돌 회피장치 없어특히 충돌 위험 시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열차충돌회피장치'는 전체 운행 구간 6만8000km 중 2.13%에만 운영되며, 이번 참사가 일어난 발라소레 노선에는 설치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더퀸트는 이 같은 문제는 모디 총리가 철도를 정치선전 도구로 이용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모디 총리는 내년 총선 승리 후 3연임을 목표로 철도 현대화를 앞세워 표심을 얻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편 이번 참사로 최소 275명이 사망하는 등 11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초 사망자는 288명으로 알려졌으나 사망자 명단 파악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현지당국은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신호 오류로 보고 있다. NYT에 따르면 사고 당시 학생, 일용직 근로자 등 입석 승객 수백명이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밀집해 있었다. 이 탓에 인명 피해가 더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