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3가지 '의지', 블링컨 4가지 "NO"…미·중 '디리스킹' 첫발

[베이징=AP/뉴시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하고 있다. 2023.06.19.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만남이 성사됐다. 시 주석이 미국에 도전할 생각이 없다며 상호 존중을 강조하자, 블링컨 장관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스르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북한 등 미·중 관계 쟁점 국가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갈등을 이어오던 두 나라가 고위급 대화의 문을 열고 '디리스킹'(위험 줄이기) 실천의 중요한 첫발을 뗐다.

19일(현지시간) 중국 관영 CCTV 및 AFP통신, BBC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틀째 중국을 방문 중인 블링컨 장관과 만나 "국가 간의 교류는 상호 존중하고 성의로 대해야 한다"며 "중·미 관계 안정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 것은 2018년 6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 후 5년 만이다.


시 주석은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을 향해 "미국 역시 중국을 존중하고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쪽도 자기 의지대로 상대를 만들어가려 해서는 안 되며 상대방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후 성명으로 "시 주석은 양국 간의 공통 이익을 중시해야 하고 각자의 성공은 서로에게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시 주석은 "현재 국제사회는 일반적으로 중미 관계의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양국이 충돌하고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고 중미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을 꺼리며 중미의 평화 공존과 우호 협력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블링컨 장관도 "(미국은)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고, 중국의 제도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다"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고,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고위급 교류·원활한 소통을 기대한다"며 "이견을 책임감 있게 관리·통제하고 대화와 교류·협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그는 또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보낸 인사말을 전하며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양국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양자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이 미국과 중국, 나아가 세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베이징=AP/뉴시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3.06.19.

18~19일 중국을 방문한 블링컨 장관은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중국 외교 수장인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시진핑 주석을 차례로 만났다. 이틀 새 중국 최고 지도자를 포함해 외교 핵심 책임자들과 회동한 것 자체로도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중은 이번 만남에서 고위급 교류를 유지하는 데 합의했다. 시기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친강 외교부장이 블링컨 장관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특정 현안이 발생했을 때 미·중 간 공동 작업 그룹 협의를 계속 추진하는 데에도 합의했다.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위험 제거)'으로 강대국 간 갈등 관리 또는 국면 전환 의지를 두 나라가 확인한 대목이다. 블링컨 장관은 시 주석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지도부와 "양국 관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미·중 관계 개선이 실감 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진전이) 이뤄졌다"며 "우린 옳은 길을 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블링컨 장관에 대해서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가시적 결과를 내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도 높아졌다. 외신들은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을 초청하는 형식을 그리고 있다.

한편 블링컨 장관은 중국 지도부와 만남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등에서 중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논의했다고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선 중국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고 위험한 행동을 중단하게 할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으며, 중국 측은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대만 문제를 놓고는 역시 중국 측과 이견을 드러냈다. 블링컨 장관은 왕이 정치국원을 만났을 때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도발적 행동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 외교 수장인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은 블링컨 장관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대만 독립'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블링컨 장관은 "기후 변화와 세계 거시 경제 안정, 식량 안보, 공중 보건 및 마약 퇴치와 같은 초국가적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것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