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망생·성우에서 '자동차 스토리텔러'로 인생2막

현대모터스튜디오의 김한솔 구루/사진제공=현대모터스튜디오

지난해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의 '아우토슈타트'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아우토슈타트의 '모든 것'을 막힘없는 언변으로 풀어내는 투어 가이드의 '해박한 지식'이었다.

80년에 가까운 폭스바겐그룹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글로벌 자동차강국인 독일의 차 역사와 문화를 소상히 들려줬다. 요컨대 그는 자동차 '스토리텔러'이자 폭스바겐과 고객을 잇는 '소통의 창구'였다. "폭스바겐은 차가 아닌 문화를 판다"는 말이 허투루가 아님을 실감한 경험이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만든 '한국판 아우토슈타트'의 원형 현대모터스튜디오에도 '구루(GURU)로 불리는 '자동차 문화 전문가'가 있다. 자동차 문화나 소비에 대한 인식이 덜한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직업이다. 김한솔 구루(32, 사진)도 국내에 몇 안 되는 자동차 스토리텔러다.

구루(GURU)는 본래 '지식인'이나 '현자'를 뜻하는 인도어다. 고객들에게 현대차의 각종 차량과 부속품, 기업 철학과 가치, 자동차 문화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김 구루의 주된 역할이다.

자동차의 부속품이나 엔진 정보는 물론 현대차의 최신 뉴스까지 그의 머릿속에 모두 담겨 있다. "구루는 일종의 스토리텔러에요. 차의 역사와 제품, 현대모터스튜디오의 가치를 고객들에게 전달하죠".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일하는 19명의 구루(1기)는 모두 다양한 직업과 전공을 갖춘 전문가 집단이다. 항공사 승무원, 자동차 정비사, 카레이서 출신에다 호텔, 자동차 시승센터에서 일한 경력자도 있다. 개인적 경험에 자동차 지식을 얹어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김 구루는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목소리가 좋아 프리랜서 성우로도 일했다. 그러다 자동차가 그저 좋아 진로를 틀었다고 한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국내에는 없었던 직업이기도 했고요. 자동차 문화 전문가라는 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연기'와 많이 닮았습니다. 연기를 전공해서인지 적성에도 맞고요".

가장 보람된 일은 자동차 복합문화공간을 찾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얼마 전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초등학교 1학년쯤 된 아이가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찾아왔다고 한다. 엄마 손을 잡고 방문하는 다른 애들과 달리 고사리 손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혼자 방문한 당찬 아이였다.

"제 얼굴보다 큰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누르면서 저한테 되레 현대차 디자인이 좋다고 칭찬을 해주더군요. 자동차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서로 나누면서 보람된 일을 하는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나중에 현대차에 꼭 입사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웃음)".

국산차에 불만을 가졌던 고객들이 오해를 풀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인터넷을 보면 현대차나 국산차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잖아요. 불만을 얘기하는 고객들과 소통하다보면 '현대차로 다시 바꿔야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럴 때 이 일을 하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김 구루의 꿈은 국내 최고의 자동차 문화 전문가가 되는 일이다. 현대차는 옛 한국전력 부지에 '아우토슈타트'를 넘어서는 대규모 자동차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한다. "차는 단순한 제조물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입니다. 자동차 문화를 바르게 소비하는 고객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