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 트라우마' 중국, 다이어트약 인기에 '요요' 경고

중국 내 한 제약사가 생산한 GLP-1 제품. /사진=바이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당뇨약이자 다이어트 보조제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이 중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내 특허 만료가 임박하면서 유사 약물 경쟁이 심화, 남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관련주 시가 총액이 두 배까지 치솟는 등 증시도 과열 양상이다. 약물 문제에 민감한 중국 정부가 상황을 두고 보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6일 중국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 GLP-1이 다이어트 약품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판매량이나 공급량이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한 달 1000위안(약 18만원) 미만의 치료비로 수 차례 시술, 확실한 다이어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국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비싼 약이지만 시술 1회당 800위안(약 16만원)인 미국보다는 훨씬 싼 가격이다.


같은 날 중국 온라인플랫폼 바이두에는 GLP-1의 효능에 대해 의사들이 직접 언급한 포스팅은 물론 중국 내 제약사들이 GLP-1 관련 대규모 수출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연이어 게시되고 있다.

알려진 대로 GLP-1은 당뇨 치료제로 개발됐다.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늘려 혈당을 낮춰주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위의 배출 운동은 물론 대장의 운동성도 감소시켜 포만감을 오래 지속시키는 효과가 발견됐다. 배가 고프지 않게 만들어 식욕을 억제해준다는 거다.

GLP-1은 그러면서 신장손상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글로벌보건의약연구개발센터(GHDDI) 소장 딩셩 칭화대 약학대 교수는 "약물 연구개발사에 보기 드문 일이며 일종의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고 했다.


중국 언론은 상대적으로 고가인 데다 처방이 필요한 약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 자체가 중국인들의 비만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본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중국인 비만에 관한 전문가 합의' 내용을 인용해 1990년대 이후 중국 성인의 과체중·비만 비율은 매년 평균 1%포인트씩 증가했는데, 2030년엔 65.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검약과 차, 그리고 자전거로 요약되는 중국인들의 생활습관은 오래도록 비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최근 서구적 식습관이 확산하고 사회전반의 풍요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중국인들의 체중 감량이 건강과 복지의 핵심 사안이 됐다. GLP-1 인기는 이런 변화한 중국 내 흐름의 한 단면이다.

전세계 상황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에서도 공급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증시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체중감량 관련주들이 상승랠리다. 현지언론 집계 10월 말 기준 중국 증시 내 체중감량제 분야 시가총액은 약 9500억위안(약 171조원)으로 전년 동기 4900억위안의 두 배가 됐다. 일부 증권사 연구진들은 GLP-1 관련 시총규모만 1조위안(180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바람을 넣는다.

[베이징=AP/뉴시스]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교차로를 건너고 있다. 2023.05.16.

문제는 GLP-1을 바라보는 중국 정부의 시각이다. 중국은 시장 흐름을 두고 보다가도 언제든 과열됐다 싶으면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브레이크를 건다. 중국 언론이 GLP-1 상황에 관심을 보이는 건 그래서 일종의 시그널이다.

특히 GLP-1 중 가장 감량 효과가 좋은 세마글루타이드 관련 특허가 2026년 만료된다. 이미 중국 제약사들이 제품 모방에 나섰고 3~5년 복제약이 집중 출시돼 가격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금은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과체중·비만으로 판정돼야 두 가지(리라글루타이드·베나글루타이드) GLP-1를 처방받을 수 있다. 복제약이 시장에 풀리면 음성 시장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아편전쟁 트라우마로 마약은 물론 일반 약물의 오남용이나 과잉유통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성향을 감안할 때 GLP-1 상황도 마냥 두고 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 과체중 처방을 받지 못한 정상체중임에도 GLP-1을 사용하다 적발되는 사례들이 보고된다. 중국 전문가들은 BMI 기준치 미만인 사람이 감량 목적으로 GLP-1을 사용할 경우 신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언론도 GLP-1이 기적의 약이 아니라고 비판 수위를 높인다. 북경대 인민병원 지리농(Ji Linong) 내분비학과장은 현지언론 인터뷰를 통해 "GLP-1은 지방과 근육을 동시에 감소시킬 것"이라며 "다이어트 효과도 점차 감소하다가 몇 개월 내에 사라지는데 이때 좋은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약물 복용 이전보다 더 뚱뚱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현지 언론은 중국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국의 관가-언론 역학구조상 이는 이미 중국 정부 내에 GLP-1에 대한 우려 분위기가 있으며, 언론을 통해 여론을 환기하고 있다는 의미다. 차이신은 "마법의 약으로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희망을 걸기보다는 중국 사회에서 건상한 삶을 유지하는 게 왜 더 어려운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