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품은' 사우디, 이제 제약 사업에도 투자한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16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엘리제궁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소짓고 있다. /AFPBBNews=뉴스1

전기차부터 증강현실(AR), 골프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사우디국부펀드(PIF)가 이번엔 제약 투자에 나선다.

블룸버그 보도 등에 따르면 PIF는 18일(현지시간) 제약 산업에 투자할 제약사, 바이오테크 기업을 모집할 목적으로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투자회사 이름은 '라이퍼라'(Lifera)로, 인슐린, 백신,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의약품 개발 촉진을 목적으로 한다. 야지드 알 후메이드 PIF 부총재는 "전 세계 환자들이 보다 쉽게 의약품을 얻을 수 있도록 의약품 공급망을 안정화할 것"이라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PIF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 아래 다양한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LIV골프와 미국 프로골프(PGA) 합병을 선언한 것이 대표적. 9·11 테러 이후 아직 가시지 않은 반사우디 정서와 'PGA 의리파' 프로선수들의 반발에도 LIV골프 출범 1년 만에 합병 선언까지 끌어낸 것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빈 살만 왕세자의 엄청난 승리"라고 평했다. 다만 WSJ(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 법무부가 독과점 여부를 심사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라 실제 합병 성사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PIF는 2018년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 그룹에 38억 달러를, 미국 AR 스타트업 매직리프에 4억 달러를 투자했다. 2021년에는 아마존 대항마를 자처하며 등장한 중동 전자상거래 업체 눈닷컴(Noon.com)에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총 2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같은 해 PIF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소속 구단 뉴캐슬을 4억1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WSJ에 따르면 루시드 그룹 투자로 PIF는 올해 초 기준 3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남겼을 뿐 아니라, 루시드 공장을 사우디에 유치해 일자리 창출 등 경제효과까지 봤다. 물론 수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눈닷컴 투자에서 PIF는 올해 초 기준 5억2000만 달러 손해를 입었다. 매직리프 투자성적표도 초라했다. PIF 투자 당시 60억 달러에 달했던 매직리프 기업가치가 2021년 기준 20억 달러까지 쪼그라들었기 때문.


WSJ는 빈살만 왕세자가 공격적인 투자 성향 때문에 PIF 전문 자문단과 종종 충돌한다고 전했다. WSJ는 "PIF는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 같다는 게 컨설턴트들의 설명"이라며 "빈살만 왕세자가 PIF 운용에 대해 주변의 조언을 듣긴 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본인이 행사한다"고 전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출범시킨 비전펀드 투자 때도 자문단과 대립각을 세웠다고 한다. 빈살만 왕세자는 손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2017년 비전펀드 1호 출범 당시 PIF 자금 450억 달러를 투자했다. 2년 뒤 손 회장이 내놓은 비전펀드 2호에 빈살만 왕세자가 관심을 보이자 자문단에서 이득볼 것이 없다며 투자를 적극 만류했다고 한다. 결국 빈살만 왕세자는 뜻을 굽히고 비전펀드 2호에 참여하지 않았다.

빈살만 왕세자의 '고집'이 자문단을 꺾은 적도 있었다. 2021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사위인 자레드 쿠슈너가 연줄이 있던 빈살만 왕세자를 통해 PIF 투자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 당시 쿠슈너는 PIF 자금으로 이스라엘에서 기술개발 사업을 하겠다며 수십억 달러 투자를 요청했다. 이에 빈살만 왕세자는 자문단 반대를 무릅쓰고 쿠슈너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다만 "빈살만 왕세자의 명령으로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PIF의 공식 입장이다. PIF는 "모든 투자는 시장에 공개한 전략에 따라 실행되고 있다"며 "투자위원회와 경영위원회의 사후심의까지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사우디는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추세에 맞춰 석유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