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이 베꼈다"는 中 배터리, 서울에 믿지 못할 R&D기지

/사진=김도현 기자

"한국 등 다른 기업이 우리 기술을 베끼고 있다."

14일(현지 시각) '더 스마트 E 유럽(The Smarter E Europe )'에서 만난 BYD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박스를 고안해낸 게 BYD지만 한국 등 다른 기업이 이와 같은 상품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국내외 주요 기업은 ESS용 배터리박스를 잇따라 선보였다.


더 스마트 E 유럽은 이날부터 16일까지 사흘간 독일 뮌헨 메쎄(Messe)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에너지 전시회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문 전시회 'ESS 유럽(EES)' △유럽 최대 태양광 전시회 '인터솔라(Intersolar)' △충전인프라 전시회 '파워 투 드라이브(Power2Drive)' △스마트그리드 전시회 'EM파워(EM-Power)' △한국의 '인터배터리 유럽' 등이 연계 행사로 동시에 열렸다.

BYD 중국 본사 홍보마케팅 매니저는 ESS 행사장 내 자사 부스를 찾은 한국 기자단에 "BYD가 처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 당시에는 NCM(니켈·코발트·망간) 삼원계 배터리 생산에 나섰다"면서 "이후 개발 과정에서 LFP배터리가 기술 수준이 높고 안전하다고 판단돼 주력 제품을 전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ESS용 배터리박스도 BYD가 원조"라면서 "우리가 내놓은 뒤 한국을 포함한 다른 기업들이 같은 제품을 내놓고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 소식을 접한 국내 배터리업계는 황당하단 반응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LFP는 삼원계보다 오래된 기술"이라면서 "중국이 LFP에 주력하게 된 것은 한국의 삼원계 기술 추격에 실패한 뒤 고육지책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이어 "리튬이온 배터리의 아버지라는 평가와 함께 2019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존 굿이너프 텍사스대 교수가 LFP 배터리 설계의 근간도 만들어 냈다"면서 "중국이 삼원계를 포기하던 시점에 LFP 특허가 만료되면서 대거 이쪽으로 유입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박스에 대해서는 더욱 이해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배터리박스는 배터리 셀·모듈 등을 박스 형태의 케이스에 담은 제품이다. 전력망에 연결하면 곧바로 ESS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BYD와 같은 대기업이 특허를 내지 않았을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ESS 관련 제품 중 하나고 널리 통용되는 제품일 뿐 특정 기업이 우선권을 주장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또 다른 중국 배터리기업 에스볼트(SVOLT·펑차오에너지)는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에스볼트는 행사장 한켠에 자사의 글로벌 R&D센터 리스트를 지도와 함께 전시했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중국·독일·태국에 이어 서울도 명단에 있었다. 하단에는 첨단소재·장비 연구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부스에서 만난 에스볼트 관계자는 해당 전시물의 내용이 사실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 R&D센터가 아직 설립되지는 않았지만, 서울에 준비 중인 게 맞다"고 대답했다.

업계는 앞서 한국에 지사를 낸 CATL·BYD가 설립한 지사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CATL은 현대자동차그룹에 배터리를 납품한다. 지속해서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 지사 설립이 불가피하다. BYD는 배터리보다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다. 국내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해 박차를 가한다.

한 관계자는 "중국기업이 굳이 한국에, 그것도 소재·장비 관련 R&D센터를 지을 이유가 없다"고 의아해했다. 이어 "에스볼트는 CATL로부터 핵심 인력과 기술을 훔쳤다는 이유로 고소된 바 있다"면서 "신설된다는 연구시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유능한 인재를 빼가기 위하거나, 이를 통한 기술 유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에스볼트의 차세대 전고체 양극재 개발을 주도하는 담당자가 한국인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담당자는 국내 주요 배터리기업에서 재직하다 수년 전 에스볼트의 제안을 수락하고 자리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에스볼트 부스에 마련된 글로벌 R&D센터 위치도.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항목 최하단에 서울이 표시돼 있다. /사진=김도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