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촉발한 '총수 판단기준' 논란…"예외사유 악용 우려도"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동일인 판단기준에 관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설명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2023.12.27.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지정하는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에게는 다양한 책임과 의무가 부여된다. 그런데도 정작 총수 판단기준이 법으로 규정되지 않아 적잖은 혼란이 있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총수 지정을 피해 일었던 역차별 논란이 대표적이다.

공정위가 이번에 총수 판단기준을 정해 외국인도 총수로 지정할 수 있음을 명확히하면서 혼란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사유를 두면서 일부 기업의 규제 회피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책임 많은 '총수'...판단 기준은 없었다공정위는 매년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그룹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각 집단의 총수를 함께 지정한다.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인 '기업집단(대기업집단을 포함한 개념)'의 범위는 총수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공정거래법이 기업집단의 정의를 '총수가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총수 본인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각 그룹이 매년 공정위에 제출하는 '대기업집단 지정자료'에 의도적인 거짓·누락이 있는 경우 공정위는 총수를 고발할 수 있다. 검찰 기소 시 총수는 2년 이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총수가 자연인일 경우에만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에서도 총수를 누구로 지정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정작 총수 판단 기준을 명시적으로 설명한 규정은 없었다. 공정위는 그동안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기업집단의 정의를 활용해 총수를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판단해 왔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적잖은 혼란을 빚었다. 2019년 한진그룹이 조양호 선대회장 별세 후 차기 경영권자를 제때 정하지 못하자 공정위가 전체 대기업집단 및 총수 지정 자체를 뒤로 미룬 것이 대표 사례다.

"외국인도 총수 지정? 공정위도 '혼란'2021년 총수 판단기준 미비에 따른 문제가 다시 부상했다. 쿠팡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충족하면서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미국 국적'이 문제가 됐다. 총수 판단 기준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 '외국인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느냐'를 두고 공정위 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종전까진 대기업집단 총수가 예외 없이 '한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공정위는 김범석 창업자를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로 인정하면서도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공정위는 대안 마련에 착수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규제를 피해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또한 다른 대기업집단에서도 외국 국적의 총수 2·3세가 적지 않은 점에 비춰볼 때 향후 쿠팡과 비슷한 문제가 얼마든지 불거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지만 '통상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미국과 통상 마찰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시행령 개정 작업이 연기됐다. 총수 판단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쿠팡은 3년 연속(2021~2023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혼란 줄어들 듯…악용 우려도
공정위가 국적 차별없이 총수 지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총수 판단기준을 명문화하면서 그동안의 혼란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가 제기했던 통상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협의가 잘 됐다"고 밝혔다.

다만 공정위가 법인을 총수로 판단할 수 있는 '예외사유'를 설정하면서 일부 기업의 규제 회피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예외사유로 △총수를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기업집단 범위가 동일해야 하고 △총수의 친족 등과 계열사 간 출자, 자금 거래 관계가 없어야 한다는 점 등을 명시했다.

한 위원장은 규제 회피 우려와 관련해 "총수를 자연인으로 하든 법인으로 하든 기업집단 범위에 차이가 없고 사익편취 규제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예외사유를 둬도) 대기업집단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의 효과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