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왜 병에만 담지?" 역발상이 사업으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은 인생 자체를 반영하는 묵직한 소재다. 함께 웃고, 떠드는 왁자지껄한 '친구'라기보다 폼 나게 한 모금씩 음미하는 게 더 어울린다.

그러나 국내에 처음으로 '컵 와인'을 소개한 'SE&L' 김혜지 대표(사진)는 생각이 다르다. 그는 와인을 레스토랑에서 격조 있게 마시는 술이라기보다 캠핑장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시는 '막걸리 같은' 술이라고 강조한다. 김 대표가 병 와인이 아닌 컵 와인에 꽂힌 것도 이런 이유다.


그는 가구 수입업을 하는 부모님 덕에 남들보다 일찍 와인을 맛봤지만 그때 와인은 기분이 좋아지는 음료정도였을 뿐이다. 와인이 본격적인 사업 아이템이 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우연히 이탈리아 소도시를 여행했는데 때마침 그곳에서 식품박람회가 열렸다. 큰 기대 없이 찾은 박람회에서 김 대표는 "무료 시음이나 해볼까"하고 와인섹션을 방문했다.

그때 김 대표의 머릿 속에 번쩍 천둥 번개가 스쳤다. 작은 플라스틱 용기의 컵 와인 '비노솔로 싱글즈'(www.vinosolo.net)와의 첫 만남이 가져다 준 충격 때문이었다. 신중히 코르크 마개를 따서, 품위 있는 잔에 따라 마셔야 한다는 이전까지 와인에 얽힌 고정관념이 단번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단번에 "컵 와인, 반드시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컵 와인의 생산과정은 의외로 까다롭고 복잡했다. 컵 와인 용기는 뉴질랜드에서 만들었지만 속에 든 와인은 스페인에서 생산했고, 와인 병입은 프랑스에서 이뤄졌다.

수소문 끝에 뉴질랜드 비노솔로 본사로 무작정 찾아갔다. 뉴질랜드 본사는 처음에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특별한 판매실적도 없는 김 대표에게 선뜻 판권을 주려하지 않았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본사 승인이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국내 유통업체가 "컵 와인이 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 대표는 욕심을 부렸다. 우선 제품부터 수입하고 판로는 나중에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컵 와인을 한국에 소개한 지 4개월 남짓, 초반 판매 성적은 나쁘지 않다. 비노솔로 컵 와인을 판매하는 편의점 CU(씨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시판 이후 월 평균 30% 매출 신장을 이어가고 있다.

김 대표는 올 상반기 판매망 확대에 더 주력할 방침이다. 편의점 '미니스톱'은 물론 대형마트 몇 곳과도 비노솔로 판매를 논의하고 있다. 역수출도 노린다. 현재 일본 주류 도매업체와 구체적인 현지 판매방안을 협의 중으로 이후 중국, 싱가폴, 홍콩으로 판로를 넓힐 계획이다.

김 대표는 "와인은 반드시 병에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고정관념"이라며 "산 정상이나 기차, 수영장 등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컵 와인이야말로 와인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