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0개 만들 때, HD현대는 4개 납품…'기술-신뢰' 모두 잡았다

HD현대의 ITER 사업 일지/그래픽=김다나

HD현대가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술력은 물론이고, 약속을 지키는 뚝심까지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HD현대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진공용기의 본체를 구성하는 네 번째 섹터를 연내에 납품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ITER는 핵융합에너지 대량생산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한 작업으로, '인공태양'으로도 부른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일본, 러시아, 미국, 중국, 인도 7개국이 참여한 프로젝트다. 프랑스 카다라쉬에 건설이 이뤄지고 있다.


ITER 프로젝트에는 9개의 진공용기 섹터가 필요하다. HD현대는 2010년 최초 두 개의 섹터 제작을 맡았다. 이후 2016년에는 섹터 두 개를 추가 수주했다. 절반 가량의 섹터를 HD현대가 책임진 셈이다. 나머지 5개의 섹터는 유럽 기업들이 나눠 수주했다.

HD현대는 지난 2020년 첫 번째 제품의 제작을 완료한 이후 2022년까지 3기의 섹터를 성공적으로 프랑스에 보냈다. 당시 ITER 측은 "전체 3분의1 수준의 섹터가 한국에서 만들어졌고, 네 번째 섹터는 90% 완료단계"라고 설명했다. 반면 유럽 기업들은 아직 단 하나의 섹터도 납품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외신에 따르면 유럽에서 담당한 섹터 중 첫 완제품의 경우 지난달부터 이탈리아에서 테스트를 거친 후 올 연말 프랑스로 향할 게 유력하다.

선적되고 있는 HD현대의 ITER 프로젝트 진공용기 섹터/사진=ITER 홈페이지

HD현대의 기술력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제 유럽의 ITER 전담조직인 F4E 측은 "한국이 제작한 섹터에서 많은 중요한 내용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장 많은 섹터를 담당했지만, 가장 빨리 납품을 마무리하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생소한 미래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완납 약속을 확실하게 이행해 나가고 있는 HD현대 측에 글로벌 기업들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에서 HD현대의 이같은 면모가 빛을 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HD현대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설립한 SMR 기업인 테라파워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한 후 사업을 추진해왔다. 테라파워와 기술 교류회 등 협력도 꾸준히 강화해왔다. 테라파워는 오는 6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첫 SMR 건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ITER 프로젝트를 통해 확보한 시장의 신뢰, 테라파워와의 동맹 등을 고려한다면 HD현대를 향한 러브콜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


HD현대는 '부유식 SMR' 콘셉트를 구상하고 있다. 육지 가까이 소형 원자로를 올린 선박을 접안시키는 방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력에 원전 건설 및 핵심 설비 제작 기술까지 갖춘 HD현대 입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HD한국조선해양은 테라파워, 웨스팅하우스 등과 함께 해상 원자력 부문의 글로벌 표준·규정을 설립하기 위한 협의기구(NEMO)의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각종 미래 에너지 사업 분야에서 HD현대가 '성과를 반드시 내는 기업'으로 트랙레코드를 쌓아가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