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2시 '블랙아웃' 위기에 류현진이 마운드에 오르면?

지난해 8월11일 새벽 런던올림픽 축구 한일전때 전력수요 그래프./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지난해 8월11일 토요일 새벽 4시. 영국 웨일즈에선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우리나라와 일본의 3·4위전 경기가 펼쳐졌다. 우리나라 올림픽 축구 사상 첫 메달이 걸린 경기였기 때문에 온 국민은 밤잠을 설쳐가며 TV로 태극전사들의 활약을 지켜봤다.

우리나라의 2대0 승리. 우리 국가대표의 통쾌한 승리로 그날의 대한민국의 새벽은 폭염에 시달리는 낮보다 뜨거웠다. TV시청률은 국민 드라마나 기록한다는 30%를 훌쩍 뛰어 넘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기뻐할때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전력당국 공무원들이다.

당시 새벽 3~6시까지 전력수요는 예상치보다 80~140만kW나 더 많은 5000만kW를 넘어섰다. 새벽이라 전력소비가 적었던 덕분에 예비전력엔 문제가 없었지만, 전력피크 시간대에 이 경기가 벌어졌다면 그야말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을지도 몰랐던 상황이다.

더구나 그땐 지금처럼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대규모 '순환정전(블랙아웃)'이 우려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기 때문에 전력당국엔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실제 2012년 8월6일 예비전력이 254만kW까지 떨어졌고 2011년 9·15정전사태 이후 처음으로 전력수급비상 3단계 경보인 '주의'가 발령됐다. 전력당국의 적극적인 수요관리로 이날 블랙아웃 위기는 가까스로 면했다.

당시 전력수요를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그때 한·일전 경기시간이 직장인들의 출근 부담이 적은 토요일 새벽이었는데, 열대야가 심했던 시기라 냉방수요에 TV시청 부하가 엄청났다"며 "이 경기에 대한 국민들의 응원 열기는 뜨거웠지만, 전력수요가 폭증해 깜짝 놀랐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전력담당 공무원들은 한여름 펼쳐지는 월드컵 축구나 올림픽 등 모든 국민이 열광할만한 대형 이벤트에도, 전력 때문에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다행히 올해엔 그런게 없지만, 내년엔 브라질 월드컵(6월13일~7월14일, 한국시간으로 새벽)이 있다.

29일(한국시간) LA 에이절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둔 류현진이 공을 혼신을 다해 던지고 있다. 　로이터〓뉴스1(news1.kr)

야구를 좋아하는 공무원들은 '괴물 투수' 류현진을 복병으로 든다. 한국인 투수 최초 데뷔해에 벌써 두자리 승수(11승)를 챙긴 류 선수는 요즘 국민들에게 '희망뉴스' 그 자체다. 1997년 외환위기때 박찬호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일상에 지친 국민들이 류 선수의 활약을 보면서 위안을 삼고 있다.

직장인들의 업무시간인 오전 9~11시대에 경기를 할 경우가 많은데 TV시청률은 10%를 훌쩍 넘는다. 또 사무실 등 실내에서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냉방수요도 그만큼 올라간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사례처럼 류 선수 경기가 국가적 이벤트가 된다면 100만kW 정도는 순식간에 올라갈 것이란게 전력당국의 판단이다.

다행히 류 선수의 경기가 전력수급에 다소 여유가 있는 오전 시간대에 주로 열리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일 전력이 간당간당한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후 2~3시(미국 LA 밤 10~11시)에 경기가 열리기라도 했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거다.

산업부 관계자는 "제주도민 전체가 피크타임에 사용하는 전력량이 약 70만kW인데, 대형 이벤트가 열릴때 최소 그정도 소모가 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폭염에 전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가적 이벤트가 열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