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만 문제가 아니네"…재활용도 안되는 '선거 쓰레기' 쏟아진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열흘 앞둔 지난달 31일 경기 부천시 한 아파트에 배달된 선거공보물/사진=뉴시스

"선거 공보물을 폐지로 받아와도 인건비도 안 나와요. 저희도 돈 받고 폐기만 해줘요."

폐기물 처리업체 대표 A씨는 5일 머니투데이와 한 전화 통화에서 선거 공보물은 사실상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종이의 경우 흰색에 가까울수록 단가도 높고 재활용 가능성이 더 커진다"며 "종이에 프린팅이 돼 있으면 색이 안 빠져 재활용이 어렵다. 그냥 폐기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각종 '선거 쓰레기'가 쏟아지고 있다. 집마다 배달되는 선거 공보물은 물론 후보자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 현수막,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이 입는 운동복까지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활용 안 되는 공보물·현수막…지난 총선 사용된 현수막 길이 305.8㎞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8일 전국 8만3630여 곳에 후보자 선거 벽보를 내걸었다. 후보자들과 정당을 알리는 종이 공보물도 각 가정으로 배송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김모씨(32)는 "선거 공보물을 열어보니 종이 한 뭉텅이가 툭 떨어졌다"며 "족히 20장은 되는 것 같다. 한 후보자는 총 12면을 만들어 넣어놨더라"고 말했다.

문제는 선거 공보물이 일반 종이가 아닌 대체로 '코팅' 재질로 제작된다는 점이다. 폐기물 수거업체 관계자 B씨는 "코팅이 심하게 돼 있을 경우 폐지로 쓰지 못하고 일반쓰레기로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제22대 국회의원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8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우현동 교차로에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뉴스1

현수막도 마찬가지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최근 5년간 치러진 5번의 선거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은 1만3985t에 달한다. 지난 총선에서 사용된 현수막은 3만580여장으로 길이는 305.8㎞에 이른다.

현수막도 재활용이 어렵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폐현수막을 사용해 모래 마대, 재활용마대, 재활용 장바구니 등을 만드는 녹색발전소 관계자는 "선거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보다 길이가 길어 현수막 안에 염료가 더 많이 들어간다"며 "단가 절감을 위해 저가의 제품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져보면 재질이 다르다"며 "재활용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작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것도 선거 쓰레기?…모자, 조끼, 장갑까지 모두 그냥 버려

지난 1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용현시장에서 선거운동원들이 춤을 추며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을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사진=뉴스1

선거 운동복도 선거 후 '버려진다'. 후보 얼굴과 기호가 적힌 조끼나 모자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후보들은 신발도 맞춤 제작한다.

공직선거법 62조에 따르면 선거사무소는 시·군·구 안의 읍·면·동 수의 3배수에 5를 더한 수 이내로 둘 수 있다. 서울에만 426동의 행정동이 있다. 공직선거법의 계산법에 맞춰 최대 인원을 개수했을 때 선거사무원만 1283명이다. 후보자와 후보자의 가족, 자원봉사자들은 제외된다. 선거가 끝나면 서울에서만 선거운동복 1300벌 이상이 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이날 수도권 소재 헌옷방문수거 업체 3곳 취재 결과 이들 모두 "선거운동복을 수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옷방문 수거업체 관계자 C씨는 "운동복에 라벨이나 번호 같은 게 찍혀있으면 수거할 수 없다"며 "재활이 안되고 헌옷을 모아 수출도 하는데 라벨이 있는 옷은 해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극복하자는 정치인 뽑는 선거, 폐기물로 가득"

지난 2일 오전 충남 당진시 당진전통시장 앞에서 열린 ‘국민의힘으로 당진살리기’ 지원유세에서 정용선 당진시 후보 선거운동원이 율동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선거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수열 한국자원순환연구소장은 "현수막 등을 재활용해 제품을 만들더라도 실용성이 높진 않아 사실상 폐기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재활용을 떠나 쓰레기의 양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활동처장은 "정치인들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환경 정책을 펼치는데 그들을 뽑기 위한 선거가 폐기물로 가득하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알권리를 보장하면서 환경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선거 홍보 방법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