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끼얹자 말라죽는 홍콩…韓에 던지는 메시지는 [특파원 칼럼]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홍콩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청년을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금융산업은 자유를 먹고 자란다고들 한다. 중국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금융기업 관계자들이 요즘 홍콩을 보며 특히 많이 하는 말이다. 자유가 사라지니 돈이 함께 사라지고 있다. 최근 두드러지는 항셍지수 하락이나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IPO(기업공개) 건수 등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게 바로 홍콩의 몰락이다.

중국 정부의 대홍콩 정책은 '말려죽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기로 가며 통제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시진핑 행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게 미국식 자유주의 확산이다. 찬바람 씽씽 불기 시작한 11월에, 믿기 어렵지만 베이징 시내엔 단 하나의 크리스마스트리도 없다. 그런 점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홍콩은 중국 정부 입장에선 반공산당 여론의 진앙지이자 끊어버려야 할 폭탄의 뇌관이다.

홍콩을 조이고 하이난도(해남도)와 상하이를 풀어주면 IB들이 넙죽 그리로 옮겨갈 거란 게 중국의 생각이었는데, 말 그대로 착각이고 오산이다. 언제든 다시 목줄을 조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중국에 남아있을 IB(글로벌투자은행)는 없다. 이달 초 홍콩에선 전문직의 50% 이상이 5년 내, 15%는 조만간 떠날 예정이라는 로버트월터스사 조사 결과가 화제가 됐다. 그냥 전부 짐을 싸고 있다는 얘기다.

홍콩의 상황은 자유가 사라진 땅엔 IB가 매력을 느낄 어떤 여지도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우리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중국 특유의 거래문화가 더해진다. 최근 현지서 만난 한 IB 관계자는 "중국 어느 대기업과 부동산 딜을 추진했는데, 입지나 유동인구같은 정보가 아니라 오로지 본인 꽌시(關係·인맥)로 얼마나 많은 입주자를 끌어올 수 있는지를 성공의 근거로 제시하더라"고 했다.

꽌시가 기능하는 구조는 단순하다. 형님이 건물을 사면 아우가 자기 회사를 우르르 입점시키는 식이다. 건물을 사는 기업은 "이미 100% 입주가 예정됐으니 돈을 투자하라"고 IB를 압박한다. IB 입장에선 시장논리로 결정되지 않은 입주가 종속한다고 확신하기 어려우니 미칠 노릇이다. 그런데 저런식으로 투자했다가 형과 아우가 같이 망하면? 괜찮다. 저들은 이미 같은 식으로 여러 곳에 투자했다. 이 관계자는 "두세 개 망해도 나머지에서 수익이 나면 자기들은 괜찮단 식이더라"고 했다.

강력한 통제와 독특한 계약문화에도 자본이 남아있으려면 그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해야 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닌가. 그런데 중국 경제는 전체적으로 하강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풀어도 시원찮을 금융 규제는 더 강화한다. 3기를 맞아 권력 누수를 가장 두려워할 시진핑행정부는 최근 금융권에 대한 사정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홍콩을 빠져나간 IB는 일단 가까운 싱가포르에 자리잡는 모양새다. 하지만 글로벌IB들은 싱가포르가 홍콩 같은 금융허브로 지속 발전할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본다. 중국 못잖게 경색된 정치구조가 우선 약점이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좁다. IB가 첨단 IT화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일상을 누릴 최소한의 인프라는 필요하다. 또 금융허브 형성엔 관광과 문화콘텐츠가 필수불가결한데, 싱가포르는 이런 경쟁력이 거의 없다.

한국은 어떨까. 사회 자유도가 높고 콘텐츠 경쟁력이 우수하다. 이미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세웠던 계획도 남아있다. 그럼에도 한국이 글로벌 금융허브 후보지에서 매번 '조기 탈락'한 건 분단리스크와 관치금융 악평 탓이었다. 그런데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시각이 달라진다. 남중국해보다 한반도가 더 불안하다고 하긴 어려워졌고, 관치금융과 규제도 특구 등 제도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다.

중국 본토와 홍콩, 싱가포르에서 복작이며 벌어지고 있는 'IB 엑소더스'는 그래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이밍은 '중국 나비효과'를 타고 찾아왔다. 의지를 갖고 검토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