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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암살하라" 강릉 침투한 北잠수함…'실종' 무장공비는 어디에[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 전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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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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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은 1996년 9월 좌초된 북한 잠수함을 조사하는 한국해군 잠수함 승조원들과 내부 수색을 위해 투입된 UDT/SEAL 대원들.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은 1996년 9월 좌초된 북한 잠수함을 조사하는 한국해군 잠수함 승조원들과 내부 수색을 위해 투입된 UDT/SEAL 대원들. /사진=위키피디아
1996년 9월18일 새벽 1시. 한적한 시골 파출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30대 택시기사. 그는 가까운 해안가에 300t급(상어급) 잠수함 한 척이 좌초돼 있으며, 도로에서 거수자 여러 명을 봤다고 전했다.

이 전화 한 통에 전 군이 발칵 뒤집혔다. 두 시간 만에 경비 태세를 최고 수준인 진돗개 하나로 격상하고, 상륙한 무장공비 15명에 대한 소탕을 시작했다. '진돗개 하나'는 실제 도발이 발생했을 경우 발령되는 가장 강력한 경계조치로 군과 경찰, 예비군은 다른 임무가 제한되고 즉각 지정된 지역에 출동해 수색 및 전투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南 18명·北 24명 사망…오인사격으로 민간인까지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 북한 상어급 잠수함 내부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 북한 상어급 잠수함 내부 모습. /사진=뉴시스

좌초한 잠수함은 북한 첩보·정보기관인 정찰총국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목적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 정찰조원, 안내조원, 승조원 등 모두 26명이 내려왔지만 좌초에 대한 책임으로 승조원 11명이 처형되면서 15명만 육로로 침투했다.

우리 군은 빠르게 공비를 소탕해 나갔다. 보름 만에 공비 11명을 사살했고 1명은 생포, 1명은 실종됐다. 그리고 그해 11월5일 끝까지 살아 있던 정찰조원 2명이 사살되면서 49일 만에 대간첩 작전은 종료됐다.

우리 측 피해도 상당했다. 군인 10명과 예비군 1명이 전사했다. 민간인도 4명 숨졌다. 3명은 공비의 총에 맞아 숨졌고, 나머지 1명은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변을 당했다.

부상자는 민간인을 포함해 23명이다.

마지막에 사살된 공비는 우리 측 군복을 입고 있었다. 탈영병으로 처리된 표종욱 일병의 군복이었다.

군은 표 일병이 사라지자 "평소 여자관계가 안 좋았다"며 탈영으로 처리했는데, 알고 보니 표 일병은 공비에게 고문을 당하다 살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군의 수사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생포된 공비 "자수해서 같이 살자" 투항 권고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파손된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파손된 모습. /사진=뉴시스

생포된 이광수씨는 침투 첫날 농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거짓 진술로 군경의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시간을 벌어 동료의 귀환을 돕겠다는 취지였다. 다만 곧 마음을 돌리고 우리 군에 협조해 대간첩 작전을 도왔다.

침투의 목적과 공비 규모 등을 알려줬으며, 작전이 장기화하자 동료에게 "자수해서 같이 살자"고 투항을 권고했다.

이씨는 모든 작전이 종료되자 "북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남한에 귀순하기로 했다. 이후 해군에 특채돼 정훈 교관으로 활동했다.



실종된 공비, 어디로



북한 당국이 2017년 관영매체를 통해 밝힌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사망자 명단에 '김영일'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 당국이 2017년 관영매체를 통해 밝힌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사망자 명단에 '김영일'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실종된 상위 김영일의 행방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이광수씨는 "잠수함에 김영일이라는 30세 상위가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다른 공비 25명과 달리 김영일의 유류품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도주한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이에 군은 김영일이 우리 영토에 상륙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수색 작전을 종료했다.

김영일의 행적이 확인된 건 작전이 종료되고 한참이 지난 2017년이다. 북한 당국이 그해 관영매체를 통해 밝힌 사망자 명단에 '김영일'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김영일이 좌초된 잠수함에 승선한 것은 맞지만, 도주하다 어딘가에서 아사 또는 사고사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北 "백배, 천배 복수하겠다"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파손된 북한 상어급 잠수함의 후미에서 앞쪽을 바라본 모습. /사진=뉴시스
사진은 1996년 9월 강릉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잠수함 후미가 암초에 부딪혀 파손된 북한 상어급 잠수함의 후미에서 앞쪽을 바라본 모습. /사진=뉴시스

북한 당국은 당초 이 사건에 대해 "훈련 도중 기관 고장을 일으킨 잠수함이 표류하다 좌초한 것"이라고 발뺌했다.

우리 정부가 북측의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자, 북측은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백배, 천배 복수하겠다"며 되려 역정을 냈다.

남북은 극한으로 대립했고, 결국 미국 정부가 개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 측은 한국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누그러뜨리는 한편, 북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도 밝힐 것을 종용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그해 12월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을 통해 영어와 한국어로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남측 역시 공비 주검 24구를 북으로 보내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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