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블루스]직딩의 병가 사용 수난기

머니투데이

박경담 기자

"입을 떼기 힘들었다. 병가를 승인 받기 위해 팀장에게 갔으나 말은 입 안에서 연신 고꾸라졌다. 병원에서 쥐어준 최종 병가 진단서는 쏘아보는 듯한 팀장의 눈빛 앞에 힘을 잃었다. 용기를 내 병가를 받고 돌아 나오는 길.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자신이 꾀병을 부리는 사람 같이 느껴졌다."

백화점 직원 A씨의 ‘병가 사용 수난기’다. A씨는 지난 3월 자궁근종 판정을 받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건강에 대한 걱정과 같은 크기로 몰려온 불안함은 근무 공백이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일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과 상사의 눈치 때문에 스스로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84.3%가 '아파도 병가를 못 썼다'고 답했다. 절반이 넘는 56.9%(복수응답)가 ‘상사의 눈치가 보여’ 몸이 아프지만 출근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신 일할 사람이 없어서(44.7%)’, ‘불성실한 이미지로 보일 것 같아서(31.2%)'가 뒤를 이었다. A씨의 걱정은 직장인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었다.

A씨는 수술 후 한 달 동안 쉬라는 소견을 받았지만 눈치가 보여 2주 만에 출근을 재개했다. 사단은 두 달 후에 났다. 속이 메스껍고 빈혈 증세가 계속되자 다시 쉬기로 결심했다. 회사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유급휴가인 병가 대신 무급휴가를 요청했는데 돌아오는 건 팀장의 핀잔이었다.

A씨는 “팀장이 마음대로 한 달 쉴 수 있냐고 말하고는 아픈 것을 한번 보여 달라고 했다”며 “수술 후유증이라 증명하기도 쉽지 않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술 얘기를 하니 수치심을 느껴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증권사 직원 B씨도 병가를 내는 데 머뭇거린 경험이 있다. 불규칙한 생리 주기 때문에 당일이 돼서야 휴가 요청을 하는 게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B씨는 "직장상사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부담스럽고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일이 몰렸을 때는 그냥 참고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병가를 아예 내 볼 생각조차 못하는 이들도 있다. 3년째 요양사로 일하는 C씨는 자신이 일하는 동안 병가를 쓴 동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본인만 해도 허리디스크로 병원 치료 중인데 격주로 한번 쉬는 토요일에만 병원에 갈 수 있다.

평일에 통증이 심해지면 원장 몰래 요양원의 빈 침대에 누웠다. 동료들에게 미안했지만 다들 아플 때는 이렇게라도 쉰다고 한다. 서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자체병가'를 배려해주는 것이다.

C씨는 “요양원 규모가 작다보니 근로계약서의 병가 부분에 대해 고용주가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우리 권리를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성과급으로 임금을 받는 이들에게 병가는 곧 손실이다. 아파도 일한만큼 보상받지 않느냐는 반문이 생기지만 현실은 얄궃다. 대형 헤어숍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 D씨는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버니 아파도 일단 출근부터 하는데 몸이 너무 힘들 경우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D씨가 일하는 헤어숍의 경우 일하는 도중에 반차를 쓰면 그 때까지 번 돈은 모두 고용주에게 돌아가는 구조기 때문이다.

D씨는 “술병이 났는데 몸이 아프다고 병가를 내는 등 악용하는 사람도 분명 있기는 하다”며 “그런 사람들로 인해 규정이 엄격한 것 같은데 아플 때 병가 쓸지 말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서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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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10명 중 8명 아파도 병가 못 써…눈치볼 바에야 차라리 일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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