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채권·달러···"안전자산이 위험하다"

2011년 8월 유로존 재정위기로 각국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불패의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금가격은 한달 만에 온스당 1899달러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 투자자를 열광시켰다.

하지만 고점을 찍은 금가격은 1500달러까지 조정을 받았고 현재 16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 위기에 놀라 금을 매수했던 투자자는 10% 넘는 손실을 본 채 고통스러운 버티기에 돌입했다.

안전자산이 위험해졌다. 유로존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가 세계경제를 짓누른 지 지난 1년반 새 글로벌 자금이 몰려 거품을 형성한 탓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과 국공채는 물론 3대 안전화폐로 불리는 달러, 엔, 스위스프랑도 일제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부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가 발빠르게 철수하자 거품이 빠지면서 안전자산에 '올인'했던 투자자들의 손실이 확대되고 있다.

◇안전자산의 '역습'＝안전자산의 대표주자인 금가격은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2011년 9월9일 1899달러의 고점을 기록한 뒤 현재 1600달러대에 거래 중이다. 국내에서 금 투자 열풍이 크게 일어난 지난해 갑자기 상승한 금가격은 10월4일 온스당 1798.6달러를 기록했지만 3개월 뒤인 지난 2일 1688.80달러로 6.1% 하락했다.

골드뱅킹, 골드ETF(상장지수펀드), 금 실물 등 다방면으로 금 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3개월 만에 적게는 6%, 많게는 10%대 손실을 입었다.


전문가들은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금이 위험자산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하락해서다.

차 령 우리선물 연구원은 "금은 미국 '재정절벽' 협상 타결로 선호도가 약화되는 추세"라며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에 가격이 오를 수 있으나 추가 상승은 불확실하다"고 분석했다. 금 관련 ETF에서도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 기관은 지난달 초부터 'KODEX 골드선물'을 8만874주 순매도했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행되며 '투자 열풍'을 일으킨 국고채 30년물도 손실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부도위험이 낮은 국고채 30년물은 2012년 슈퍼리치의 필수 재테크 상품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첫 발행 두달 만에 금리가 상승하며 평가손이 나기 시작했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채 30년물 최종 고시금리는 3.32%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10일 30년물 금리가 2.94%로 최저치를 기록한 시점에 30년물 10억원어치를 산 투자자라면 현재 6000만원대 손실을 기록 중이다. 증권사에 지급한 수수료와 세금까지 더할 때 손실률은 7%에 달한다. 국고채 30년물에 '묻지마 매수'에 들어간 개인들은 손실을 감수하고 지난해 11월부터 이미 매도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대 안전화폐'로 불리는 달러, 엔, 스위스프랑도 줄줄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년 동안 7.6% 하락했다. 지난해 원/엔 환율은 16.9% 떨어졌고 스위스프랑도 2011년 유로존 위기 때 급등한 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금이나 국채 같은 안전자산은 부도가 날 가능성이 적을 뿐이지 당연히 손실을 볼 수 있다"며 "유동성 과잉으로 고평가된 안전자산은 위험자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위험자산의 '유혹'＝글로벌 자금은 이미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사 핌코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국채를 매입하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국채를 매도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펀드흐름도 선진시장에선 자금이 유출되고 신흥시장에선 자금 유입세가 지속되고 있다.

외국인은 신흥시장 주식(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코스피시장에서 지난 한달간 3조6000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하는 등 위험자산 베팅을 이미 시작했다.

게다가 새해 들어 미국 재정절벽 합의,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하향이라는 2가지 이벤트가 더해져 안전자산의 자금 유출에 기름을 붓고 있다.

특히 채권시장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윤여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재정절벽 합의로 미국채를 중심으로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약화될 경우 한국도 금리 상승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현 시점부터는 채권 매수는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하향으로 안정적인 이자 및 배당수익을 주던 배당주, 인프라펀드, 채권 등 안전자산의 처분 움직임도 나타났다. 반면 주식, ETF와 같은 위험자산의 자본차익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 빠져 이들 자산으로의 자금 이동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이번 세법 개정으로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된 인원은 총 21만명이고 이들의 금융자산은 66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며 "이 가운데 상당 금액이 주식, 펀드 등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