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투자 말라" 압박하는 미국…K반도체 "당장은 괜찮지만"

컴퓨터 회로판의 반도체칩./로이터=뉴스1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아웃바운드(역외) 투자 금지·제한조치를 내리면서 반도체 등 국내 첨단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투자 금지 산업분야가 반도체·AI(인공지능)·양자 컴퓨터 등 최첨단 기술로 제한적이라 단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이 투자 금지 동참을 요구하거나, 중국이 반격에 나서면서 광물 수출품목을 확대되는 등 대립 상황이 장기화 될 경우 공급망에 차질이 불가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옥죄는 미국,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자금줄까지 차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중국에 대한 투자 금지·제한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에는 AI, 양자 컴퓨터, 반도체 등 3개 분야의 중국 기업에 대한 사모펀드와 벤처 캐피탈 등 미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의 해외투자 제한제도는 앞으로 이뤄질 투자에 적용되며, 적용 범위는 미국인 또는 미국 법인으로 한정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중국을 우려 국가로 지정했다.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과 마카오도 우려국가로 포함됐다.


행정명령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첨단 군사·정보·감시 및 사이버 지원 역량 개발을 가속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도체 및 마이크로 전자제품 △양자 정보 기술 △특정 AI 시스템 등 3가지 분야를 국가안보 기술 및 제품으로 선정했다. 해당 분야에서 중국에 특정 투자를 진행하려는 기업들은 사전에 투자 계획 등을 신고해야 하며, 미 재무장관이 특정 투자에 대한 금지 등을 결정하도록 했다.

대중국 투자 방식과 관련해선 인수합병이나 사모펀드, 벤처 캐피탈 및 기타 약정 등을 통한 관련 중국 기업의 지분인수, 미국 기업이 중국에 생산시설이나 법인을 직접 설립해 투자하는 그린필드 투자, 합작 투자, 지분으로 전환되는 채권금융 거래 등을 제한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극한 폭염 대응 관련한 연설을 하고 있다./ⓒ AFP=뉴스1 ⓒ News1

미국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반도체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규제한데 이어 이번엔 투자까지 제한하고 나섰다. 미국 상무부는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와 18nm 이하 D램 등 반도체 장비를 중국 기업에 수출할 경우 허락을 받도록 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점차 압박수위가 높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미·중 양국의 관계가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으로 완화돼 이번 제재 수위도 낮아졌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미국에선 올해 6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지난달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중국을 찾았다. 또 중국 재제에 대한 미국 내부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지난달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수출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놨다.

바이든 행정부는 업계의 의견을 청취해 세부 시행규칙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미 재무부는 ANPRM이 연방 관보에 게재된 후 45일간 규칙 초안 마련을 위한 의견수렴을 받겠다고 밝혔다. 이 규칙은 내년 중 시행 될 예정이다.
"단기적으로 영향없지만…" K반도체, 장기화 되면 피해불가피한국 반도체 업계는 단기적으론 미국의 중국 투자 금지·제한조치가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행정명령 효력이 미국 현지에 국한될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주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 계획도 마련해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자본·시설 투자를 한다고 하더라도 행정명령 대상인 첨단 산업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투자 제재가 장기화 됐을 경우다. 먼저 미국이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칩4 국가에 중국에 대한 투자 제재에 동참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 국회에선 관련 요구를 해야한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별위원장은 이달 초 바이든 대통령에게 "동맹국이나 파트너 국가들과 사전에 협의해 제재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국기 자료사진./사진=장자커우(중국)=AP/뉴시스

또 자금줄이 막힌 중국이 광물수출 규제를 확대하거나 다른 제재 조치를 내놓을 수도 있다. 중국은 전력 반도체 주요 광물인 갈륨과 발광다이오드(LED)에 쓰이는 게르마늄 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리우펑유 미국 주재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미국이 습관적으로 기술과 무역 문제를 정치화하고, 국가 안보라는 이름의 도구와 무기로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올해 10월 반도체 장비수출 규제 기준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은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하면서 28nm(나노미터) 이상의 레거시(구형) 공정에 대해서만 수출을 제한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규제를 늘려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한국 반도체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외교부는 이번 행정명령 발표에 대해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분석 내용에 따라 필요할 경우 우리 정부 및 업계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